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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May 21. 2023

수학 75점이 최고점인 중2의 중간고사 후기


중2 아드님이 중간고사를 친 성적표가 왔다.




© firmbee, 출처 Unsplash


가장 잘 친 과목은 수학으로 앞자리가 7로 시작한다.


(아드님에게 니 점수 앞자리를 엄마 글에서 공개해도 되는지 묻고 허락을 받았다. 조건은 과학이 몇 점인지는 밝히지 않는 것이다.)


엄... 중학교 수학 90점 이상만 받으면 다 A를 받는데 그 점수는 고등학교 가면 1~4등급으로 나뉘게 되므로 참으로 의미리스한 성적인데 앞자리 7자로 시작하면 엄... C 정도 되나...


근데 그 성적은 참 의미가 있죠? ㅋㅋㅋㅋ


과학은 또 듣도보도 못한 점수를 받아왔는데 자기 말로는 답안 작성을 밀려서 적어버렸단다.


'참 가지가지 한다. 엉망진창이구만!' 이라는 말이 마음 속에서 초정리 광천수처럼 솟구쳐올랐지만 목구녕을 통과하기 전에 꿀꺽 삼켰다. 장하다, 나녀석.


대신 이렇게 물었다.


"안 밀려 썼으면 어땠을 것 같아?"


아들이 말했다.


"별 차이 없겠죠?"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국어와 영어는 과학보다는 높지만 수학보다는 낮은 난감한 점수를 받아왔다.


"너 이 점수에 만족해?"


"아니요."


"그럼 어떻게 할거야? 아인슈타인이 그랬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상이다,라고. 저번 시험처럼 준비하면 안 된다는 얘기야. 너 수학 엄마랑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지? 풀고 채점하고 틀린 걸 다시 풀고. 그걸 다른 과목들에도 해. 그렇게 해서 다음 시험에는 전과목 70점대를 목표로 하자!"


"네."


낮에 아이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잊었다.


그날 무슨 촉이 왔는지 남편이 아이에게 물었다.


"너 성적표 아직 안 나왔어?"


아이가 성적표를 가져오자 남편은 화가 잔뜩 났다.


"누나 중학교 내내 수학 99점, 100점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내신이 그렇게 빡세지도 않은 일반고 가서도 등급이 깜놀하게 나오는데 너 중학교 성적 이래가지고 요리 특성화고 어떻게 가냐고!"



성적표를 보기 전에 내가 아들한테 수학은 나름 잘 했다고 칭찬한 걸 듣고 얼마간 기대를 했었는지 엄마라는 사람이 애한테 현실직시를 하게 해줘야지 그걸 잘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니가 애를 망친다고 야단이었다.



엄... 나는 사실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화를 내면서 하는 얘기도 이해는 되지만 얘가 수학을 어떻게 풀었는지를 생각하면 나는 70점'대' 받아온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풀려보면 푸는 과정 한 줄 한 줄마다 실수를 하는데 '너 이러다가는 30점 받기도 힘들겠는데?'라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너 이러다가는 30점 받는다,가 아님 주의.



아이는 아이대로 잘 모르면 그냥 설명해주면 되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 하고 나는 나대로, 정신 안 차리고 한 문제 푸는데 식 적는 한 줄 한 줄 제대로 넘어가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럼 열불이 안 나냐고 쏘아붙이고, 아주 시험 기간 동안 매일이 난리 법석이었다.



어떤 건 다음 줄에 식을 적으면서 부호나 숫자를 틀리게 적고 어떤 건 등호를 넘어가면서 부호를 안 바꾸고 어떤 건 곱셈을 등호를 넘기면서 나눗셈으로 해야 하는데 그 계산을 틀리고 어떤 건 식의 답은 찾아놓고 문제가 묻는 답으로 가공을 안해서 틀리고. 이러는데 내가 오또케 화가 안 나냐고.



뭐 다 지난 일이고,


아이에게도 얘기했다.



엄마가 니 점수가 진짜 괜찮아서 잘 했다고 말 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우리가 가야할 목표지점이 어디든 간에 지금 니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단은 수학시험을 준비했던 것처럼 다른 과목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격려해주려고 했던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다른 엄마들이 아이들 성적이 자기 성적인양 스트레스 받고 그런다는데 엄마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니 성적은 니 것일 뿐. 공부 잘하는 아빠가 여태 힘들게 버틴 거 봤으니 공부 잘 하는 게 니 미래에 꽃길을 깔아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건, 목표가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 했던 사람은 아니고 엄마는 초 6 졸업했을 때 성적 우수상도 개근상도 못 받고 초라하게 졸업식장을 나서면서 인생 이렇게 살다가는 큰 일 나겠다 싶어서 중1 때 정신을 차렸고 아빠도 얘 이러면 인문계 고등학교 못 간다 그래서 연합고사 180점 만점에 80점 받다가 부랴부랴 공부해서 120점 만들어서 겨우 인문계 고등학교 갔던 사람이라 슈도 지금부터 각성하면 된다고. 너에게도 이제 계기가 찾아온 거라고. 너는 앞으로 성적이 오를 일만 남았다고.



그리고 중2씩이나 되는 녀석이 학교 갔다오면 가방 던져놓고 좋은 시간을 다 노는데 쓰고 밤 11시나 되어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 아빠가 자기 성적 때문에 언쟁하는 것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본 아들은 그 후로 성적표가 나오기 전보다는 성실하게 매일 4과목의 문제집을 하루 두 페이지씩 푼다고 한다.


그놈의 하루 두 페이지 제한...



천천히 한 걸음씩 그러나 멈추지는 말 것.


유노 와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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