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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Jan 31. 2024

죽은 후에 결국 남는 건 이것밖에 없더라


어머님은 항상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자매들은 다 외국에 계셨는데 전세계에 우리집 며느리가 얼마나 당신한테 잘하는지 소문이 퍼져있었다. 하다못해 안씨 삼대(아버님, 남편, 소시)가 강원도에 놀러갔을 때 혼자 남아계셨던 어머님과 식사하러 시댁에 간 것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이날 어머님과 마주 앉아 도라지를 손질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어머님이 니가 우리집에 와줘서, 아이들 잘 키워줘서, 아들이 교수될 때까지 버텨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아들을 잘 키우셨으니까 비슷한 사람을 만난 거죠." 


어머님 눈을 보며 답했다. 


"아이구,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어머님이 웃으셨다.

결혼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어머님은 늘 내게 고맙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답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늘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몰라 그냥 '아니에요.' 하고 웃고 말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금슬 좋은 부부는 아니었다. 어머님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셨다. 그런 날 아주 가끔은 우리집에 오셨다. 나는 고1 딸래미가 치를 떠는 T 성향의 사람이지만 어머님이 하소연을 하실 때만큼은 항상 어머님 편을 들어드렸다. 별 대단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머님이 서운하실 만했다고 아버님이 그러시면 안 되는 거라고 말씀드렸다.


반면 목소리 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자식들은 늘 존재감 없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어머님에게 아빠 성격 모르냐고 좀 참고 가만히 넘어가면 안 되냐고 했다.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어머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차라리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나는 이 집안에서 아버님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머님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위중해지시자 남편은 엄마에게 잘해준 게 없다고 울었다.


남편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조문 오신 분들에게 당신이 매번 말한 것처럼 어머님은 결혼한 첫날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목소리가 나오는 마지막 날까지 나한테 계속 고맙다고 하셨잖아. 내가 당신 아니었으면 어머님 아버님이랑 어떻게 가족으로 살았겠어. 당신은 나랑 결혼한 걸로 평생할 효도 다 한 거야.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드리지 못했다고 괴로워하지 마."


어머님이 임종하시고 운구할 차가 오기 전, 아직 어머님이 따뜻한 동안 곁을 지키고 있었다. 오빠가 없는 틈에 아가씨가 말했다. 우리집에서 언니가 유일하게 엄마 말을 들어줬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우리 아빠가 가실 때 아가씨가 따라나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새 언니를 우리집에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언니가 엄마한테 참 잘했다고. 부부 간에 별 대화가 없는 우리 아빠도 집에 가셔서 엄마한테 그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살아 생전 어머님은 존재감이 큰 편도 아니셨고 말주변이 좋은 분도 아니었다. 한 말씀을 또 하시고 늘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분이어서 대화가 즐거운 상대도 아니었다. 세 번쯤 같은 말을 하실 때가 되면 내가 내용을 정리하고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000하면 된다는 거죠? 네, 000 할게요.


하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어머님을 떠올려보니 온통 예쁜 말만 남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네 덕분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줄 알고 임종을 하러 갔을 때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다고. 어머님이 대꾸는 못하셔도 듣고 계시다고 다들 돌아가면서 인사를 드렸다.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공부하는 자식이 드리는 넉넉치 못한 돈으로 아껴가며 사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냐고, 그래도 늘 고맙다고 하시는 어머님이 대단하다고, 어머님 존경했다고 귀에 대고 말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몇 백년을 지나도 이름이 남는 위인들에게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자기 자손에게 기억될 때를 생각해보자면 사람은 죽어서 그가 한 말로 기억되는 것 같다.


어머님을 보내드리면서 생각해보니 어머님은 그 사랑과 감사의 말로만 남았다.


장례를 치르면서 가족 간에도 그랬다. 평소 낯간지러운 말을 못하는 남편이지만 조문 온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엄마가 우리 결혼한 첫 날부터 가시는 날까지 이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님의 감사가 남편에게도 옮아갔다. 장례를 치르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가씨, 형님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서로 감사 인사를 나누었다. 


형님 덕분에 빈소에 화환과 조기를 놓을 자리가 없도록 꽉 차 어머님 빈소가 초라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아가씨 덕분에 교회분들이 많이 찾아주시고 예배도 잘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도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충만해서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마음이 애닯고 시리기보다는 우리 어머님 잘 사셨네 싶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면 그걸로 되겠네 싶었다. 


이것도 해야되고 저것도 이루고 싶은 욕심, 다 좋지. 그래도 삶의 마지막까지 의미있는 건 남아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은 사랑과 감사밖에 없다면 결국 뭐시 중헌디 싶다. 이제부터는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마음으로 순하게 대해야겠다. 결국 머시 중헌지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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