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드 알리 / '난민의 눈'으로 난민들을 보듬는 목민관
#1. 한 달 전쯤 말뫼에 있는 채식 레스토랑에서 친환경 청소용역업체를 운영하는 카리브 출신 스웨디쉬와 이야기를 하다 얼핏 들은 말이 그 뒤로도 계속 잊히지가 않았다. 시리아 난민들에게 직업을 알선해 주는 서비스 센터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들이 스웨덴에 정착해서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가긴 하지만 언어장벽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결코 행복하다고 말하기 힘든 삶을 산다는 것이다. 스웨덴어를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단순 노무직일 확률이 높은데 특히 고국에 있었을 때 전직 변호사나 의사, 교수 같은 지식 노동자였을 경우에 그들이 느끼는 심적 좌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요지의 설명이었다.
#2. 스웨덴에 도착한 지 1주일 정도 됐을 무렵 운 좋게도 성격 좋은 '스웨디쉬'들을 6명 정도 만났다. 그들 중 일부와는 아직까지 친한 교우관계를 맺고 있는데 얼마 전 이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선 여자 친구들 2명 중 A는 아버지가 미국인이고, B는 어머니가 동유럽 사람이다. 남자 친구들 중 C는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스웨덴에 정착한 지 3년이 됐고, D는 어머니가 스리랑카인인 영국 태생인데 스웨덴 여성과 결혼해서 현지에 산 지가 12년이 됐다. E은 부모가 모두 스웨덴인인 순수(?) 스웨디쉬인데 부인이 태국인이다.
친해지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서로의 민증(?)을 까고 호구조사(?)를 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백그라운드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스웨디쉬'라고 하면, 다들 머리 속에 금발, 파란 눈, 큰 키에 백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스웨덴에 와서는 그런 고정관념이 많이 깨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거주하는 헬싱보리 쇠데르가탄 97번지 일대는 아랍인 거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시리안 레스토랑과 잡화점이 늘어서 있기도 하다. 한 블록을 건너면 폴란드 잡화점과 중국 음식점이 보인다. 다문화 추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스웨덴 사회를 물들여 가고 있었다. 그래서 실망했느냐 하면 오히려 정반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 전보다 더 스웨덴이 좋아진 것 같다. 현실 속의 스웨덴은 좀 더 다채로운 색깔과 스펙트럼을 가진 팔색조 같다. 때로는 그 자신의 불완전함을 노출하고 약점과 곯아 터진 문제들로 어쩔 줄 몰라하고 고민하는 모습들도 보이지만 그런 점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또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위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이주민들이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스웨덴 사회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이제는 '스웨덴인'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수용하는 이 사회의 관용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서두에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스웨덴인들 중에서도 이주민 쿼터를 차지하고 있는, 그중에서도 난민 범주에 속한 스웨덴 여성의 삶이 궁금해진 계기를 털어놓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수아드 알리는 그중 한 사람으로 모범적인 케이스로 손꼽힌다.
수아드 알리는 시사 평론가이자 스웨덴에서 가장 큰 리더십 전문 잡지의 칼럼니스트다. 또 스웨덴의 이주위원회 중에서 가장 젊은 조직원인 동시에 몇 해 전부터 스웨덴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난민 할당제 문제의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다문화의 격량 속에서 통합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스웨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재목감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난민 문제와 관련된 고정관념과 편견의 장벽을 깨고, 난민들이 스웨덴 사회에 융화하는데 기여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2016년에는 스웨덴 슈퍼 탤런트 101인(101 Swedish Supertalanger)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Image source : https://youtu.be/moS9qjx0w6o
이 조숙한 천재는 일찍이 재학 시절부터 이주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현업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2013년까지 스웨덴 린셰핑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학업에 몰두하는 한편 열정적으로 외부 활동을 병행해 나갔다. UNHCR과 연계해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2012년에는 세계 청년리더들을 위한 최대 규모의 국제 포럼인 One Young World에서 스웨덴 대표로 참석하는 등 활약상을 보였다. 불과 25세의 젊은 나이로 제네바에서 열리는 토론 회의를 주도하고 각종 국제기구와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저력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난민 활동에 본격적으로 발 벗고 나선 것은 26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리카의 대규모 기근사태 때부터였다.
