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초6 아들을 돌보는 방법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원칙에 따라 12월 5일부터 10일간 자가격리 중이다.
2년만에 열린 BTS의 스타디움 콘서트를 보기 위해 미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첫 두 공연을 보고 이틀 쉬고 3, 4회 공연이 남아있을 때 해외입국자는 백신 접종 여부 관계 없이 자가격리 10일이 강제된다는 뉴스가 떴다. 처음엔 몹시 당황했다. 내가 계획을 짤 때의 규정은 백신 접종 완료자의 경우 입국 후 24시간 내 코로나 검사를 하고 그 결과가 음성이면 자가격리는 면제되고 7일간 체온을 재서 자가진단앱에 올리는 수동감시 체제로 지내다가 6일째 되는 날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 결과가 나오면 7일째에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바뀐 규정에 의해 입국한 날 PCR 검사를 해서 음성 결과를 받고 같이 여행했던 친구네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내가 집에 가면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없어서다. 자가격리 중인 가족이 있냐는 질문이 등교를 위한 자가진단 설문에 있다.
아이는 내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2차 백신을 맞았다. 접종 후 이틀이 지난 날, 몸이 아프다며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배도 살살 아프다고 했다. 나도 접종 후유증으로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집에서 쉬라고 했다. 그러고는 저녁에 PC방에 간 걸 나중에 아이아빠가 알려줘서야 알았다.
하루에 6~7번 알람을 맞춰놓고 챙긴다고 챙겨봐도 물리적 부재는 어쩔 수가 없다.
"PC방에 가고 싶을 수 있어. 그런데 몸이 아프다고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은 날에 가는 거는 아닌거야."
아이에 대한 실망감에 차오르는 화를 간신히 누르며 말했다. 화는 겨우 억눌렀지만 니가 한심하다는 의미를 실은 한숨소리는 끝내 수화기를 건너 아이의 귀에 가 닿았을 것이다.
국어, 사회, 과학 문제집 2페이지씩 풀고 채점하기, 하루 30분 독서, 본인이 중학교 가기 전에 공부해야겠다고 들고온 영어단어집 두 페이지 읽고 익히기. 집중해서 하면 하루 1시간 30분이면 끝날 매일의 할 일은 내가 집을 떠난 날부터 한 적이 없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할 일은 먼저 하고 노는 것, 놀고 싶더라도 '이젠 할 일 해야해', 하고 자제하는 능력 정도인데 초등 6학년에게 쉽지 않은 일인 걸 안다. 어른도 실천하지 쉽지 않은 일이다보니 아이에게 습관이 들 때까지 부모인 내가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것 한 가지만 도와주려고 하고 있는데 초6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고마운 것은 매년 아주아주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랄까. 아이의 자제력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의 놀고자하는 욕망도 같이 커지는 것 같다. 아니 그냥 비례가 아니라 세제곱으로 커지는 기분이다.
아이와 다른 타임존에 있을 때는 나도 여행중이고 체력이 딸려서 아이의 일과를 챙기는 게 내 능력 밖이었지만 지금은 같은 시간대에 들어와 있고 자가격리 중이라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열심히 챙겨보기로 한다. 지키기 쉽지 않다고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으니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정신이 없으므로 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일어나야 할 시간대에 알람을 설정한다.
큰 아이용 7시 반, 작은 아이용 8시.
다음은 아이가 학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학교에서 별 일은 없었는지, 집에 간식이 뭐가 있는지, 학교에서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보기 위해 아이의 하교시간에 맞춘 알람을 또 설정한다. 이것도 2개.
다음은 저녁시간용이다. 이때는 두 아이가 함께 집에 있을 시간이라 알람은 한 번이면 된다. 집에 먹을 게 뭐가 있는지, 뭘 먹을 건지, 적당한 게 없다면 뭘 먹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해주거나 주문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둘째 아이를 챙기기 위해 8시 반에 알람을 설정한다.
우리 회사에 일본인 주재원이 계신데 코로나 때문에 2년간 가족들을 못 보고 있다. 가족들을 오래 못만나는 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저녁 먹을 때마다 영상통화 카메라를 켜두고 함께 식사를 한다고 대답하셨던 게 기억났다. 새벽 글쓰기 방에 참가하시는 분들은 아침마다 카메라로 노트북 키보드를 비춰놓고 각자 글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떠올라서 아이에게 문제집에 카메라를 맞추라고 하고 아이는 문제집을 풀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페이스톡을 통해 나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 아이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그렇게 같이 문제집을 풀고 채점을 하고 책 30분을 읽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린다. 집 안방에서 해와라, 해와라 노래를 부를 때보다 더 효과적인 것 같다.
그 후에는 영어 단어집을 두 페이지 읽는다.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카메라로 책을 비춰서 물어본다. 예문을 안 읽으려고 해서 한 번 읽으라고 했더니 순순히 읽는다. 머리에 넣기 위해 한 번 더 읽으라고 했더니 어김없이 반항한다.
슈야, 이 반복이 공부야. 공부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아니 근데 전에 하던 거랑 너무 분량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그래? 엄마는 비슷한 거 같은데. 한 번 계산해 볼까? 단어장 두 페이지에 단어 몇 개있어?
17개요.
그럼 17개에 예문 2개씩이니 다 읽으면 34문장이겠네? 너 예전에 매직트리 하우스 한 페이지 5번씩 읽은 거 기억 안나? 거기도 한 페이지에 문장이 10개는 넘었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얼추 양이 비슷하지?
알겠어요. 읽을게요.
이제 머리가 굵어진 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이 정도는 내가 해야겠다고 본인이 납득해야 한다. 아 그냥 하라면 좀 해!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 맞는 엄마로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하다. 자가격리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3일 남았다. 자가격리가 끝난 후에도 나는 안방에서 아들은 제 방에서 페이스톡의 신세를 조금 더 져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