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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Nov 12. 2017

북유럽, 女자

테스 애스플런드 /사회 운동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일요일, 스웨덴 중부 도시 볼랭예 Borlänge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300명의 네오 나치 군단 사이에서 홀로 주먹 쥔 팔을 치켜든 채 대항하는 여성.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스톡홀름의 반인종차별 사회단체 Expo 소속 사진가 David Lagerlö에 의해 촬영된 이 상징적인 사진이 SNS를 통해 세상에 퍼진 뒤 테스 애스플런드는 극우 세력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BBC 100 Women, https://youtu.be/jaNkoMWbPMM








스웨덴 사회는 매해 쏟아져 들어오는 수만 명의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데 이런 와중에 反이민을 주장하는 스웨덴민주당 (Sweden Democrats, SD)의 지지율은 15~20%대(2016년 기준)로, 여기에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인종차별적 정서가 가세해 극우파가 나날이 세를 확장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스웨덴의 극우세력인 노르딕 저항운동(Nordic Resistance Movement, NRM)은 극우적 성향이 특히 강한 축에 속하는 단체로 손꼽힌다. 그들은 반대파들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마치 극우파의 급습을 피해 생전에 주소지를 여러 번 옮겨야 했던 '밀레니엄' 시리즈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처럼, 반인종차별 사회단체 운동가들이 스스로의 신변 보호를 위해 거주지를 수차례 바꾸는 경우도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악명을 떨치는 NRM의 가두시위를 목격한 테스 애스플런드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길이 없어 충동적으로 주먹을 쥔 팔을 허공에 뻗는 '넬슨 만델라식 경례'를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당시 스웨덴 현지 매체들은 테스의 사진을 1985년 또 다른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던 'tanten med väskan', 일명 '바구니를 든 여자' 사진과 나란히 비교하며 기사를 게재했다. Hans Runesson에 의해 촬영된 이 사진은 노르딕 제국당 Nordic Reich party 소속 스킨헤드족 남성의 머리를 바구니로 내려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Image source : BBC 100 Women, https://youtu.be/jaNkoMWbPMM)




테스 애스플런드는 콜럼비아 출신의 아프리카계 스웨덴인으로, 생후 7개월이 됐을 때 스웨덴인 부부에게 입양됐다. 스웨덴식 교육을 받고 성장한 스웨덴인인 그녀로서는 자신이 자란 땅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신나치 세력들이 활보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유년기를 거쳐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이것이 그녀를 반인종차별주의 사회활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녀는 2016년 가디언紙에 스웨덴에서 자신이 겪은 인종차별 사례 몇 가지를 털어놓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검둥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루는 지하철을 타려고 천천히 생각에 빠져 걷고 있는데 웬 노인이 내 팔을 세게 건드리면서 인종차별적 욕설을 했는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저 좌석에 앉은 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런 틀을 자꾸 깨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못 본 척 하기보다 상호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Rowling의 트위터 글.



'넬슨 만델라식 주먹 퍼포먼스'가 찍힌 사진이 인터넷을 도배한 뒤에도 쏟아지는 찬사 속에 인종차별적 악플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최근 들어 스웨덴에서는 인종차별주의가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다. 이 같은 세력들이 표출하는 증오와 차별은 대대손손 후세대들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이것을 멈춰야 한다." 


2015년에는 아프로포비아(아프리카계에 적대감을 품고 증오하는 현상) 문제가 심각한 국가 중 하나로 UN이 스웨덴을 거론했다고 한다. 분명 스웨덴 사회 전체가 인종차별적인 것은 아니고 헤이트스피치를 일삼는 세력도 일부에 불과하지만, 테스는 이런 식의 극우세력이 활개를 치는 배경에는 사회적 무관심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극우파의 거리 시위가 허용되어선 안 되고, 헤이트스피치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하지만 집회시위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그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 지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난해 그녀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이 스웨덴 사회에서 '정상'으로 받아들여져 가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닫힌 마음과 눈을 열게 하는 것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와 그녀가 속한 단체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15세부터 27년 동안 인종차별에 대항해 사회 활동을 벌여온 그녀의 노력이 뒤늦게서야 인정을 받았는지 해당 사진은 2016년 스웨덴에서 발생한 중요한 순간을 기록했다는 의미에서 '2017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됐고, 당사자인 테스 애스플런드도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테스 애스플런드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격려받는 일도 생겼다. 올해 그녀에게 카타리나 타이콘상 Katarina Taikon Prize이 수여됐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타이콘상은 인권수호와 권리증진, 사회정의 실현에 공헌을 한 사회 인사에게 수여되는 영예로운 상이다. 생전 스웨덴 집시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헌신했고 배우, 작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스웨덴의 마르틴 루터 킹'으로 불리는 집시 시민운동가 카타리나 타이콘의 이름을 기려 제정됐다. 




https://youtu.be/SzPjNM2Y8ME


테스 애스플런드의 주먹 경례는 경찰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미국 루이지애나 인종차별에 항의하던 레이시아 에반스의 퍼포먼스를 볼 때와 비슷한 종류의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Image source: BBC 100 Women, https://youtu.be/SzPjNM2Y8ME)


루이지애나 주 배턴 루지 길 한복판에서 선 채 무대응으로 진압 경찰에 항의하던 그녀는 결국 경찰에 연행됐지만 Jonathan Bachman에 의해 촬영된 당시 사진은 2016년 세계 보도사진상(현대이슈 부문)을 수상했다.






Her Quote 


If this picture of me can make more people dare to show resistance, then all is well... the people have to unite and show that it is not okay that racism is normalized and that fascists are running around on our streets.
내 사진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하게 만든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해요.
인종차별이나 파시즘이 버젓이 우리가 사는 거리를 활보하지 않도록 사람들은
좀 더 연대하고 맞서 싸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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