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이제 봤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넘쳐나는 컨텐츠의 시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클래식 스테디셀러에서 취향에 적합한 책을 고르는 일이다. 고전, 하면 18-19세기 영국,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작품을 떠올린다.


이공계 커리큘럼에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시절에는 '프랑스어'와 '세계사', 심지어 같은 학교 이과 남학생의 필수과목인 '기술' 마저도 접근권이 없었고) 독일어, 독일문학까지만 접한 후 가볍게(?) 번역서로 약 1000페이지 분량의 톨스토이를 만났다. 그와 별개로 현대 북유럽 스릴러에 심취했는데 세계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아서 늘 불안했다.


오래전 선물받은 <공산당선언>을 (번역서로) 두 번 읽었고 유럽사는 요 네스뵈한테 배웠다. 그러나 영어를 공략하다 알게 된 거장들을 프로파일링 하다보니 (북태평양 사람인) 우리가 얼마나 북반구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 남반구를 포함한 지구본을 제대로 마음에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짐바브웨 여행이었지만.




마르케스를 만나기까지


그러니까 딱히 문학을 꿰고 있지도 않은 실패한 과학자(실패한 디자이너 겸 실패한 과학교사 겸 성공할 스릴러 소설, 드라마 덕후)주제에 유럽문학 탐사기를 펼쳐놓은 이유는 재법 책을 읽은 사람 기준으로도 다른 대륙의 문학은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허다하다는 현실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무려 40년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작가를 만나는 데 꼬박 40년이 걸렸고(내가 모르는 태교가 있던게 아니라면) 그 중 반 이상을 라틴 아메리카 음악과 함께(라틴 댄스, 라틴 음악 덕후로) 살아왔다는 것이 아찔하게 충격적이다. 반대로 K-pop, 즉 음악이 왜 한국 컨텐츠를 주도할 수 밖에 없는지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소설보다 영화, 영화보다 음악이 빠르게 확산되니까. 게다가 쇼츠의 시대 아닌가.




충동구매와 충동 정주행


한편 <백년의 고독>을 펼치는 순간 어머, 전래동화야? -어머, 이렇게 재미있어도 됨? -어머, 이런 구성 좀 천재인데? 라는 놀라움을 거쳐서 밤샘 독서를 했다. (이 책이 주인공인데 한편이라니!)


번역서라도 속독은 못하고 권수(또는 독서량, 일단 내 책은 대체로 벽돌)에 집착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책 포스팅은 자주 하고 싶어서(책 산거 자랑해야됨) 기대평, 중간평 위주로 쓰다가 그거라도 찐하게 쓰려고 시험공부 벼락치기하듯이 찐하게 발췌독을 하다가, 피드를 더 찐하게 구성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정독은 해야겠고 그 속도가 버겁다보니 영어가 밀려서 <백년의 고독>은 좀 미룰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멈출 수 없었다. 어쩌지?


다른 것을 포기할 수는 없고 잠을 줄여 1권을 완독했다. 오래전 수집을 포기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읽은 이유는 지난 해의 충동구매(가이드북 프로모션 굿잡). 영어권 원서 혹은 영어판 고전소설(어디 소설 뿐이랴, 탈무드와 성경도 있음)을 쌓아두고 있는지라 고심끝에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은데 원어는 어차피 오래 걸릴 프랑스, 콜롬비아 걸작에 분산투자를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번역서도 그럭저럭 읽을 수 있게 됐다. (고전 수집이 흐지부지 된 이유는 번역서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컸기 때문, 현대 스릴러 소설은 번역서도 비교적 잘 읽히는 데다 이미 영어판까지 읽고 있지만 고전의 바다에만 가면 여전히 허우적거리기 바쁘다.)


안타까운 건 <백년의 고독> 2권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는 점이다.




