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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기대하며

feat. 상권

by 매버지


남쪽 촌놈은 2000년 노량진 재수학원에서 만난 한 살 위의 방배동 토박이 형과 친해지며 자연스레 그의 유흥을 학습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에서 젊은이들에게 핫한 지역은 압구정과 강남역이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촌놈이 보아도 멋져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엉클톰스캐빈'에서 세이클럽을 통한 번개팅 실패 후 자주 찾지 않게 되었다. 그에 반해 강남역은 좀 더 캐주얼했는데 대학교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여기저기에 토하던 안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다.


방배동 카페골목은 4호선 이수역에서도 차로 5분 거리이다..

그리고 내 기억 속 추억의 장소는 방배동 카페골목이다. 방배동 형 덕분에 방배동 카페골목이라는 곳을 처음 게 되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오렌지'하다는 젊은이들이 모여 유흥을 즐기던 곳이 바로 방배동 카페골목이다. 2000년대 초반 방배동 카페골목은 위 두 지역과는 다르게 아담했고, 지하철 역에서도 꽤 멀어 약간 아지트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의 중상류층 아파트 단지와 인근 고급빌라 촌을 배후에 두고 성장한 대표적인 유흥오락상권이었다고 한다. 실제 야타족과 오렌지족이 판을 치고 다닐 만큼 문란했던 유흥상권 중 하나였는데 1990년 중반 이후 유흥주점 등에 대한 집중 단속으로 이 일대를 자주 찾던 20~30대 층이 대거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으로 이동하면서 상권이 서서히 쇠퇴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밀리레스토랑은 1988년 카페골목에서 시작되었다.

점점 시간이 흘러 2010년대 방배동 카페골목은 생기를 잃은 채 아귀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먹자촌(?) 같은 분위기로 변했고 젊은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이 되었다. 나 역시 추억을 벗 삼아 친구들과 '달빛 한 스푼'이라는 민속주점을 아주 가끔 가 보는 수준이었다(카페골목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집인 듯, 닭볶음탕이 아주 예술임). 2020년대에 들어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였고 더욱 찾지 않은 지역이 돼버렸다. 하지만 약 2년 전부터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부는 듯하다. 거리에 만국기 같은 게 걸리기 시작하더니 서초구 주도 하에 숏폼 공모전을 추진하면서 MZ세대를 불러들이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예전의 명성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겁나 우울했던 2010년대의 카페골목보다는 나은 것 같다.


가로수길 애플스토어(업체 사진 펌)

우울했던 방배동 카페골목과는 다르게 2010년대에 화려하게 타올랐던 서울 상권 중 하나는 신사역 가로수길이다. 당시 가로수길의 점포들은 이면도로까지 권리금만 수억을 물고 들어와야 할 만큼 어마무시 화력을 자랑했다. 최신의 힙하다는 브랜드부터 글로벌 브랜드까지 곳곳에 입점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은 필수로 들러야 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많은 유명 브랜드 상점들과 자영업 점포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10곳 중 4곳이 비어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었던 명동 역시 큰 부침을 겪은 상권이지만, 팬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찾는 명성을 되찾았으나 가로수길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기에 활활 타오른 상권도 있다. 바로 성수이다. 내 기억 속의 성수동은 낮은 크고 작은 제조업 공장과 구두창고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러한 공장과 창고들이 폐업하고 리모델링하여 어울리지 않게 카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젊은이들이 찾기 시작했고 현재는 내로라하는 글로벌 패션브랜드들이 팝업스토어를 여는 특급 상권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권의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 아파트인데 성수동에 고급 아파트 단지인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등이 들어서며 주거지로서의 입지도 높아졌다. 또한 인근에 서울숲이 있어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찾기 좋은 위치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을 겨냥한 다양한 식당과 서비스업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한 성수동으로 갈 수 있는 성수역, 뚝섬역, 서울숲역(분당선) 등이 있어 교통편리성과 접근성이 좋다. 코로나라는 역대급 이슈를 안고도 성장한 상권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디올 성수(업체 사진 펌)

보통 한 번 무너진 상권이 다시 살아나는 데는 큰 힘이 필요하다. 전통적 명소였다면 모를까 그 지역이 단기간에 새롭게 불타오른 상권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기업 브랜드의 오프라인 상점들은 상권이 죽으면 철수하고 새로운 상권을 찾아 나설 수 있지만, 일반 자영업자는 큰 손해를 보고 장사를 접어야 한다. 결국 상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들이 부합되어야 하는데 성수의 사례를 보면 인근 거주지의 발달과 지역 접근성, 공장을 카페로 시도한 혁신 그리고 SNS발달과 그에 부합한 상점들의 생성, '힙'한 이미지 등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물론 성수동 역시 지금의 명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엄청난 임대료와 오를 데로 올라버린 부동산 가격을 보면 걱정이 된다.


방배동 카페골목은 성수와 같은 조건들이 당장 수반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2025년 카페골목 초입에 들어서는 1000세대 규모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 입주는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처럼 유흥오락의 중심지로 돌아가긴 어려워 보이지만 나름의 정체성을 만들어 부활할 수 있는 상권이 되면 좋겠다. 내 추억의 장소가 다시 빛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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