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한 숙소 쓸수록 군내 성희롱 덜하다?
여성의 병역 문제를 다룰 때 흔히 제기되는 우려 중 하나가 여성이 발휘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노르웨이에서도 일각에선 영하의 날씨에 벌목을 하고 무거운 짐들을 실어 나르는 등의 육체노동을 여자들이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그 외에도 병영 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도 자주 거론되는데 이와 관련해 조금 해묵은 조사이긴 하지만 2014년에 노르웨이에서 행해진 재미있는 연구 결과(Unisex rooms in the army take emphasis off gender) 가 있어서 가볍게 다뤄보려고 한다.
우선 노르웨이 국방부에서 예산을 지원한 이 실험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됐는데, 군대 내 남성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13명(여자 6명, 남자 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군대 밖과 안의 남성 집단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그런 뒤 노르웨이 북부 부대와 남부 지역의 왕립 해군, 해안경비대를 대상으로 사례 연구가 진행됐다. 총 7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신병 교육훈련 기간부터 시작해 군 복무 4~5개월 기간, 전역 기간에 걸쳐 조사가 이뤄졌다.
요점부터 짧게 추려보면, 2014년 발표된 연구는 "유니섹스 숙소가 남녀 군인들 사이에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 부분 기여했으며, 이런 결과는 성적 구별 완화(de-genderization) 현상에 기인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성적 구별, 성차별 완화 효과
실험 대상자들은 초반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긴장과 어색함을 풀게 됐고 가까워졌다고 한다. 비교 대조를 위해 남성 6명과 여성 2명이 성희롱 사건 다발지역으로 간주됐던 공간에서 숙소를 함께 사용하게 됐는데 연구진들에 따르면 진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우선 같은 거주공간을 점유함으로써 남녀 간 성적 구분과 경계가 모호해지고 결과적으로 성차별이 없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유니폼 역할을 하는 군복 역시 남녀 구별을 없애는 데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교육훈련 외에도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결국엔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됐다. 이를테면 샤워나 청소를 할 때 불편함을 수반되지만 최소한 남녀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한 공간에 남녀를 함께 두는 것에 대해 되레 성적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이에 대해 조사 기관(Norwegian Research Defence Establishment)의 담당자 Nina Hellum는 "한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노출되는 빈도를 높이는 것이 관용과 상호 이해, 인내심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서로의 행동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전우애가 싹트고 형제자매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결과를 끌어낸 것이다.
팀워크, 동질감 강화
연구진은 남녀 간 팀워크의 균일감이 높아지는 것에도 주목했다. 끼리끼리 어울리기 쉽고 친목도모를 위해 집단별로 뭉치는 경향이 있는 학교나 회사, 여타의 사교단체 같은 집단에서와는 달리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험에 참여한 한 조사 대상자는 "군대 밖 다른 사회 집단에서는 패를 지어 다니거나 서로 비방하기 쉬운 반면 비상시를 대비해 상호 간의 신뢰 구축이 필수적인 군대에서는 남녀 구분 않고 일단 친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수적 열세를 겪고 있는 여군들에게 동기부여
본격적인 실험이 이뤄지기에 앞서 조사팀은 현황 조사를 했는데 특히 노르웨이 북부 지역의 군대에서 복무하는 대부분의 여군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군 복무를 수행하기에 물리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인정했고, 더 나아가 부족한 자신들의 역량이 군사력 전체에 지장을 주는 걸림돌로 작용할까 걱정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들 북부 소대에 복무하는 여군들의 비율은 남녀 전체의 10%대 였는데 군 복무를 하는 여성의 성비가 적을수록 이탈자가 생겨나고, 다시 남성에 비해 더 적은 수의 여성이 군대에 남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니섹스 룸 실험을 적용한 뒤 이 문제가 조금이나마 개선의 여지를 보였다고 한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남녀 간에 심리적 유대감이 돈독해졌고 성별 차이를 넘어 상대를 대등한 전우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팀워크가 두터워졌다는 설명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사 기간 중 신병 교육 훈련 기간 중에는 남녀가 엄격히 구별된 공간을 사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앞서 언급한 유니섹스 룸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노르웨이 해군 신병 교육 기간에 남녀 간 공간을 분리한 것이 남녀 간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들었는데, 예를 들면 여군들만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파벌 놀이, 암투, 중상모략 같은 문화가 문제가 됐다고 한다. 여성과 여성이 서로 적대시하고, 다시 남성과 여성이 반목하고, 서로를 규정짓기 위한 고정관념을 반복 재생산하면서 문제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반면 남녀가 유니섹스 공간에서 생활할 동안에는 이러한 경향이 둔화된다는 것이 관찰됐다고 하니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다.
성희롱 문제, 개선 여지 보이지만 예단 못해
군내 남성문화로 인해 남성들이 여성은 자신들의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간주, 배제하거나 괴롭힌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전에도 많이 보고됐는데, 앞서 공간을 공유한 남녀 실험집단 중 북부 노르웨이 소대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괴롭힘 사례가 단 한 건 관찰됐는데, 그나마도 남자 신병이 여자 신병에게 치근덕대는 말을 건네려다 묵살당하자 공격적으로 대응한 게 전부라고 한다. 반면에 왕립 해군이나 해안 경비대에서는 성희롱, 부정적인 남성문화 사례들이 더 많이 적발됐는데 예를 들면 여성의 생식기와 관련한 표현을 쓰면서 그것이 성희롱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이 언급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부 지역에서와 같은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관리감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군대 내 관리자가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고와 처리 절차가 체계적인 동시에 투명해야 한다는, 다소 교과서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양성평등 부문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는 노르웨이의 사례가 한국에도 과연 적용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해당 연구 결과에 대해 노르웨이 여군들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여전히 응답자의 18%는 그들이 부적절한 언행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비췄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볼 문제다. 노르웨이 국회에서 여성 징병 안을 통과시킨 지도 이제 겨우 4년, 아직까지는 성공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고 하나 5년이 채 되지 않은 탓에 여성 징집에 관심이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도 눈치를 보는 중인 것 같다. 아마도 2018년, 내년부터 여성 징집에 들어가는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지켜본 뒤 대열에 동참하게 될 국가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남녀가 함께 복무하는 군대에 대한 상이 좀 더 또렷해져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모델을 제시할 수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