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이가 입고 나갔다온 착장이 마음에 든다고 찍어달라고 했다.
"엄마 이 SUGA 티 만들어서 제 친구한테 팔아주시면 안돼요? 부러워하는 거 같던데."
"아이고오, 그걸 만들어서 엄마가 얼마에 팔겠니. 니 친구한테."
"하긴 그러네요."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슈가 나와서 띠꺼운 말투로 말한다.
"그 후드티랑 반바지 다 내 거네."
"무슨 소리야. 이거 다 니가 나 줬잖아."
"무슨 소리야. 집업은 준 거 맞는데 바지는 아니야. 내가 그거 얼마나 찾았는데."
사춘기 청소년 둘은 서로에게 유난히 까칠하다.
친목 배드민턴에서 받기 좋은 공을 던지며 서로 랠리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상대의 얼굴을 향해 맞아봐라, 아파봐라 하듯 내려꽂는 형상이다. 두 녀석은 서로 상대가 한 말에 마음을 다쳐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불꽃 튀는 자기장에서 한 발 물러나 바라보는 부도체 같은 나는 웃음이 난다.
먼저 슈 방으로 들어갔다.
"슈야. 누나한테 반바지 이야기를 하면서 얻고자 했던 게 뭐야? 누나가 그 옷을 안 입으면 좋겠다는 거야? 아니면 누나가 싫어! 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슈가 어느 부분이 짜증이 났는지를 열심히 얘기한다.
"그럼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누나한테 새 바지를 사주고 그 바지를 너한테 줄까? 아니면 너한테 새 바지를 사줄까?"
슈는 누나가 입던 옷을 입기 싫다며 새 바지를 사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알았어. 사람이 꼭 목적한 것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실리적인 판단만 하고 목적에 맞는 말만 하고 사는 건 아니지. 가끔은 그냥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걸 발산하려고 아무렇게나 말을 하기도 해. 엄마도 아빠한테 그랬고. 아주 어렵겠지만, 쉽지 않겠지만, 엄마는 니가 말을 할 때 내가 이 말을 지금 왜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말하는 연습을 해봤으면 좋겠어. 그런 습관이 당장 너에게 뭔가 대단한 걸 가져다주진 못하겠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고 평생의 시간 동안 쌓이면 인생이 달라질 거거든."
"니가 누나한테 유하게 '어, 나 그 바지 엄청 찾았는데 누나가 입고 있었네?'라고 했으면 다음에 돌아오는 누나의 대답이 좀 달랐을지도 몰라. 말이라는 게 그런 거거든.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른 게 돌아오는 것. 그것이 다시 내 기분을 만드는 것."
"니가 찾던 그 옷을 엄마가 입고 있었으면 아마 너, 누나한테 말한 것처럼 말하지 않았을거야. 니가 누나한테서 받아온 스트레스가 있어서 그런 걸거야. 그게 너희가 살아오면서 둘 사이에 쌓아온 관계의 거미줄 같은 것이 얽히고 섥힌 결과거든. 니네 엄마아빠 보면서 왜 저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울까, 싶었지? 엄마가 지금 니네 싸우는 거 볼 때 그래. 엄마아빠도 못 했으면서 너랑 누나가 잘 해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건 알아둬라."
"엄마도 오빠가 있었잖아. 엄마는 니네들 나이 때 오빠가 진짜진짜 싫었어. 폭군 같고. 지 마음대로 굴어서 힘들었지. 왜 이 집에 같이 태어나게 했냐고 방구석에서 울고 그랬거든. 근데 지금 엄마랑 외삼촌 사이 어때? 꽤나 화목하잖아? 성인이 되고 서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거슬릴만한 일들이 사라졌거든. 너희도 곧 그렇게 될거야. 그건 정해진 미래야. 그리고 지금 너희 둘은 엄마 십대 때보다는 훨씬 남매 사이가 좋은 편이야. 아주 훌륭하게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그 정해진 미래를 만날 때까지 둘이서 이왕이면 좀 덜 부딪히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지내주면 좋겠어."
간장이에게 가서도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에 더해서 간장이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도.
"어릴 때부터 엄마가 너한테 했던 말 있지. 너는 슈의 엄마가 아니다. 슈가 잘못하거나 규칙을 어겨도 그건 니 책임이 아니다. 그러니 너의 잣대로 슈를 판단하고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런데 K장녀라 그런지 간장이는 그걸 잘 못 했지. 저건 아니다 싶으면 꼭 가서 잔소리를 했지. 그런 것들이 쌓여서 슈한테 스트레스가 좀 있어. 그 부분을 너도 감안하고 말하면 좋겠어."
"슈가 그거 내 옷이잖아,라고 맞아서 아프라고 던지는 말에 니가 유하게 '어? 이거 니가 나한테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요새 이 옷이 내 최애 바진데... 너도 찾고 있었어?'라고 말했으면 슈가 어떻게 대꾸했을까? 니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슈를 대했다면 슈도 조금은 다르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말이란 게 그렇더라. 꿈틀꿈틀 살아서 움직여. 나에게 돌아올 말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던지는 말부터 바꿔야 되는 거더라."
다행히 두 청소년은 그 후로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의 방에 가서 지금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얘기에 귀기울여주어 고맙다.
내가, 애들을, 좀 잘 키운 거 같어.
우리집 중2의 과학, 수학 성적을 제외하면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