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기를 기원합니다.
폭우가 쏟아졌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크게 신경 쓰지 못하였다. 내가 보는 비라곤 고작 아이 등원길 또는 가끔 나서는 외출길에서 보는 수준이었으니까. 나와 아내 생일에 맞춰 가까운 가평의 글램장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계곡과 하천이 인근에 있는 캠핑장이었다. 바쁜 나날이 지났고, 어느덧 캠핑장 방문 당일이 되었다. 전 날까지 세차게 내렸던 비가 멈추었다. 정신없이 짐을 싸 차에 싣고 가평으로 향했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비가 그쳐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난 아이와 캐치티니핑 OST를 들으며 서울을 지나 가평의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 도착 10분여를 남길때즘 가평 현리에 다 달아 경찰들이 현장을 통제하였다. 무슨 일이지 하며 차량을 통제하시던 경찰분께 여쭈었다. "지나다니는 다리가 끊겼어요. 이 방향으로는 가실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밤 사이 비가 많이 내렸나 보다고 생각하고 돌아갈 길을 찾아 헤맸다. 다행스럽게 포천 방향으로 향해 위에서 내려오는 방향으로는 진입이 가능했다. 그런데 캠핑장에 거의 다다를 때쯤 도로 위에 진흙과 쓰러진 나뭇가지, 그런 잔해들을 열심히 치우고 있는 포클레인을 보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일이지?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캠핑장의 사장님께서는 통신이 끊겨서 방문안내 문자를 오늘 못 보냈다고 어떻게 잘 찾아 오셨나며 우리를 반겼다. 아직 주변 상황을 잘 모르시는 눈치였다. 캠핑장 내 수영장을 보고 바로 뛰어들겠다는 아이 때문에 짐을 대충 풀고 한참 물놀이를 한 뒤 가져온 고기를 구워 먹고 차를 한잔 마시는데 아내가 대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지금 산사태 일어난 지역들 사이에 있어. 도로가 통제되는 것 같아."
그제야 뉴스를 찾아보니 우리가 있었던 지역이 그야말로 수해로 인한 재난지역이 되어 있었다. 새벽에 쏟아진 비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나 한 캠핑장을 덮쳤고, 일가족이 모두 바로 앞 계곡과 강으로 휩쓸렸다는 기사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10대의 어린아이 한 명만 구조되었고, 사망한 아버지와 실종된 어머니와 형을 찾고 있다. 너무나도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우리가 이곳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이 너무 죄스러웠다.
잠든 아이를 두고 아내와 한참 기사를 찾아보고 우리를 걱정하고, 떠내려간 일가족을 안타까워하며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후 계속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며 시신이라도 수습되기를 바라는 중이다. 남은 어린아이의 삶과 허망한 가족들의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 한번 더 삶과 죽음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며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일은 순서가 없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아이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도,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는데도 어딘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날 같은 하늘 아래 우리는 살아 있었고 누군가는 그렇게 떠났다. 돌아올 수 없었던 자리에 남겨진 아이 한 명과, 우리는 지금 이 하루를 공유하고 있다.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마음은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잠시 멎는 듯하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그저 운이 좋았다는 이유로 안도할 수 없었다. 우연처럼 주어진 이 평범한 일상은 어쩌면 가장 놀라운 기적일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그 아이의 앞 날에는 따스한 순간이 자주 머물길 바라며... 되지도 않고 가당찮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