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명가도 영어 맛이 원조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원서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From this day you must be a stranger to one of your parents. - Your mother will never see you again if you do not marry Mr. Collins, and I will never see you again if you do. -110p




번역서를 읽고 좋아하게 된 작가도 많다. 번역서가 번역서임을 의식하지 않고도 입덕했던 토베 얀손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80년대), 코넌 도일, 헤르만 헤세, 샬럿 브론테와 토머스 하디(90년대)가 있었고 원서를 읽고 싶다는 소망이, 읽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도록 덕질에 불을 지른 히가시노 게이고, 스티그 라르손(2000년대), 요 네스뵈(2010년대)가 있었다. 공부, 여행, 언어, 영화 및 드라마, 다시 책으로 융합된 덕질이 소기의 결실을 맺어 명작을 영어로 다시 읽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목부터 라임 터지는 <Pride and Prejudice>는 그 중에서도 번역서와 원서의 온도차가 아주 큰 작품이었다. 번역서와 원서를 연달아 읽어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과 다르게, 이 책은 10년 넘는 시간차에 의해 체감온도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원서를 최근에 읽었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영어의 맛을 알게 되면서 왜 이들(포, 에밀리, 오스틴)이 영어권에서 그토록 위대한지, 그리고 비영어권에서는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의 경우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었다.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는 꼭 영어덕후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두터운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나의 경우 버지니아 울프는 영화로만 스쳐갔을 뿐 책으로는 최근에서야 번역서를 겨우 읽어봤고 제인 오스틴은 십여년 전에 번역서로 같은 책을 읽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당시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안 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본 증거(?)를 최근에 재발견. 영화 개봉 전후로 원작 소설을 읽었던 것이다. 울프는 여성 문학사와 산책이라는 공통 주제가 통했고 에밀리(그리고 샬럿) 브론테는 고딕 스릴러라는 취향이 나름 통해서 번역서로도 입덕이 가능했다.


처음 번역서로 제인 오스틴을 읽었던 그때는 결혼이라는 대주제에 묻힌 디테일을 발견하려는 의욕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원서를 통해서 이제야 발견하게 된 리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여기가 원조 맛집인 줄도 모르고 그냥 로코네,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코넌 도일을 여러 번(영화, 드라마까지), 각색 영화 <아가씨>를 따라 <핑거스미스>를 읽고 <브리저튼>에 푹 빠지는 동안 어느새 제인 오스틴도 '작고한 작가 스승'의 한 사람으로 자리하게 됐다.




영어로 다시 만난 엘리자베스 베넷과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한국어와 한국어문화권의 코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sarcasm과 pride와 prejudice의 소유자이다. 사실, Darcy라는 인물이 새삼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이름; 그러니까 last name은 다아시, 라는 발음으로는 부족한 우아함과 귀여움이 있는데 그것부터 한국어는 접근불가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빙리, 는 말해모해) 지금도 두 사람의 티격태격이 불멸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시나리오를 제공한 바로 그 뿌리, 이기도 하겠지만 시대를 앞서간 엘리자베스의 진취적인 도도함과 알고보면 여린 남자 다아시의 츤데레함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그 느낌을 살려서 다시 영어로 읽어(낭독해)보니 등장인물의 성격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 것 같다.


살아 움직이는 문장들을 좀더 진하게 연구해도 좋겠지만(틈틈이 표시해둔 문장은 원서 필사노트에 옮길 예정) 물오른 기세를 몰아 더 많은 작품을 접하기 위해 서둘러 완독을 했다. 다시 읽어도 좋을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차분히 음미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