1권의 문장들


'제가 만일 자유파라면, 전 이 투표용지 건으로 전쟁을 하러 나가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장인은 안경 너머로 아우렐리아노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이, 아우렐리또. 자네가 자유파였더라면, 내 사위라고 할지라도, 투표용지 바꿔치기 하는 걸 보진 못했을 거야' 장인이 말했다. -158p


'이건 전쟁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저를 아우렐리또라 부르지 마십시오. 이제 저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니까요.' -166p


그때부터 마을을 다스린 사람은 우르술라였다. 그녀는 일요 미사를 부활시키고, 빨간색 완장 착용을 중지시켰으며, 그 울화통이 터지는 포고문을 폐지시켰다. 그러나 우르술라는, 강인한 성격을 지녔다고는 해도, 계속해서 자신의 불운한 운명을 한탄했다. 깊은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남편을 찾아 하릴없이 밤나무 아래로 갔다.

-171p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 -216p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지탱시켜주시는 한 우리는 여러분의 어머니이므로, 여러분이 제아무리 혁명적으로 행동한다 해도,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면, 우린 여러분의 바지를 벗겨 매질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250p


'내가 걱정하는 건 말이야, 자네가 군인들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그들과 전투를 너무 많이 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했기 떄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일세. 그토록 비참한 경우를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네' -251p


그의 명령은 채 시달되기도 전에, 아니 그가 어떤 명령을 내릴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수행되었고, 항상 그 명령이 미칠 것이라 생각되던 범위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미쳤다. 그는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방향 감각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61p




저주받은 부계 혈통


<백년의 고독> 1권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모험과 고뇌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으나, 속표지에 떡하니 등장하는 가계도로 보아 서자(그것도 망나니 아르까디오 계열의 후손)가 대를 잇는 이 집안의 부계 혈통은 약간 저주스럽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와 장남은 달리 쓸모가 없으며 가모장 우르술라는 백살이 다 되도록 여전히 아들, 손자가 발광을 하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온다. (남미 언니의 스웩?)


어쩌면 <백년의 고독>이란 백년 동안 죽어라 일과 육아를 반복해도 번영하긴 커녕 계속해서 무너지기만 하는 우르술라의 인생을 요약한 제목일지도. 또한 결혼과 출산을 거의 하지 않는 이 집안의 딸들, 결혼 또는 출산 중 하나만 하거나 요절해버린 며느리들의 면면은 서브플롯으로 지나가는 듯 하지만 이 역시 저주 받은 부계 혈통에 대한 풍자로 읽혀진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시종일관 피식거리면서 유쾌하게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일부 현자를 제외한 남성 캐릭터가 전부다 허당이기 때문. 물론 그 유머들에는 뼈가 있다. 모성이 넘치는데도 출산을 하지 않은 여성 인물들의 수상한 결벽증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어 시종일관 긴장감을 준다.




마술적 사실주의?


전래동화로 랩을 하는 듯한 이 책의 여운이 남아, 어째서 나는 이 책을 만나는데 이토록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하나, 라는 주제로 랩을 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였고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전쟁과 혁명의 역사라는 줄기에 과하지 않은 판타지적 요소를 비즈처럼 박아넣어 하염없이 빠져드는 환상 대하소설을 창조해냈다.


라틴 아메리카에 자리잡은 가톨릭 문화와 토착민의 토테미즘, 전근대적 연금술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재미를 유발하는 마디마디가 마치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다르게 변주하는 판소리 같기도 하다. 가끔 이 대목의 시간적 배경이 언제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긴 했으나 그 호기심은 계속 읽고 싶어지는 추진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화처럼 다가오는 블랙코미디


인생이라는 거대한 은유를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로 표현한 대서사시는 아주 긴 판소리 혹은 랩처럼, 반복과 변주를 하여 번역서인데도 운율을 느낄 정도로 운문에 가깝다. 그와 동시에 어떤 외경(성경의 외전)의 코믹한 버전인 것 같기도 한 신화적인 엄숙함과 희극적인 해학이 공존한다.


사실 메인스트림은 삽질의 무한반복과 소멸인데도 곳곳에 드러나는 나레이터의 깨알 개그는 이 여자들의 모진 비극를 웃프게 만드는 괴력이 있다. 아, 방금 내가 여자들이라고 했나?




가부장제 돌려까기의 고수, 마르케스


이 책의 후반부는 여자들이 이끌어간다. 사실 전반부도 대령을 앞세웠으나 진주인공은 가모장 우르술라. 다시말해, 1권이 부계혈동을 지켜주려는 가모장의 고독하고 무모한 투쟁이라면 2권은 부계혈동의 대를 이은 가모장, 즉 딸과 며느리들의 고독하고 황당한 패러디의 연속이다.


