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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컵밥집이 사라져 간다

feat. 저출산과 고령화

by 매버지


바야흐로 2000년, 지방에서 수능시험을 망친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누나 덕에 상경하여 노량진의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서울생활의 첫 시작을 노량진에서 1년 가까이 보내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입시와 고시의 메카 노량진, 당시 내가 다닌 재수학원은 한 반에 100명에 가까운 수강생이 있었고, 학교보다 더 많은 N수생들이 바글바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학교(!) 시절 한 반에 50명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공부를 하였고 심지어 저학년은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공부한 것을 생각하면 입시학원의 수입은 꽤나 짭짤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연스럽게 노량진은 아침부터 저녁을 넘어 새벽까지 입시생과 고시생들로 가득 찼고 활발한 상권에 유동인구가 넘치는 지역이었다.


재수시절 이후 노량진에 갈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동작구에 거주하다 보니 집에서 손님접대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회가 먹고 싶을 때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과거의 추억 때문인지 수산시장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노량진 학원들이 즐비한 대로방향으로 일부러 돌아서 가곤 한다. 예전과 다르게 확연히 줄어든 인파, 상가건물에 공실 임대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노량진 고시원 폐업률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노량진 하면 배고픈 공시생들의 허기를 달래 준 컵밥거리의 상점들 역시 많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교육 활성화, 물가상승으로 인한 재료비 급등 등이 노량진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시대적 변화로 인한 온라인 교육, 고유가 등의 여파로 인한 물가상승 등의 변수는 어쩔 수 없는 것이거나 일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노량진 고시촌이 닥친 더욱 중대한 문제는 바로 저출산과 고령화이다. 이전 글에서도 한 이야기이지만 1020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업이 인구통계학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인구고령화는 평균수명의 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해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UN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정의한다. 대한민국은 지난 7월 10일 주민등록상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000만 명을 넘기며 전체인구의 19.51%를 차지해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걸린 시간이 12년인데 비해 대한민국은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7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런 초고령사회 조기진입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저출산이다.

출처 : EBS 창사특집 조앤 윌리엄스와의 대화(이젠 너무 유명해져 버린 짤(?)..)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경제학적으로 저출산은 노동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며 노동력 부족을 야기한다. 그리고 고령화는 노동생산성을 저하시켜 경제 전반 성장둔화를 가속화한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고령인구의 증가는 사회적으로 노인 부양비용을 증가시켜 정부의 재정과 재정의 원천이 되는 노동인구 즉 청장년층의 세금부담을 가중시킨다. 이로 인한 세대 간 갈등이 점차 증대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 및 돌봄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딱히 두 손 벌려 반길만한 것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 돌봄 관련 스타트업에 근무할 때 여성가족부 실무자가 찾아온 적이 있다. 명분은 돌봄 관련 정부정책을 기획 중인데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돌봄 인력 매칭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부모세대의 니즈와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후 때때로 정부정책이 나올 때면 당시 이야기 나누던 것이 반영된 무엇이 있을까 관심이 갔다. 하지만, 유사한 정책은 보이지 않았고 1년 가까이 지나 당시 정책을 기획하던 책임자급 실무자에게 연락이 왔다. 현실성이 떨어지고,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은, 보이는데 급급한 기획의 테스트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힘이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정부부처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도울 수 있는 부분까지는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이후 관련 정책은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고 있다(물론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없진 않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미 추세는 심화되었고 미래는 어느 정도 확정돼 보인다. 저출산이 단순히 정부가 내놓는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결혼적령기에 놓인 밀레니얼 세대가 마주한 현실(턱없이 높은 부동산가격, 임금상승률 보다 가파른 물가상승률 등)을 보면 어려워 보인다. 미혼자에게 싱글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대두되는데 과연 징벌적 세금을 부과한다고 결혼을 할지 의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맞벌이 부부에게 돌봄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천군만마와 같다. 그런데 아이를 가족, 친지가 아닌 제3자에게 맡긴다는 것은 매우 심사숙고하게 되는 일이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홍콩과 싱가포르의 필리핀 가사도우미 모델을 벤치마킹해 국내에 도입하기 위한 신청자 모집을 시작했다. 서울시 차원에서 줄어드는 노동인구를 수입하고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을 해소시키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의 부모님들을 K-드라마를 통해 젠틀한 한국을 간접경험한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시도 자체에 대해서는 기대가 되며 충분한 현지화 전략을 수립했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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