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der issues : 양성평등, 남성에게 득일까 독일까
"양성평등이 실현됐을 경우 혜택과 이익은 여성에게 돌아가는 반면 남성에게는 이것이 '비용'이 된다는 오해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홀터 교수의 말이다. 저번 화에서 양성평등과 가정폭력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오슬로 대학의 홀터 Øystein Gullvåg Holter 교수가 이번에 또 나왔다. 이번화에서는 양성평등이 남성에게 미치는 득실에 관해 2015년 발표된 그의 연구의 행간을 읽어 보려 한다.
아마도 아래 연구결과를 미처 읽기도 전에 '양성평등은 남자들에게도 득'이라는 뻔한 결과를 예상하는 분들도 계실 듯하다. 그런데 그 정도로 질문 자체가 '답정너'라면 '양성평등이 자신들에게 득이 될 것을 안다면, 왜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양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도 품음 직하다. 어떻게 보면 질문 자체에 이미 답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홀터 교수는 의외로 너무 간단한 나머지 힘이 빠지는 답안을 내놓았다.
'양성평등이 자신들에게 득이 된다는 사실을 남성들이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에 소개할 연구 결과가 그간의 부족한 정보와 지식으로 답답함을 느꼈을 남성들이 조금이나마 해갈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홀터 교수 연구진은 양성평등이 실현된 국가군과 상대적으로 덜 실현된 국가군으로 실험대상을 나누고 이들 국가군 사이에서 자살, 변사, 이혼, 생식력(출산율) 등 삶의 질을 비교 대조해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예상한 대로, 양성평등이 실현된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확률이 곱절이나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반면 남녀 불문하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나 이혼율, 변사 확률은 더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연구 결과 자체는 지극히 당연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좀 더 재미난 결과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일단 양성평등 국가군에서 변사 사건 발생 비중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연구진은 변사사건 발생률이 임금 차이와도 관련 있다고 밝혔는데 임금 차이가 적을수록 변사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결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양성평등 국가군에서는 양 성별의 자살률이 고르게 분포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에 그렇지 못한 국가군에서는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훨씬 더 높게 집계됐다고 한다.
양성평등은 위에서 지나치듯 언급한 임금 격차와도 특히 긴밀한 상관성이 발견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양성평등이 사회 복지와 건강 수준을 제고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임금 차이를 최소화하고 임금 형평성을 실현하는 것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홀터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의 질적 수준과 양성평등의 관계성에 대해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는 문제"라고 할 정도로 양자 간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설명이다.
생식력을 비교한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연구진은 유럽 국가들과 미국 내 복수의 주들 사이에서 양성평등과 생식력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유럽 국가들은 양성평등이 실현된 나라들일수록 생식력이 높게 나타나는 결과를 보인 반면, 미국의 경우 흥미롭게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양성평등이 상대적으로 실현된 주들일수록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홀터 교수는 이를 두고 유럽과 미국의 양성평등 규범과 체제가 상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유럽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좀 더 양육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두는 반면에 미국의 양성평등 모델의 경우는 출산율 제고나 양육 지원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사회 제반 정책들이 운영된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남성이 가사나 보육, 노인 돌봄 같은 소위 '(무급) 돌봄 노동'에 참여하는 확률이 높아질수록 성평등 실현 정도도 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가족부양과 생계유지에 온 힘을 다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남성에게 또 다른 부담을 가중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홀터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이것을 양성평등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성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라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해석했다. 예를 들어 조사 결과를 보면, 같은 유럽 국가군 안에서도 양성평등 국가군 남성의 가사 참여율은 그렇지 못한 국가들보다 거의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남성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연구진은 양성평등에 있어서의 남성의 공헌도, 증가한 양성평등 수준이 남성에게 가져다줄 혜택과 불이익에 대한 자료를 좀 더 보강해줄 수 있는 지표들을 향후 연구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서론에서 다룬 '답정너'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앞서 '양성평등은 남성에게 득이 된다'고 밝힌 바 있는 홀터 교수는 "남녀 모두 여전히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양성평등에 접근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며 양성평등에 대한 기존의 오해가 생겨나는 원인을 분석했다. 페미니즘적 접근법 때문에 양성평등의 혜택이 여성들에게만 돌아간다는 잘못된 환상이 심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해 전 한국의 '일생활 균형재단'을 취재 차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국내의 가족친화 제도, 양성평등 관련 정책들에 사용되는 용어가 '여성', 더 좁게는 '자녀를 둔 기혼여성'에만 한정되다 보니 남성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무관한 제도로 오인하기 쉽고, 미혼여성의 경우에도 자신들이 정책 대상에서 소외된다고 오해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가족부'라는 부서 명칭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여성'과 '가족'이 굳이 하나로 묶이는 것도 괴이한 데다, 가족 복지정책과 출산율 제고를 담당하는 부서라면서 왜 '여성'에만 방점을 둔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지 의문이 간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이 전부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혼자 힘으로 아이를 가질 리는 없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홀터 교수가 강조한 '남성 역할의 중요성'은 탁월한 지적인 것 같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이 점에서마저도 선구적이어서, 양성평등과 관련된 토론이나 돌봄 노동 같은 제반 정책에 의식적으로 남성들을 포함시키고 개입시키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취지에서 페미니스트 집단을 대상으로, 양성평등이 여성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