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女자

아르미 라티아 /핀란드 디자인의 전설 '마리메꼬' 창업자

by Kim기자



회색빛 들짐승들 사이로 나무둥치에 앉아 있는 올빼미. 기하학적 문양을 휘감고 떨어지는 파란 잎사귀와 붉은 장미꽃.


'마리메꼬'가 올해 첫선을 보인 디자인 'Veljekset'(핀란드어로 '형제들'이라는 뜻)에 대한 묘사다.

올해는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다. '디자인 강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방식도 창의적이다. 내로라하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디자인 기업들과 아티스트들이 저마다 애정을 실은 작품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핀란드의 국민 브랜드 '마리메꼬'도 또 한 번 창의적인 패턴 디자인을 선보였다. 핀란드 고유의 동식물들과 풍속, 문화유산을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한 것. 동양과 서양의 중간 길목에 놓여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국가적 정체성 덕분인지 이 100주년 기념 디자인도 어쩐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항상 틀을 깨고 경쾌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대중을 놀라게 한 '마리메꼬'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에는 창업가인 아르미 라티아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기업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한 그녀는 시대의 흐름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갖춘 현자였다.








아르미 라티아는 1912년 지금은 러시아 영토에 속한 Pälkjärvi에서 태어났다. 세 명의 남자 형제들과 한 명의 자매가 있었지만 전쟁통에 남자 형제들은 모두 죽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상인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라티아는 학교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공부했다. 당시 텍스타일 디자인을 공부하던 그녀의 나이는 고작 14살에 불과했는데 그녀가 그때 남긴 글을 보면 범상한 소녀는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단 하나의 책무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꿈, 단 하나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전쟁 기간 중인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국방부의 사무실 직원으로 잠시 일했지만 결국 본업으로 돌아와서 광고회사에서 텍스트 디자이너로 일했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사업 아이템에 확신을 얻은 라티아는 1951년 남편인 빌요 라티아와 손을 잡고, 디자이너 리타와 함께 옷감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한다. 남편인 빌요 라티아는 왁스로 표면을 마감한 옷감을 시장에 첫선을 보인 인물이었는데 이 옷감들은 현대 직물 제조에 널리 활용됐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마리메꼬'. 자신의 미들네임이자 핀란드의 보편적인 여자아이 이름이기도 한 '마리'에 치마를 뜻하는 '메꼬'를 더한 합성어를 기업명으로 삼았다. 마리메꼬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던 그래픽 디자인을 옷감에 수놓은 직물을 판매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대담한 꽃무늬와 역동적인 기하학 패턴으로 수 놓인 마리메꼬의 옷감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황폐한 잿빛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Marimekko_Unikko.jpg by Mangan02, Wikimedia Commons



창업한 지 10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던 마리메꼬에게 196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릴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재클린 케네디가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유세 기간 중 마리메꼬의 옷을 즐겨 입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 마리메꼬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한 그녀의 사진이 한 스포츠 잡지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셀러브러티인 그녀의 취향을 좇아 사교계 사람들이 앞다퉈 마리메꼬 의상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란 강렬한 원색의 향연. 특유의 꽃무늬 연속 패턴과 역동적인 디자인은 당시 사람들에게 낯설었지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다.


3천 가지가 넘는 텍스타일 패턴 디자인 중에서도 마리메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은 우니꼬 패턴이다. 마리메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이야 이솔라는 양귀비꽃에서 영감을 얻은 우니꼬 패턴을 선보인 장본인이다. 우니꼬 패턴이 탄생하게 된 비화도 흥미롭다. 당시 라티아는 자연 상태의 꽃을 최선의 상태로 인식하면서 꽃을 응용한 무늬나 패턴은 만들지 말라고 디자이너들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라티아라도 이 창의적인 디자이너의 예술혼까지 가로막진 못했나 보다. 그렇게 마이야 이솔라가 오너의 지시를 어기고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여 창조해낸 우니꼬 패턴은 현재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800px-Marimekko_%288144057569%29.jpg by Eva Rinaldi, Wikimedia Commons



디자이너로서 예술가의 감각과 사업가로서 경영자적인 마인드를 겸비한 라티아는 시장의 트렌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자신을 '삶을 사는 방식을 판매하는 상인'이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오늘날 지식산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당시 그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가를 알 수 있다. 생전의 그녀가 '패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하는 것에서도 비슷한 의도가 엿보인다.


1960년대는 라티아가 한창 '마리 마을' Marikylä 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이기도 했다. 일종의 '세계 공동체 마을'을 형성하자는 이 아이디어는 프린 텍스와 마리메꼬 제품 디자인 제조를 위한 작업장으로 활용될 계획이었다. 평등을 모토로 한 이 이상적인 공동체에 어울리는 콘셉트로 라티아는 유니섹스 의상에 주목했다. 이렇듯 예술가적 창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다가도 동시에 경영가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을 뽐냈는데 1970년에 들어 라티아는 마리메꼬를 국제적인 프랜차이즈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대통령 우수 표창을 수여받은 1974년은 특히 마리메꼬가 증시에 상장된 도약기였다.


800px-Marimekko_%288144091622%29.jpg by Eva Rinaldi, Wikimedia Commons


60~7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마리메꼬의 굳건하던 입지는 79년 라티아 사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90년대 파산 위기에 몰렸던 마리메꼬가 기사회생하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미국의 인기 드라마 '섹스앤더 시티' 덕분이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가 마리메꼬 원피스와 소품을 사용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다시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옛 명성을 회복하면서 팬덤 현상도 덩달아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2010년부터 6년 동안 가파른 대외 매출 신장세를 보였는데 이들 중에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과가 유독 두드러졌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핀에어와의 파트너십 등 다양한 제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리메코'의 브랜드 이미지가 핀란드를 상징하는 국가적인 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800px-Finnair_Airbus_A340-313E_OH-LQD_%28Marimekko%29.jpg by Adam Moreira, Wikimedia Commons



1949년 부족한 전쟁 군수물자를 대기 위해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 일을 라티아가 같이 돕던 당시 핀란드는 전쟁이 끝났어도 온전하게 종전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핀란드는 독일과 소련이라는 양대 거대 세력과 동시에 맞서 싸운 거의 유일한 국가였다. 소련과 휴전협정을 체결하자마자 독일과 연대해 새로운 전쟁에 들어갔고 패전 끝에 결국 소련에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지켜낸 독립이었으니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핀란드인들의 가슴속엔 만감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핀란드 고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오랜 세월 비록 부침이 있었을지언정 반백년이 넘게 명맥을 이어온 기업 '마리메꼬'의 독립기념 헌정 디자인에,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Her Quote
I don't really sell clothes. I sell a way of living. These are designs, not fashions. I sell an idea rather than dresses.
저는 옷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팔아요. 이런 건 디자인이지 패션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는 드레스라기보다 아이디어를 파는 상인인 셈이죠.





Destination for tourists

핀란드 헬싱키의 마리메꼬 본사.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묘소. Hietaniemi Cemet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