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이수역에는 전통시장이 있다. 바로 남성사계시장인데 60년 역사를 지닌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전통시장이다. 물론 전업주부가 된 후 편리하기 때문에 컬리, 오아시스와 같은 플랫폼을 자주 이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전통시장을 들러 실질적인 물가를 느끼곤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마트에 비해 작은 단위의 구매가 가능한 편이다. 즉, 청양고추 1,000원어치 등의 거래가 가능하다는 소리다. 이게 생각보다 큰 장점인데 대형마트에 가보면 느끼겠지만 대부분은 묶음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1인가구 또는 핵가족 단위에서는 불필요하게 많이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물론 살림을 잘하는 주부라면 코스트코 같은 곳에서 대용량을 구매하여 소분하여 활용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젊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들은 대용량 구매 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 또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대용량 구매에 익숙한 소비자인 내가 시장에 가면 매번 느끼는 최대 장점이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비어있는 장바구니와 카트는 가득 채우고 싶어 진다...ㅡㅡ;
개인적으로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지만 30대 초반 소비와 저축에 대한 강의를 약 3년 동안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고객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는데 내용은 크게 무리 없었지만 나 자신이 얼마나 소비와 저축에 대한 철학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내 강의의 말미엔 영업점 주도하에 저축을 위한 통장개설과 청약저축 가입 등이 따라오곤 했다). 당시 2010년대 초반이었는데 이제 10년이 흘러 소비와 저축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금융회사에 근무하면서 많은 재테크 서적을 탐독하고 실행해 보며 나에게 생긴 철학이 있다면 소비와 저축은 '습관'이라는 것이다. 결국 '몸에 베인 습관이 오래가는 것이고 오래가다 보면 쌓여서 크고 작은 부를 이룬다' 정도의 상투적인 결론이다.
2010년대 초 자아를 숨긴 채 학교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하던 모습
과거 시장을 애용하던 우리의 부모님들이 매일 콩나물 얼마어치를 사서 집에서 국과 나물을 무치던 시절과 지금의 젊은 세대를 비교할 순 없다. 집 앞까지 배송되는 편리함이라는 부분을 간과할 수 없으며 내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식재료를 사는데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이점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는 점은 피해 가기 힘든 현실이다. 결국 이것은 습관과 연결이 되기 때문인데 과거에 비해 편리해진 삶을 살아가면서 쓰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관련 비용이 크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며 내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면 누군가 반론을 할 것이다. 아니 급변하는 현재의 트렌드와 기술의 이점을 이렇게 호도해도 되는가? 난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인류의 누림을 매우 찬성하는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플랫폼 회사에 들어가 일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기술과 편리함 안에 숨어든 과소비를 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쉽게 사거나, 필요하더라도 필요한 만큼 사기 힘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은 결국 소비습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식료품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한 대부분이 소비와 연결되어 있다. 24시간 소비가 가능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늘 함께하는 핸드폰이 있는 한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디지털 세상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찾아본 검색어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광고가 따라붙고 나도 모르게 클릭하고 결제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꼭 필요하지 않았지만 나를 대신해 가격비교를 해주고 쿠폰을 쓰면 더 싸게 구매한 현명한 소비자로 둔갑되어 버린다.
소비에 있어 전문가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니즈(needs)와 원츠(wants)의 구분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을 소비하고 순간 원하는 것을 지양하라는 소리인데 24시간 마케팅 공격을 받는 지금의 세대에겐 진짜 힘든 이야기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쇼츠에서는 누가 봐도 너무 편리하고 좋아 보이는 물건들을 기가 막힌 멘트와 이미지 및 영상으로 유혹한다. 나도 이런 SNS 광고를 따라 들어가 구매해 본 경험이 꽤 많은데 막상 집에 배송된 물건을 보는 순간 실망하고 집안 구석에 짱 박혀 있는 것을 보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니즈를 기억하며 쇼핑하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을 것이다. 내 니즈 리스트가 있어서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리스트에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물론 주변에 있을지도..).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소비에 대한 큰 덩어리의 계획이다. 한 달 혹은 일주일 단위의 소비에 필요한 예산을 잡고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게 쓰는 습관부터 우선되어야 한다. 그 습관이 몸에 익혀지면 그때부터는 모으는 것이 조금 쉬워진다. 그리고 예산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 전에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예산 안에서 하는 소비습관이 잡혔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정말 구태연연하게도 조금 큰 단위의 목돈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일명 재무목표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종잣돈이 더 잘 맞다고 생각한다(뚜렷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모으고 이루는 성취감이 먼저다). 특히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신 분이라면 더욱 이 글이 잘 맞는 시점 같은데 어떤 목표가 없더라도 조금은 큰 단위(몇 백, 몇 천, 몇 억 등)의 종잣돈을 목표로 소비를 통제하고 모아보길 추천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 더 노력하고 싶다면 현시대에 필요한 재테크 스킬(투자와 관련한)을 키우는 것이다. 다양한 영상, 사설 강의 모두 다 좋다. 그중엔 정말 별로인 것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많이 보고 듣고 행하는 과정에서 걸러질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한편으론 '아내가 보고 무슨 말을 할까?' 생각이 계속 들었다. 분명 퇴근 후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