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나오는 책은 꼭 읽었으면 좋겠어

김영란 <시절의 독서>


책읽기가 때로는 사유의 샘을 깨우는 폭포수일 수도 있지만, 삶의 각 페이지를 어렵게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12p, 프롤로그


슈퍼맨과 슈퍼우먼, 특히 워킹맘이 슈퍼우먼이라면 응원보다 질투가 앞서는 곳이 한국사회다. 기저에 깔린 심리는 아마도 '난 일만 하는데/아이만 키우는데도 슈퍼 근처에 못 가는데 저 사람은 뭐지?' 일 것이다. 회사도 아이도 없는 나의 무위자연(?)을 질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나 역시 슈퍼워킹맘을 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그러나 누구도 찍소리도 못할 슈퍼우먼이 있다. 이미 엘리트 중의 엘리트지만 사회적 성공을 떠나서 역사가 된 사람, 김영란이다.




나름의 거리를 두고 세계를 관찰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개별 사건에 대한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받아들이면 홧병으로 앓아누울 수도 있기에 정치이슈나 범죄사건은 굳이 챙겨보지 않았다. 정말 뜨거운 이슈라면 인스타그램 헤비유저가 모를 수 없다. 레거시 미디어가 예전만큼 편향이 심하진 않더라도, 그 역시 카더라처럼 골라서 인풋해야 한다. 유명한 정치인의 업적은 투표 당일날이나 돼야 벼락치기하는 정도. 그마저도 이 사람에게는 꼭 표를 줘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의 얘기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몇몇 정당은 반드시 거른다.


법률가라면 부정부패 계열이 아니더라도 고지식할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내가 지지했던 여성 정치인들은 대부분 법조계, 그러니까 법학 전공이 아니다. 그러나 나 역시 사회 구성원의 의무감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많이,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위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니더라도(엄밀히 말하면 이 워딩은 경제적인 용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오피니언 리더'에 가까울 것이다.) 내 글을 읽히게 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보통 사람보다는 많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려 하고 있다. 게다가 세속적이지 않은, 사회 현상과 동떨어진 글을 쓰는 것도 전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디에든 있을 것 같다. 세상과의 거리를 두지만 그럼에도 자기만의 레퍼런스가 있는 사람들.




김영란 작가는 그 '세상'의 중심부에서 정의를 구현하고자 헌신한 슈퍼우먼이다. 또한 나와 같은 아웃사이더들도 모를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런데 그를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문학이었다. 세상을 등지고 싶은 이들이 읽는 책을 그도 읽었다. 자기분야를 읽고 쓰는 업무량이 가장 많은 업계에 있는 동안에도 문학 읽기를 멈추지 않은 것 같다. 부럽다거나 그 능력에 매료된다기보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으면 공부가 업인 사람이 취미로도 공부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법률가를 오해했다. 그들이 눈으로 텍스트를 더 잘 읽는다고 해서 마음으로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문학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 믿는다. 문학이 비문학보다 조금이라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절대로 세상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지적 호기심이 넘치고 이야기를 사랑하지만, 눈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이 피로한 나와 같은 사람은 법전을 읽을 수 없다. (대체 엄빠는 왜 아직도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그런 나도 50부작 사극이나 2000페이지 이상인 대하소설은 연달아서 볼 수 있다. (이것만 잘 해도 논술/면접의 신이 될 수 있다. 공부는 자기에게 맞게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도 책을 들게 하는 해리포터의 마법을 모르는 자는 절대로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없다.




독서기록을 통해 열렬한 독서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는 과정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또한 문학이 업인 사람이라면 오히려 다가가기 어려웠을 통찰이 담겨있는 보물찾기의 여정이다. 나의 편협한 예상을 깨고, 평생 법전을 지고 살아가는 분의 글은 오히려 잘 읽혔다. 가독성은 분야 탓이 아니라 개인차였던 것이다. 저자는 그 자신과 우리 모두의 인생이 함축된 버전을 기교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게 썼다.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세상을 꿈꾸었기에 직업인으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있는 위치에 도달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금 문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이 힘들고 절망적일수록 판타지는 더 강력해야 한다. -48p, 루이자 메이 올컷


오직 책으로만 접했던 세상을 상상 속에서 조금 더 확장했을 뿐인데 당시의 어떤 소설보다도 사회조직과 관습 그리고 사회규범을 거부하는 내용이 담긴 결과물로 나왔다. -68p, 브론테 자매들


그들의 상처가 나의 상처가 되고 그들이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을 보면서 내가 상처를 이내는 방법을 찾아나갈 수도 있다. -116p, 버지니아 울프




전업주부의 완벽한 뒷받침을 받는 이른바 엘리트 남성이 주류를 차지하는 집단에서, 여성이기에 그들보다 업무적으로 열등하다는 평가는 적어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하에 기를 쓰고 일해야 헀다.

-154p, 도리스 레싱


오히려 지금의 세상이 과연 이런 디스토피아들과 다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의 세상도 성과 자본과 물리적 폭력이 결합되어 위계를 세우는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 떄문이다. -181p, 마거릿 애트우드


결국 쿤데라는 농담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을 농담처럼 말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209p, 카프카와 쿤데라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줄 알았지만 사실은 매트릭스에 갇혀 사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날들과 빨간 알약만 먹으면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교차되는 날들을 살았고, 평정심도 용기도 없었던 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235p, 커트 보니것


그는 큰 치통을 앓을지언정 위대한 이야기꾼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260p, 안데르센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왜 작가가 다른 세상을 갈구했고 어떤 방법으로 다른 세상에 도달했나를 살펴보는 것은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더 깊이 파악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268p, 에필로그




이 책에 등장하는 고전 작품 중 일부가 곧 이어질 예정이며, 나머지 작품들도 순차적으로 소개해보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