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아내인가 하면
남편이 체코에 가기 전, 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다. 시큰둥했다. 남편이 주는 선물로는 진심이 담긴 편지가 좋다. 집에 들어와서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가 주는 선물들은 내 취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애매하다. 차라리 밥을 한 끼 사주는 것도 좋겠다. 아예 통 큰 선물을 하고 싶다면 집문서, 땅문서로 부탁한다고도 종종 얘기했다.
결국 내가 받은 대부분의 생일 선물은 편지였다. 당신과 결혼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었다는 문장이 꼭 포함된.
처음엔 좋았다. 나의 온 존재를 긍정하는 것 같은 그 문장, 그것으로 충분하고 완전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 문장은 ‘이 결혼 생활로 덕을 보는 건 그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반대로 ‘나는 호구’라는 뜻이기도 했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분명해졌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 단순히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틀림 없었다. 구한 나라가 하나는 아닐 것이었다. 그가 이 결혼 생활에서 하지 않는 것과 내가 이 결혼에서 감당하고 있는 것을 저울에 달아보면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되질 않았다.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
<하상욱 단편시 지옥철>을 읽을 때는,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로,라는 말이 내 결혼생활 버전으로 떠올랐다.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동동거리며 뛰어다니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그걸 정리하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하고 와서도 아이들을 돌보고 빨래를 돌리고 밤잠을 줄여 옷을 만들고 있는데 그는 왜 일주일에 두 세 번 대학원 수업을 가고 나머지 시간엔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있는거지?
그런 의구심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듣는 ‘너와 결혼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었다’는 말은 결국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책임을 등에 업고 동동거리고 있는 호구가 바로 나라는 뜻이라는 게 점점 분명해졌다.
그는 곧잘 나에게 물건을 선물했다.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이 간당간당하는데 가장이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로, 혹은 자기 일이 아니므로 알고싶어 하지 않는 채로, 중고명품점에서 내가 신지도 않을, 위태로운 가죽 스트랩 한 줄이 달려있는 굽 높은 구찌 샌달을,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있었다는 이유로 사서 뿌듯한 얼굴로 안겨줄 때 복장이 터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면 작은 악세사리를 선물해주고 싶어했다. 때로는 팔찌, 때로는 반지. 어떨 땐 목걸이였다.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에 돈을 쓰느니 그냥 그 돈을 내게 주었으면 했다. 아니면 나들이 간 식당에서 밥을 한 번 사든지 말이다. 그 말까지는 하지 않은 채 선물을 거절하면 거절당한 그는 쌜쭉해져서 ‘싫으면 마.’라며 서운한 표정을 짓곤 했다.
철철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신발을 사러 가면 부부의 커플 운동화를 고르고는 같이 신자고 했다. 나와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그 커플 운동화의 할부금이 나가는 동안은 끝내 거절하지 않은 나의 무른 성정을 자책하곤 했다.
그런 모든 관계의 그물망 속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나는 그가 선물을 준다는 게 탐탁치 않았다. 어쨌든 그걸 사기 위해서는 돈이 들었을텐데 체코에서 정착하는데 필요한 침대, 매트리스, 책상, 의자, 모니터 같은 살림을 살 돈이 모자라 동동거리고 있는 와중에 왜 그런 쓸데 없는데 돈을 썼냐고 쏘아붙였다.
남편은 그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차에서 선물을 꺼내서 건내주었다. 가방이었다. 무거운 가죽가방.
사무직 20년차에 목디스크와 어깨 뭉침, 등굳음을 세트로 가진지라 가방이고 뭐고 무거운 게 싫어서 에코백만 들고 다니는데 짐 하나 안 넣어도 이미 무거운 가죽가방을 와이프 선물이라고 건내는 이 남자를 어떡해야 하나 싶었다.
당신이 남자 아이템은 잘 고르는지 몰라도 여자가 쓸 물건은 전혀 볼 줄을 모르는데 왜 자꾸 내 물건을 사느냐고. 나 어깨 아파서 가방 무거운 거 안 매는 거 모르냐고. 그냥 삼켜야 할 말이 자꾸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남편은 그제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임용 축하한다고 가방 선물을 준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크기와 디자인을 고를 수 있는 가방이었단다. 그래서 일본 같은데 짧게 출장 갈 때 멋지게 들고 갈 수 있는 가방을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당신한테 맞춰서 크기도 좀 작은 걸로 선택한 거라고.
짧은 출장을 갈 때 얇은 에코백에 노트북 넣고, 하루치 속옷과 세면도구를 넣은 울룩불룩한 가방을 들고가는 걸 보고 기억해뒀다 선물한 것인 듯했다.
뒤늦게 미안해졌다. 그는 항상 그의 방식으로 나에게 잘해주고 싶어했는데 나는 그가 나의 방식으로 나를 위해주지 않는다고 뾰족한 눈빛을 보내고 날카로운 말을 던지곤 했다. 나는 내가 이고지고 있는 짐을 조금 받아주었으면 했는데 그는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힘겹게 받치고 있는 내 손 위에 반지를 끼워주고 싶어했던 거였다.
어떤 말은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는 게 어렵다. 우선 남편에게 서운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는 날 그 가방을 들고갔다. 그와 나의 차이는 어찌할 수 없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그가 짐을 받아주었으면 한다. 짐을 붙들고 부들거리는 손에 반지를 끼워주기보다는 말이다. 다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 보려고 한다. 감정을 배설하는 방법으로서의 말이 아니라 더 나은 결과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도구로서의 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