아프리카 북동부, 소위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2011년 가뭄에 따른 최악의 대기근 사태가 닥쳤을 때 그녀는 난민들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다. 관련 단체인 Operation Dagsverke와 연계해 사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기금 마련 활동을 펼쳐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빵을 굽거나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소소한 단계에서 시작했지만 갈수록 관심을 갖는 이들이 불어나면서 나중에는 집집마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모금활동을 하고 SNS로 메시지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간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본 신문과 방송 매체들이 그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3주 만에 마련된 기금이 6만 크로나(한화 800만 원 상당). 기금은 국경 없는 의사회와 구호단체인 Islamic Relief에 기부했다.
수아드 알리는 동시에 크고 작은 정보교류 사교모임을 주최했는데 그중 하나는 소말리아 청소년들의 대학 지원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예비 입학생 청소년을 가고 싶은 대학의 소말리아 출신 재학생과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멘토링 프로그램이었다. 왜 하필 소말리아인지 궁금해지는데 그녀의 출신 국가일 뿐만 아니라 통계치를 확인한 결과 스웨덴 대학에서 수학 하는 소말리아 출신 학생 집단의 규모가 현저하게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재학 시절 틈틈이 다양한 자선 프로젝트에도 쉴 새 없이 참여하고 다양한 국가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학우들 무리를 이끌며 서로를 독려했다. 그녀는 졸업 후 린셰핑 대학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진로와 연결 짓기 위해 정치학을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고 학교 공부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현실 세계와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준 것은 과외로 펼친 자선활동이었다"라고 말했다.
Image source : https://youtu.be/LE6VUE4wJWE
2012년에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이주위원회에서 망명 전문 행정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았는지 그로부터 2년 뒤에는 UN 산하 기구와 함께 전 세계에 퍼져 있는 13만 시리아 난민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스웨덴에 수용되는 난민 쿼터를 관리하는 비중 있는 직책을 맡게 된다.
업무 특성상 케냐의 나이로비 혹은 다답 난민 캠프를 자주 방문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난민들에게 스웨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난민들의 현지 적응과 조기 정착을 돕고 사회통합의 기틀을 닦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던 셈이다. 수아드 알리가 이렇게 난민들의 관점에서 이주 문제에 접근하는 까닭은 그녀 자신이 어린 시절 난민 생활을 경험했고 소말리아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한 내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 케냐 난민캠프는 그녀와 가족들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1990년, UN에 의해 스웨덴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그곳에 갈 곳 없는 몸을 의탁했었기 때문이다.
이주위원회의 수많은 인재들 사이에서 그녀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다름 아닌 이 차별화된 통찰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와 뼛속 깊이 새겨진 기억 덕택인지 난민 출신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이주 문제의 심층적인 면까지 예리한 시각으로 짚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난민의 아이덴티티와 관련한 문제에서도 그렇다. 아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난민 같은 표현들은 이주민이라는 집단을 정의하는데 역부족이다. 정작 이해당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꼬리표로 붙인 이런 표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예를 들면 '난민 물결 refugee wave' 혹은 '흘러 들어오는 난민들 refugee flows'와 같이 물의 이미지에 빗댄 표현은 인간성을 배제하는 비유이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급증하는 수치 이면에 숨어 있는 '사람'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즈음처럼 고학력자들이 스웨덴으로 쏟아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업계에서 다년간 일했거나 기술 숙련공일 경우 그들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스웨덴은 그 점에 있어 미흡한 점을 보이기도 했다."
어쩐지 두 번째 인용문의 뼈 아픈 지적을 듣다 보니 재능이 낭비되는 숙련공 이민자의 모습이 서두에서 사례로 들었던 시리아 고학력 난민들의 좌절한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젊은 나이에 이미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녀의 장래희망은 케냐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이나 뉴욕 UN 본부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국제문제 전담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그곳에는 소말리아 개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별도의 섹터가 있다. 거기서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에 상당히 감명 받았다."
수아드 알리의 끝없는 소말리아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Her Quote
I want to do something for other people, this is my main driving force. Even if I only make a difference for one person, I’ve done well.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요, 그게 제 힘의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단 한 사람의 인생만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해도 전 그렇게 할 거예요.
It’s so very important that you do what you can, irrespective of whether it’s a lot or a little. I know that I can make a difference, and everybody else can as well.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그 일이 크건 작건 말이죠.
난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단 걸 알고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