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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Oct 06. 2023

남편의 마법의 주문_1

'사서 잘 쓰면 되지'와 '원래 있던 거야'

나는 작고 반짝이는 것, 그 외 가죽 악세사리 등등의 물건을 좋아하지 않는다. 손에 들어오자마자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어디에든 쓸 수 있는 돈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물건을 좋아한다. 남편은 물건으로 바꿀 수 있는 기능 때문에 돈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을 결혼 준비할 때는 전혀 몰랐다.

양가 어른들은 자식의 결혼 예산으로 준비하신 돈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일체 간섭하지 않으셨다. 결혼식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전셋집 마련을 위해 돈을 잘 만들어보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결혼 준비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달라서 부딪히는 부분이 없었다.


갈등은 신혼여행으로 간 런던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생 때 못 해본 배낭여행을 해보자는 컨셉으로 간 거라 오사카에서 환승할 때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호텔이 신혼여행 내내 가장 좋은 숙소였을 정도로 저예산 여행이었다.


신혼여행 기간이 웸블던 기간이기도 했고 백화점의 파격 세일 기간이기도 했는데 남편은 어이없게도 프라다나 구찌, 페라가모 같은 명품신발을 할인가에 살 수 있다며 그걸 사는 게 남는 거라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평소 명품에도 관심이 없고 입성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건강한 몸이 제일 좋은 옷걸이다,라는 개똥철학을 가진데다가 공부하는 남자와 결혼한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방법은 적게 번 만큼 적게 쓰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돈을 안 버는 바로 그 남자가 왜 운동화를 명품으로 사고 싶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다. 

프라다 운동화까지는 OK. 한국에서 얼마나 하는지는 몰라도 십만원대면 살만 한 건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혼여행이기도 하니 한동안 사기 힘들 비싼 물건을 이 기회에 하나쯤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색깔논쟁이 일었다. 같은 품번의 운동화지만 나는 짙은 브라운을 권했고 그는 화이트를 원했다. 어차피 쓸 돈인데 왜 색깔가지고 그랬을까 지금은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변명을 해보자면 그때는 지금처럼 흰 운동화가 힙한 아이템일 때가 아니었다. 


그러니 흰색 운동화를 사면 같이 입을 옷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데일리로 활용도 못하고 신발장 안에 넣어두다가 삭아서 버리기 십상이라는 게 당시의 내 논리였다. 맞춰 신기 힘든 그 신발의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옷을 지를까 싶은 지레 걱정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키워서 보고 그의 뜻을 꺾으려고만 했을까, 18년의 세월을 건너온 나는 저쪽 편의 나를 돌아본다.


어리고 겁이 많았던 나는 우리 둘의 가계 살림을 내가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비장했던 것도 같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지금 이런 쇼핑성향을 누르지 않으면 앞으로 감당이 안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 두려움은 생필품이 아닌 물건을 사고 돈이 나가야 하는 장면에서는 언제나 부정적인 반응으로 튀어나왔다.

© benwilliams, 출처 Unsplash

결국 그는 프라다 운동화를 사고 나는 페라가모 단화를 샀다. 지갑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나였으니 내 신발을 사는데는 남편 신발을 사는 것 같은 저항의 과정이 필요 없었다. 남편은 항상 사라고 권하는 쪽이었으니까. 


그에게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 조금 비싸게 사도, 사지 않아도 될 때 미리 사도, 언제나 이 말이면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사서 잘 쓰면 돼지.”     


지금 생각해보면 신혼여행 때의 그 다툼은 남편과 나의 반복되는 갈등 패턴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남편은 없는 살림이지만 ‘잘 샀다. 이거 당신한테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뜩이나 부족한 게 분명한 예산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곳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고. 그는 끊임없이 내 안에도 있는 어떤 욕망의 실타래를 자극해서 돈을 쓰게 만들었는데 결국 돈을 쓰고 나면 그도 나도 지쳤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나는 항상 네가 뭘 하든 그러라고 하는데 너는 내가 뭘 하든 반대한다.’는 불만을 키워갔다.


나는 나대로 ‘너는 원하기만 할 뿐, 모든 뒷감당은 내가 하는데 그럼 어쩌라고?’ 싶었다.

결국 그는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한 소비는 나 몰래 알아서 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는 옷장에서 옷이 자꾸 옷을 낳는 것이었다.


어느 날 보면 못 보던 옷이 옷장에 들어와 있는데 ‘이거 뭐야?’ 물으면 전부터 있던 거라고 했다.     

또 하나의 마법의 주문이었다.     


“원래 있던 거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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