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졸업식
딸이 졸업을 한다.
2007년 생.
6학년 언니들이 고깔모자를 씌워주던 입학식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졸업이라니.
초중고 12년의 의무교육 기간 중 반을 이미 달려온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선택지와 갈림길 앞에 저도 모르는 새 서 있었고 저도 모르는 채 어떤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국제학교라든가, 예고 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자기도 모르게 지나치고 말았겠지.
내가 지금 몇 년 무리해서 조금 더 빨리 상승하는 에스컬레이터를 가진 아파트로 갈아타려고 했던 것처럼 어떤 부모들은 지금 몇 년 푸시해서 좋은 대학으로 이어지는 길로 아이를 밀어넣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오랜 내적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무리하지 않고 내 속도와 페이스에 맞게 사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것처럼 아이는 자기가 걷는 걸음이 이끄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
6학년 여름방학이 되면 수학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레벨테스트를 하러 두 개의 학원에 간 적이 있다. 하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학원이고 가격도 반 값에 아이의 지금 수준에 맞는 분량을 매일 가서 풀고 모르는 것은 선생님께 질문을 하면서 진도를 나가는 학원이고 다른 하나는 주 3회 셔틀버스를 타고 중계동 학원가로 가야 하는 학원이었다.
동네 학원 원장 선생님은 딸래미 같은 아이는 알아서 하는 아이라며, 학원 한번 안 다닌 아이가 이 정도로 자기가 배운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특목고도 갈 수 있다고 띄워주셨지만 나는 '아이를 제가 이끌어서 특목고에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가 가겠다는 곳에 보낼 거예요.' 하고 말았다.
중계동 학원은 중학교 1년 교과를 9단원으로 나눈 학원의 커리큘럼이 이미 3번째 단원에 접어든 상태였는데 아이가 선행은 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배운 것은 확실히 아는 아이라서 초반에 조금 고생하면 곧 따라 갈 거라며 받아주었다.
테스트 후에 어느 학원에 가고 싶냐고 했더니 아이는 중계동 학원을 선택했다.
어느 날은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8시 셔틀을 타고 와야 하는데 아이가 배우지 않은 부분이 비어있어서 숙제를 못해왔기 때문에 나머지 공부를 시킨다는 통보였다. 10시 셔틀을 타고 갈 거라고.
네? 저녁도 못 먹을 텐데요? 돈도 안 가져갔고요.라고 말했지만 '아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라며 통보는 끝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밥을 먹도록 하겠다는 없다.
얘는 공부가 비었고, 나는 그걸 채운다. 대화 끝.
그렇게 몇 번을 나머지 공부를 하고 나더니 아이가 말했다.
여기서는 내가 너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힘들어요. 그냥 동네 학원으로 갈래요.
나야 땡큐지. 학원비가 두 배인데. 그리고 공부 할 놈은 어디서든 한다니까. 공부는 원래 혼자하는 거야,라며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아이는 지금도 6학년 2학기 단원의 최상위 수학 문제집을 혼자 매일 풀고 있고 중1 1학기 수학을 학원에서 풀고 집에서도 중1 교재를 사달라고 해서 풀고 있다. 내가 중1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과하게 잘 하고 있다.
경시대회를 나가고 교육청이 선정하는 영재코스를 다니는 아이는 아니지만 매년 자기 학년의 공부를 충실히 하고 배운 것은 확실히 아는 아이로 자라줘서 고맙다.
그런데 가끔은 생각이 난다. 아이가 레벨테스트를 보는 동안 배가 고프니 뭘 좀 먹어야겠다며 잠깐 학원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가. 학원 버스가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5시가 되자 모든 층이 학원으로 채워진 그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까맣게 줄지어 서있던 아이들의 모습. 내 아이가 따라가지 못하고 끝내 놓아버린 선행의 길을 오래 전에 누군가(누구겠니 엄마겠지) 넣어주어서 무난히 걷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
아이 담임 선생님이 당신 자녀들을 학원 안 보내고 대학 보낸 얘기를 하시면서 '결국 선행을 해서 도달하는 곳이 어디겠어요. 고3까지의 커리큘럼인데, 거기 빨리 도달한다고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라고 하셨었다. 나도 동의하는 바라 초등학교 내내 니가 배우는 학년의 내용만 잘 알고 가면 된단다,라고 얘기해 왔는데 가끔은 생각이 난다. 엄마가 안일해서 아이는 더 해낼 수 있는데 푸쉬를 못 받는 거 아닐까...라는 불안함이.
넌 그럴 능력이 있어. 지금 잠깐 덤불을 헤치며 포복해서 이 길을 벗어나 저 길로 들어서면 그때부턴 너도 너끈히 걸어갈 수 있어!라고 끌고 갔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며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기도 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언제나 실제보다 크다. 그때 2억을 더 빌려서 그 집을 샀으면,이라는 가정에서 그때 나는 2억을 더 빌려서는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걸 계산하지 않는다. 그때 아이를 좀 더 푸쉬했으면 이라고 가정하면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남들은 모두 아는데 나만 모르는 공부를 해야하는 위축된 분위기가 줄 스트레스를 계산하지 않는다.
나도 고등학교 올라갈 때 잠깐 동안 지금 생각해도 매우 큰 돈의 학원비를 내는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모두 선행이 많이 되어 있는 아이들이라 나만 입을 다물고 있는 아이였다. 이 학원비가 부모님께 드릴 부담과 모두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 같은 느낌에 위축되어 있던 나는 결국 한 달만에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내가 그 학원을 더 다녔다면 더 좋은 대학을 갔을텐데...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부모가 된 나는 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혼자 이 미련을 떨고 있는 것일까.
아이도 나도 지금 우리의 깜냥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그 최선이라는 단어는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이라는 내용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 가장 잘 맞는,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결론은 다시 돌아와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을 꾸준히 내 속도대로 걸을 것.
항상 내가 하는 고민의 끝은 지금 하던 거나 잘 하자로 귀결되는데 이런 고민이 일어날 때 머리 속이 어수선한 채로 그냥 사는 것보다는 제자리로 돌아올지라도 고민의 자락을 붙잡고 펄럭펄럭 휘둘리며 날릴 때까지 흩날려 봐야 보잘 것 없어보이던 내 현실이 지금 나에게 최선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딸아.
우리는 그렇게 또 생긴 대로 하던 대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자.
조종사들의 팔과 다리, 몸통 길이를 재어 누구에게나 잘 맞는 표준 치수의 조종석을 만들려고 했던 시도의 결론은 '그런 황금치수는 없다'는 것이었던 것을 기억하자.
나에게 꼭 맞는 것은 내가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걸 잊지 않으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
그러기 위해 오늘은 같이 허리띠를 풀고 고기를 썰자.
졸업을 축하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