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법'이라는 말뜻을 이제 알겠네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사인은 폐렴이다. 기력이 없어 누워만 계시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드시던 어머님이 열까지 나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가신 지 일주일만이었다. 응급실에 가서야 폐렴이라는 진단명을 들었다.
폐렴 진단을 받기 1주일 전, 8차에 이르는 항암 후유증으로 급성백혈병이 발병했다는 진단이 먼저 나왔다. 백혈병을 치료하는 주치의 선생님은 요즘 좋은 약이 많이 나와 있다고 매일 병원에 와서 배에 주사를 일주일 간 맞고 다음 3주간 집에서 약을 먹는 한 달 단위의 치료를 제안하셨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많이 좋아지실 거라고. 병이 안 걸린 고령의 어르신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게 21년 11월 경이었고 23년 12월까지 거의 2년간 차근차근 필요한 치료를 해오고 계셨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극복하실 줄 알았다.
▲ 팥죽 한 그릇. ⓒ 최은경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시기 전에 종일 아무것도 못 드셨다는 어머님에게 평소 좋아하시던 팥죽을 먹여드렸다. 이때 이미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태였는데 눈으로 '팥죽을 다오, 동치미 국물을 다오', 하시는 듯 입을 연신 벌려 죽을 받아드셨다.
드셨다고 하기엔 팥죽에 들어있는 밥알이 넘어가지 않아 몇 번 오물거리다 뱉기를 반복했고, 미음 같은 국물조차 넘기지를 못해 입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상황이었지만. 그걸 닦아드리려다 결혼한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님의 내복을 눈여겨보았다. 분홍색 삼중 보온메리였는데 언제적 내복인지 누벼진 천이 여기저기 해져있었다.
공부하는 아들네가 빠듯하게 드리는 생활비로 사셨던 터라 새 내복 한 벌 사 입지 못하셨던 거다. 이제 아들이 교수가 되었으니 호강도 시켜드리고 여행도 같이 가야지 했는데 마음뿐, 아직 해드린 게 없다. 내복까지 신경을 못 쓴 건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날 어머님 내복 사이즈를 확인해보고 한 치수 작은 사이즈로 주문해 두었다. 항암을 하시면서 몸이 영 작아지셔서 퇴원하고 나오시면 잘 맞는지 보고 더 주문해드려야지 했더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 하실 줄도 모르고.
▲ 어머님 내복 사이즈를 확인해보고 한 치수 작은 사이즈로 주문해 두었다. ⓒ elements.envato
황망하게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나니 처음 암진단을 받던 때로 자꾸 생각이 돌아간다. 같이 김장을 해놓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할 때였다.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가슴이 푹 꺼졌다고 "좀 쉬면 낫겠지?"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피곤하다고 가슴이 꺼지는 일은 없어요. 월요일에 바로 병원 가보셔야 해요."
그렇게 간 병원에서 의사는 검사도 하지 않고 가슴을 보자마자 왜 이제 병원에 오셨냐고 했다. 알고보니 국민건강보험에서 매년 알려오는 건강검진은 잘 받아왔지만 따로 예약해야 하는 유방 검사나 위, 대장 내시경 검사 같은 것은 하지 않으셨던 거였다.
시어머님상을 치르면서 떠오르는 단 하나의 생각은 '좀 더 잘해드릴 걸'이었다. 우리 부부가 삼십 대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제주도 여행도 가고 짧은 국내여행도 가고 했었다. 사십 대에 와서는 달라졌다. 아이들도 커서 각자의 학원 스케줄이 생기고 내야하는 학원비 규모가 달라지는 와중에도 남편은 시간강사를 하고 있던 시기,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남편이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공부하느라 고생만 하다 나이 때문에 기회의 문이 닫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앓이를 하던 그 시절, 내 마음은 강퍅할 대로 강퍅해져 있었다. 친정엄마가 시어머니 병세를 걱정하면서 '좋은 음식 드시게 신경써라, 더 잘 해드려라' 할 때 '엄마 내가 이 이상 어떻게 잘해?' 농반 진반 대꾸했었다.
나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10년 넘게 계시는 동안 매일 입에 맞는 국과 반찬을 준비해서 병원을 찾았던 엄마는 '그래도 가시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하셨었다.
이제 엄마가 하신 말뜻을 알겠다. 돈과 시간이 여유 있을 때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해도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같이 식사를 할 생각은 했어도 건강검진을 챙기지 못했다. 목욕이라도 자주 모시고 다녔으면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내복과 양말이라도 새것으로 해마다 사드렸다면, 그래서 집에서 입고 계시던 내복이 해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죄송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이제 혼자 남아계신 아버님께는 매년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잡아 드리고, 남편이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목욕도 자주 모시고 다니면서 몸을 살펴드리라고 해야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자의 뒤늦은 결심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