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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May 25. 2018

코펜하겐서 BTS(방탄소년단) 발표한 사연

덕질이 학점에 미치는 영향

4월 25일 덴마크 코펜하겐 경영대학교(CBS: Copenhagen Business School)와 스웨덴 룬드 대학(Lund University)이 공동 진행하는 Social Media Marketing Workshop for the Destination Development가 열렸다. 25일에는 룬드대 학생들이 CBS를 방문해 워크숍을 가졌고, 26일에는 CBS 학생들이 룬드대를 찾아 프로젝트 협업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학기에는 총 3번의 발표(CBS와 Collaboration, Group work, Individual presentation)로 평가가 이뤄졌는데 그간 얻은 교훈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 비한국인 독자를 위해 부득이하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게 됐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April 25th, Copenhagen Business School


덕업일치


두 학교의 학생들이 조를 편성해 segment로 특정할 Pop community와 Destination을 정하고, 그들 집단을 관광지에 유치하기 위한 Social marketing product를 계발하는 것이 과제였다. 우연인지 내가 속한 조에서 CBS의 한 덴마크인 여대생이 "BTS(방탄소년단: K-pop boy group in South Korea. also called the Bantan Boys, an abbreviation of bulletproof Boy Scout. ) 팬을 topic으로 하는 게 어떨까?"하고 의견을 냈는데 덴마크에서 아미를 만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터라 반색을 했다. 다행히 다른 학생들도 열린 마음으로 공감해줘서 아미 팬들의 Demographic features, symbol, ritual and consumer behaviors 등을 Netnography를 통해 조사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발표를 준비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BTS 발표 준비를 하고 있다니..' 하며 반신반의했던 게 기억난다.


4월 25일 CBS와  Lund 대학생들이 BTS 발표 준비를 하며 작성한 자료물.


마지막 발표날에는 스페인 출신 CBS의 교수 Anna가 "모든 조 발표가 다 끝나면 마지막 순서로 방탄 노래를 들어보자"라고 제의해서 유튜브로 DNA(우리 조 덴마크 여학생의 선곡) 뮤직비디오를 시청했다. 아시아권, 미국과는 달리 아직 Kpop이 서브컬처로 여겨지는 유럽인지라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까 긴장도 됐고 나 자신도 아미인 탓에 내가 좋아하는 그룹에 대해 평가를 듣는 게 솔직히 두려웠다. 그래서 뮤비 시청 내내 핸드폰만 보고 만지작됐다. 스웨덴, 그것도 국제학생들이 다 모인 룬드대 교실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울려 퍼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이틀 전 BBMA에서 방탄소년단이 컴백무대를, 그것도 미국 빌보드 무대에서 갖는 걸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는데 이날 발표 때도 티는 못 냈지만 정말 감격적이었다. 미국 언론이 BTS 이상으로 아미 팬들에 대해 관심이 컸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아직 폐쇄적인 시장인 유럽에서 내가 수업 중 BTS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CBS의 그 여학생 같은 아미의 팬심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국외의 아미 팬들을 볼 때면 특유의 극성스러운, 좋은 의미로는 loyalty가 강한 한국형 팬 문화가 연상된다. 마치 BTS라는 문화상품과 한 묶음으로 수출된 것처럼.



두 번째 프로젝트는 Developing Socail media marketing product와 관련된 발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CBS와의 조 발표는 그 예행연습이었는데 일부러 (아이디어를 도용당하지 않기 위해) 본격적인 프로젝트 준비에 들어가서야 우리 조에게 BBC's Sherlock Fan Community를 우리 Target으로 정하고 이들 관광객을  London으로 유치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디어를 숨긴 것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5월 18일 전체 조 발표가 이뤄졌는데 우리 조의 발표가 가장 독창적이었고 담당교수에게서 드물게 "London DMO(Destination Management Organization)에 이거 당장 가져가서 보여줘도 되겠다"는 상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원들이 다 착하고 성실해서 제안을 오픈 마인드로 받아주고 아이디어를 내준 덕이 컸다.

Sherlock Fans in Eastern Asia are keen to create and share cartoons related to BL (Boys Love).


우리 조의 프로젝트는 셜록 드라마를 보는 아시아 팬들을 대상으로 Webtoon(online-based interactive cartoon)을 tool로 활용해 2차 콘텐츠를 재생산하도록 유도하고 Game, Investigation Activity 등을 상품으로 폭넓은 런던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East Asian Fans- Fan arts-Web Caroon-Destinations 이런 식의 Flow가 큰 줄기를 이루는데 웹툰을 넣은 건 내가 평소 웹툰 덕후이기도 했고, 계획적으로 한국을 동아시아 타겟층에 넣기 위해서 겨냥한 큰 그림의 일부이기도 했다.


