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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Nov 09. 2017

북유럽, 女자

Gender issues : 논란의 '성 중립 화장실'

3년 전 스웨덴에 출장을 왔다가 스톡홀름 교외의 한 어린이집에서 남녀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을 처음 봤다. 남녀 차별을 의식적으로 없애기 위한 취지로 유년기부터 교육을 한다는 현지 어린이집 교사의 설명을 들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이 나에겐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러곤 다시 3년이 흘러 유학을 위해 스웨덴을 다시 찾았을 때 마을 도서관, 대학 건물, 공공기관에서도 어김없이 남녀가 함께 사용하는 성중립 화장실을 만났다. 출장 때는 그런 느낌을 못 받았지만 막상 이걸 내가 직접 쓴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싫고 거부감이 들었다. 불편하기도 했고. 일단 남녀가 '굳이'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나, 생각이 들었는데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하겠지만 생리대 처리 같은 여성만의 문제도 있고, 남성들은 남성만의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있을 텐데 공간을 같이 쓰면 피차간에 '못 볼 것들'을 보게 될 것이고, 이런 것까지 성평등을 위해 공유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헬싱보리 스웨덴어 강의가 열리는 일종의 성인대학, COMVUX 건물 내 성중립 화장실 내부 공간. 넓고 깨끗한 편이다.


양성평등 vs 실용성 

 

둘째, 남녀평등 가치를 떠나 실용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의 경우에 한해서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남녀 화장실이 분리돼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여자 화장실의 줄을 대기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었다. 물론 공항이나 미술관, 콘서트장 같이 한시적으로 수요가 많은 건물들은 예외지만 일상적인 대학 건물이나 공공 도서관에서는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굳이 줄을 서면서 기다리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남녀가 같이 쓰다 보니 줄이 길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던 지라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스웨덴의 경우 원룸 같은 공간도 마찬가지지만 공공 화장실도 한 코너에 6개밖에 없는 대신 들어가면 내부 공간은 넓었다. 처음에는 공간 낭비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아이 기저귀 문제를 처리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면 무릎이 닿을 만큼 양변기와 문의 간격이 좁았던 한국에서의 화장실 기억을 떠올리면 더 그랬다. 말뫼 공원에서 체험(?)했던 한 남녀공용 공공 화장실의 경우에는 황당할 정도로 화장실 내부 공간이 넓었다. 내가 사는 기숙사 원룸 방이 작은 편이 아닌데 화장실 하나 면적이 원룸 방만 했기 때문이다. 휠체어 전용공간도 아니었는데도 화장실 문을 잠근 뒤 한참을 걸어 양변기로 이동해야 할 만큼 (내 관점에서는) 공간 낭비가 심했다. 스웨덴에 일인당 허용되는 최소한의 공간 점유율에 대한 법률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헬싱보리 공공도서관 내부. 계단 너머 목재로 마감된 벽에 아무런 표식이 안 붙은 방 2칸이 성중립 화장실이다.


의외로(?) 좋은 위생상태


세 번째 이유는 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화장실이란 사용빈도가 적을수록, 공간당 이용자 수가 적을수록 위생상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유 공간이 넓은 스웨덴 화장실 특성상 화장실 수는 분리됐을 때에 비해 적은 편이고 안 그래도 적은 화장실을 남녀가 쪼개 쓰다 보니 휴지통도 빨리 차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편견이 깨어진 것이, 남녀가 숱하게 사용하는 화장실인데도 청소를 자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석 달 정도 지내면서 공공장소의 성중립 화장실을 두루 사용해 봤는데 한 번도 더럽다는 느낌이나, 못 볼 걸 봤다거나 소위 '테러'를 당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도 하겠다. 여중 여고 교실보다 남녀공학 교실이 상대적으로 깨끗한 것과 비슷한 원리인 걸까. 실제로 남녀가 같이 사용하면, 따로 사용했을 때보다 위생상태가 더 좋아지는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낙인효과와 범죄 악용 우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들이 상쇄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올해 9월쯤 한국의 한 대학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최초로 설립하는 것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는 기사를 봤다. 찬반양론 입장을 보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근거를 찾는 시각이 보여 신선했다. 일단 '성소수자 화장실을 쓰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도 낙인찍힐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용무가 급하면 그런 걸 따질 새도 없기 때문에 그리 우려할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룬드대학교 헬싱보리 캠퍼스 사례에 한해서 보면 (성중 립이라 해놓고도) 남녀 표기가 같이 붙은 성중립 화장실 외에도 여자 표시만 붙은 여자전용 공간도 나란히 붙어 있는데 화장실 수가 부족하다 보니 남자 학생들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걸 종종 봤고 나를 포함 다른 여성들도 그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처음부터 남녀 구분이 없으니 아예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De-genderization 효과인 건가... 

두 번째로 몰카 등 성범죄 우려 주장이 있던데 이건 국가별 여건이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할 점인 것 같긴 하다. 항공기처럼 수용공간이 한정된 장소에서는 반강제적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쓰고 있어도 사람들이 많아서 범죄 공간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인적이 드문 공간, 특히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들도)가 빈발하는 편이고 실제로 취재를 할 때도 그런 사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웨덴이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한 주된 목적은 남, 녀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 구성원들을 수용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일인용 공간치곤 넓은 내부 공간만 봐도 그렇다. 자녀들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는 부모나 유모차를 대동한 사람들에게도 적합할뿐더러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도 요긴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 녀가 구분된 동시에 휠체어 사용자 칸이 분리된 한국에서는 일반인이 휠체어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유별나게 비칠 수 있지만 다 같이 한 공간을 사용했을 때는 그런 경계조차 흐릿해지는 효과가 있다. 트랜스젠더나 양성애자처럼 남, 녀 어느 범주에도 소속되기 힘든 집단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때 스웨덴 사회 일각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화장실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트랜스젠더 사회 활동가들은 일찍이 성중립 화장실 수를 더 늘려 달라고 주장하며 공중 화장실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트랜스젠더 권익 보호 사회 활동가 겸 여배우인 알렉사 룬드베리 Aleksa Lundberg는 2015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별을 남, 녀 둘로만 나눠 생각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분법적으로 성별을 구분할 때 트랜스젠더나 양성적인 사람들은 소외되기 마련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내놓은 대안(?)이라는 게 기발하다. 화장실 공간에 남, 녀 구분 대신에  'stand-up'이나 'sit-down' 표기를 해서 다양한 화장실 이용법을 사용자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는 것. 


당시 스웨덴 정부가 나서 법안을 검토하는 등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이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유럽 내 다른 국가에서는 남, 녀 표시 외에 다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세모꼴 같은 도형을 표식에 삽입하는 식으로 LGBT 화장실 사용자들을 배려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추세다. 올해 3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LGBT 학생들을 보호하고 학교폭력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하자는 움직임을 보였다. 반사회적 행동과 따돌림을 예방하고, 화장실의 위생도는 더 높아지며, 비용 대비 효과도 높다는 등의 근거를 들면서 보수적인 사회를 설득하는 분위기인데 이때 성공사례로 소개된 것이 북유럽의 성중립 화장실이었다. 

결국, 성중립 화장실은 단지 화장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포용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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