뚜뚜뚜
이 글은 조금 전 인생 처음으로 긴 시간을 통화한 막내삼촌과의 대화를 통해 느낀 것들을 정리해 보기 위함이다. 참고로 그는 환갑이 넘은 가정의학과 시골의사인데, 젊은 시절에는 자유의 바다에서 장렬하게 헤엄치며 살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냥 머리 벗어진 아저씨.
첫째, 누구나 다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사람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면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터이다. 물론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인간도 허다하다. 삼촌도 아픔이 많았던 것 같다. 단지 말하지 않았기에 알지 못했을 뿐. 누군가 말없이 갑자기 나와 단절하거나 떠난다면 나 또는 어떤 일 때문에 떠났을 것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떠나간 이를 고이 보내드리자. 더 이상 괴롭히지 말지어다.
둘째, 가족 간의 갈등은 당사자들 중 한 명의 이해 또는 포기가 없을 경우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윗사람이라고 먼저 사과하라는 법은 없고, 아랫사람이기에 무작정 숙이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좀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긴 한쪽이 좀 덜 여유를 가진 다른 쪽을 보듬어주지 아니, 적어도 미워하는 감정만이라도 덜하게 되면 그 관계는 복원될 수 있다.
셋째,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분노는 결국 나를 잡아먹는다. 우리는 운전하고 가다가도 여러 번 음성살인을 저지른다. 얼굴도 잘 안 보이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내 차를 넘고 외부를 넘어 또 다른 차에 타 있는 자를 향해 저주를 퍼붓곤 한다. 막상 그런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내가 미워하는 그는 내가 미워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그를 미워하는 내 감정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넷째, 나르시스트를 이해하려 들지 말자. 살다 보면 나르시스트를 종종 만날 수 있다. 겉으로 보이기엔 괜찮아 보이는 그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내 삶을 좀 먹으려 들 것이다. 자존감이 불안정한 나르시스트는 늘 과장된 자기 이미지로 방어하고 관계의 우위에 서려한다.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잘 바뀌지 않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일. 적절한 거리 두기와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법을 전략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상책이다. 설령 나르시스트가 부모라 할지라도.
다섯째, 돈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물론 세상에서 돈이 제일 중요해 이건 아니지만. 돈을 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돈을 어떻게 쓰냐다. 나이를 먹고도 정말 한치의 쓸모도 없는 곳에 돈을 뿌리는 자들이 있는 반면 돈을 적절한 곳에 써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는 일도 많다. 거창한 기부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챙겨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쓰고, 내 돈을 지 돈처럼 여기는 자들에게는 1원 한 푼도 쓰지 말지어다. 물론 먹고 떨어져라 시전으로 버릴 인연이라면 상관없지만.
이 밖에도 60대와 40대가 곰살맞게 한 시간 반 동안 전화로 수다를 떨며 나눈 이야기들이 이상하리만큼 내게 힘이 되었다. 앞으로도 종종 대머리 삼촌과 통화를 해야겠다.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이겨낸 그를 응원한다.
삼촌, 삼촌은 멋져. 지금도.
(물론 머리숱 풍성했던 20대 인턴 시절만큼은 아니지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