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der Issues : 양성평등과 가정폭력의 상관관계
덴마크 52%, 핀란드 47%, 스웨덴 46%.
저 위의 숫자는 분명 양성평등과 관련된 수치이긴 하지만 내용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성 응답자 비율이기 때문이다.
'북유럽과 가정폭력'이라는 이상한 조합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 전직 패션매거진 에디터였던 영국인 작가 헬렌 러셀이 쓴 책을 읽고서 였다. 작가가 레고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1년간 덴마크에서 거주하면서 느낀 경험들을 담고 있는데, 책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위 통계 수치와 관련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녀가 상호간에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북유럽 국가들에게서 가정폭력이 역설적으로 높은 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 남성이 여성에게, 또 여성이 남성에게 도덕적 판단이나 감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저변에 양성평등이 관념적 기제로 작용한 건 아닐까 하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신선했다. 작가의 말을 덧붙이면 이같이 사회에 깔린 양성평등 관념 때문에 덴마크의 남성도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신고 건수가 여성보다 적을 뿐이라고 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양성평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실현된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럽연합기본권청(FRA, European Union Agency for Fundamental Rights)이 2014년에 발표한 가정폭력에 관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가 유럽연합 국가 중 가정폭력 비율이 높은 국가 중 한 곳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유럽연합 28개국에 거주하는 4만 2천여 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해당 조사에서 덴마크는 52%, 핀란드 47%, 스웨덴 46% 순으로 신체적 혹은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고 답변한 여성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영국은 44%의 비율로 4위를 차지했고 반면에 폴란드(19%)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 15세 이후 신체적 혹은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고 보고된 여성이 3명 중 1명꼴이었고, 최근 1년간 학대를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였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가정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 공식기관에 집계되는 건수는 현저히 낮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해당 조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전체의 14%에 해당하는 여성들만이 경찰에 파트너에 의한 폭력을 신고했고, 파트너가 아닌 남성으로부터 가해진 학대 역시 13%만 신고했다고 답변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해 덴마크에 한해 진행된 별도 조사에서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중 10%가 이민자였으며, 한 달에 4명, 일주일에 1명 꼴로 가정폭력이 발생한다고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언어장벽, 법률제도적 지식 부족 등을 이유로 꼽으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 2015년에는 필리핀 여성 27명을 덴마크 코펜하겐의 위기여성센터 에 초청해 상담과 시설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분명 해당 조사가 전체 남성과 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 실태를 대변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양성평등에 대한 관념이나 감수성이 국가별로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해당 조사에 대해 각 국가마다 성적 학대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FRA는 이번 조사가 비록 적은 수의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도출된 결과이긴 하지만 사정기관에 신고되지 않은 학대 건수가 예상을 웃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시 국공립/사립 유관기관에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대책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쯤 되면 앞서 말한 헬렌 러셀과 같은 의문에 봉착하게 되는데, 양성평등과 가정폭력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2012년 발표된 또 다른 연구 결과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노르웨이 관련 부서 (Ministry of Children, Equality and Social Inclusion)에서 실시한 이 연구에서 유년기 집에서의 양성평등 실현 지수가 높을수록 아동이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는 정도가 2/3정도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한다. 조사에는 파트너간 폭력도 함께 조사됐는데 비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간략하게 조사 결과부터 요약하면, 양성평등이 가정폭력을 예방하거나 영향을 상쇄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이 무슨 뻔한 소린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기존 조사에서 '양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가정 내 폭력의 수위를 높인다'라는 정반대의 가정을 수립했기 때문에 이번 조사가 그만큼 의미가 있다(?)는 게 연구기관의 변이다. 양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남성들이 가정 혹은 사회에서 권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폭력을 불러온다는 것이 초기 가정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헬렌 러셀의 가정이 '너랑 나는 대등하니까 때릴 수 있고 더 때린다'로 요약될 수 있다면,(이게 왠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연구진의 초기 가설은 헬렌 러셀과는 조금은 초점을 달리 하지만, 그래도 가정폭력이라는 현상의 출발점을 양성평등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구진은 또 양성평등이 교육수준, 이혼과 따돌림 여부 같은 다양한 변수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읽다고 밝혔는데, 예를 들면 교육수준이 낮은 남성들일수록 '현재의 양성평등 수준이면 이미 충분하다', '정부가 지나치게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삶에 관여한다'고 주장하는 확률이 높았다는 설명이다. 또, 가내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응답자일수록 남녀불문하고 파트너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훨씬 자주 고려하게 된다고 한다. 연구진이 당초 가정의 의사결정권자가 폭력을 휘두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을 본다면, 가정폭력의 본질이란 결국 권력관계의 불균형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자료를 찾으면서 양성평등과 가정폭력의 인과관계에 관련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해 애를 먹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유럽 국가들의 양성평등 정책의 장점은 익히 잘 알려진 반면 보완할 만한 점이나 반작용 같은 부분은 좀처럼 다뤄지지 않거나 심지어 묵살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위 조사를 진행한 오슬로 대학 젠더 연구센터의 외스테인 Øystein Gullvåg Holter 교수는 "양성평등과 폭력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지식과 연구가 여전히 부족하다. 남성의 권력, 여성의 권력으로 분류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서 누군가가 '너랑 나는 대등하니까 때릴 수 있고 더 때린다'는 헬렌 러셀의 "힘의 균형이 부른 폭력설: 북유럽 사례를 중심으로"를 연구로써 증명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