가모장이 바뀔때마다 저택에 마음을 붙였다놨다, 하는 부계혈통 계승자들의 변덕은 개그포인트조차 되지 못한다. 마르케스는 이 작품을 통해 남성의 본질적 단순함, 문학계에서 남성 주인공(영웅)에 의해 대상화된 두 종류의 여성(성녀와 창녀)만 등장하는 고질적 병폐를 정통으로 조소하는 듯 하다.




2권의 문장들


그의 선의는 레베까의 완고한 고집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는데, 고독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오랜 세월 고통 속에서 스스로 비참하게 살아왔던 그녀로서는 남들의 자선에 의지해 살면 좋을 거라는 환상 때문에 노년의 삶을 교란당하면서까지 그 특권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34p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생으로도 이미 실컷 울었는데 가상 인간들의 위장된 불행을 보고 흘릴 눈물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 다시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39p


미녀 레메디오스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닌 위험을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너무나 원초적이고 단순한 감정만 있으면 충분했으련만, 오로지 그 생각만은 그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55p


그 당시 메메는 남자들이란 일단 식욕을 채우고 나면 조금 전의 배고픔을 부인하는 성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한 가지 형태의 사랑은 다른 형태의 사랑을 말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34p


복권 나부랭이를 팔러 다닐 기력이 떨어졌을 때나 사람들이 제비뽑기에 대한 관심을 잃었을 때, 페르난다를 먹이기 위해 자주 끼니를 거르던 빼뜨라 꼬떼스는 페르난다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232p


페르난다는 두 사람에게 자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썼는데, 일상적인 문제가 상상 속에서 이미 해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로 고통을 받지 않았던 자기 부모의 세계로 삶이 그녀를 다시 끌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곤경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으므로 실제로도 행복했다. -238p


그는 자기의 독서론에 대해 언급할 때와 똑같은 말투로 밤늦은 시각까지 의욕적으로 책을 읽었는데, 가스똔은 그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사며, 그 어떤 책보다도 양피지에 관심이 많아, 아침 시간 가운데 집중력이 가장 높은 시간을 양피지를 해독하는 데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268p


여행 도중 들르는 역에서 보내던 그림엽서를 통해 열차의 창을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웅변적으로 묘사했는데, 마치 무상을 노래한 길다란 시를 잘게 찢어 망각의 세계로 던지면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298p


그는 사랑의 환희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울어야 할 때 울려 하지 않았던 한 죽음에 대해 자신이 뒤늦은 울음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까딸루냐 출신 학자의 옛 책방 문에 이마를 기댄 채 울었다. -313p




모든 게 꿈이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부엔디아 남성들은 멍청하고 성욕이 넘치는 아르까디오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아우렐리아노라는 두 종류(변강쇠와 나르시스트)로만 등장하고 그나마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난 이방인, 외부세계의 남성들은 부엔디아 여성들과 끝내 맺어지지 못한다. (오, 천재인데?)


부엔디아 여성들, 혼외자식에게 DNA만 제공했거나 그저 첩으로 존재했던 여성들마저도 가정과 자손을 돌보는 데 공들이는 모습이 이 유스토피아(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혼재된 버전의 가상현실) 같은 평행세계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 많은 여성 캐릭터를 놔두고 멸문지화를 당하는 마지막 아우렐리아노(돼지꼬리의 부친)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철들어봐야 남자들 뒷바라지나 하게 될 거(물론 가부장제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자본주의 때문에 돌봄을 제공하는 여성들이 생존확률이 높은 경우가 많고 사랑으로 잠시 동등해진-동성애 유토피아 혹은 이성애 선남선녀의 조합-그들만의 세계에서는 또 다를 수 있다. 별로 희망적이지는 않다.) 뭐하러 철드나 싶지?


철들지 않고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아도
생이 모자라지 않을까?


현실은 마꼰도가 아니지만 모두에게 사랑이 있는 세계, 도 아니다.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고독이 있다는 것만 확실할 뿐. 나는 불멸의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고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