짧은 타국살이를 겪으면서 대부분 유럽인들은 특히 일본에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중국은 그 거대한 존재감을 무시 못하는데 비해 한국은 아직 아이덴티티가 미미했다. 그나마 Kpop과 영화 같은 문화상품 덕에 한국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주변 지인들을 통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였는데 솔직히 그 정도도 과거 3~5년 전보다 발전된 성과라고 생각한다.


웹툰은 한국이 선두지휘하고 있는 독보적인 장르다. 일본은 아날로그 망가와 애니메이션 대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만화 시장은 웹툰으로 진화하고 있는 추세고 그 선두에 한국이 개척자로 있는 상황이기에 우리 조가 웹툰을 주 소재로 선택한다면 한국 이야기를 넣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중국, 일본 관광객만 이야기하던 조원들도 자료 조사 후 한국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큰 그림을 미리 다 짜 놓은 상태에서 조금씩 조원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발표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동시에 내 나라의 브랜드를 조금이라도 알리는 성과를 낼 수 있으니까. 큰 그림을 갖고 있으면 조원 간 마찰도 없고 일이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 내 진행된다. 내친김에 조원 중에 한 명이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Our Official London Tour Website for Eastern Asian Sherlockians.



3번째 프로젝트는 지금 준비 중인데 도시 하나를 골라서 Literature 여러 개를 읽고 concepts를 연결해 분석하고 페차쿠차 (Pecha Kucha Presentation: 20개의 슬라이드를 사용, 장당 20초간 총 6분 40초 동안 발표하는 형식) 발표를 해야 한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도시 상하이를 골라서, 셜록 프로젝트 발표를 끝낸 당일 바로 프레젠테이션까지 만들었다. 지난 Course에서 고생을 많이 해선지 이번 코스엔 일이 너무 수월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라 왜 그런지 자문을 해 봤다.


덕업일치의 자세가 정말 큰 힘이 된 것 같다. 상해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서 5번 넘게 찾았던 곳이라 잘 알고 있었고, 주변에 런던 덕후인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 덕에 홈즈 박물관 자료 사진까지 구했다) 도움을 받았다. 아시아 시장으로 타깃을 좁히고 셜록을 매개로 한 웹툰과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도 평소 웹툰 덕질을 쉼 없이 했던 덕이 컸다. 존경하는 하일권 작가님의 '마주쳤다'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내가 직접 만든 웹툰에 작가님의 아이디어를 응용했다. 우리 리포트의 바이블로 삼았던 Warwick University의 중국 학생(Min Lin)이 쓴 논문도 알고 보니 Warwick 대학 최우수 논문 작품상 수상작이었는데, 새삼 덕후들의 힘이 위대하구나 다시금 느낀 계기가 됐다.



Our presentation to promote London as a hallmark city for Sherlockians.


덕력이 국력이다


케이팝과 영화 같은 일부 소프트파워를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자원은 풍성한데 그걸 널리 알리는 노력이나 마케팅이 세련되지 못하고 부족해서 존재감이 미미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가까운 일본을 예로 들면 일본의, 특히 현대문화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에 동경 심리를 가진 유럽인이 적잖았는데 정작 깊이 이야길 나눠보면 일본의 역사, 철학, 정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기보단 '이미지'나 '브랜드'로서 일본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결국 국가 이미지는 국력과 직결된다는 말인데, 한류도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3년, 5년 전보다 눈에 띄게 호응하는 사람들의 범주가 넓어지고 있는 게 실감 난다. 아직은 kpop 문화가 서브컬처로 받아들여지는 다소 폐쇄적인 유럽에서도 덕후층이 넓어지고 있는 걸 볼 때마다 감개무량하다. 아무튼 이런저런 경험들을 할 때마다 무대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한국 아이돌들을 비롯한 아티스트들, 영화인들에게 일정 부분 국가 이미지를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감사함을 느낀다.


너무 글이 장황해졌는데 최근 BTS가 거둔 성과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기가 힘들 정도다. 단순히 한 KPOP 아이돌 그룹의 성공으로 보긴 힘들다. 거대 자본의 힘 없이 피나는 노력과 집념으로 성공한 청년들과 그걸 지지한 덕후 커뮤니티의 힘을 보면서 국내외의 많은 젊은이들이 용기를 얻고 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기도 하다. 새벽에 BBMA 무대를 보면서 든 생각은, '뭐 지금은 아직 덜 알려져서 일부 친구들이 BSA로 발음하고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불과 몇 년 뒤엔 유럽 한 소도시의 쇼핑몰에서 한국어로 된 BTS 노래가 들릴 지도 모를 일이고, 언젠가는 나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7명의 소년들이 꿈을 이뤘듯 그렇게 모두의 꿈이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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