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도시와 책은 서로를 은유한다.
도시 중에는 로마, 뉴욕, 서울과 같은 복잡하고 사건이 많은 '벽돌책'이 있고, 신생 도시인 '신간', 계획 도시에 해당하는 '데뷔작', 작고 확실한 행복을 주는 특정한 스타일의 '장르 소설'이나 '시', 특정한 작가의 모방 불가능한 '에세이'도 있다.
엘레나 페란테의 영향으로 뜻밖의 이탈리아 주간을 맞이해 이탈로 칼비노까지 개시했다. 한편 2년 전에 사두고 틈틈이 읽는 척만 하고 있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에 수록된 추천 도서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책이라 눈에 띄는 즉시 구입해두었다. 샤라락 넘겨보기엔 그 어떤 문장 하나 단순하진 않지만 얇고 흥미로워서, 이왕이면 묵히기 전에 읽어보고 싶어서 쌓여있는 관련 책들을 무시하고 먼저 읽었다.
아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카탈로그를 받기 전에는 들어봤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셈인 작가였다. 그 전에 이 작품이 포함된 작품목록을 갖고 있었고 온라인 책친구들의 게시물에서 수없이 스쳐간 이름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젠 내 작가가 됐으니.
그러나 작가론은 손도 못대겠고,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도 최소 두 번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초독이었다. 두세 번, 많게는 네다섯 번을 읽어도 아리송한 문장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미 초독아닌 초독을 했음에도 초독을 제대로 못한 느낌.
목차를 빼면 200 페이지도 안되는 본문은 그마저도 30% 이상이 여백이지만 쉽게 읽히지 않아 꽤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비슷한 분량과 비슷한 표지의 여백이 없고 촘촘한,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세 번을 연속으로 읽어야 했던 작품 포함-와 비교해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년 3월의 분노의 독서타임-국내서 이틀, 원서 일주일-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속도였다. 병행 독서를 했으니 망정이지.
그럼에도 여행덕후라면
선호 여행지를 불문하고 추천한다. 도시여행자가 아니더라도 모종의 이유로 끌림을 느낄 것이다. 단, 책과 너무 안 친하다면 예외. 그런 분이라면 여기까지 읽지 않으셨겠지.
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농학자 집안의 이탈로 칼비노에게서는 이탈리아에 국한되지 않는 스케일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배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시, 소설, 수필을 아우르고 전문이 대화체라는 점에서 희곡이라고도 우겨볼 수 있는 만능 장르의 문학 작품이다. 대화체의 은유와 작품목록으로 가득한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와도 살짝 닮아있지만 디테일은 다르다.
치밀한 구성이야 어찌보면 건물 짓듯 책을 쓰는 내 스타일과 닮았으나 세부사항이 워낙 색다른 책이라 별로 비슷하지 않은 특이한 책을 소환하는 느낌도 있다. 여행덕후이자 책덕후이면서 판타지에 관심이 많은 독자, 특히 작가라면-여러 번 읽어야 할 듯 하니-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초독 후에 이런 결심은 처음이지만, 재독 리뷰와 삼독 리뷰도 해보고 싶다. 이탈리아어판을 바로 읽을 자신은 없으니 영어판과 스페인어판도 두 번씩 읽다보면 저자의 세월을 보다 잘 읽게 되겠지.
그걸 다 해도 이탈로 칼비노를
알게 되기까지의 세월은 안 걸리겠지.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18p, 도시와 기억 3
어쨌든 대도시는 더욱더 많은 매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바뀐 도시의 모습을 통해, 예전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며 향수에 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2p, 도시와 기억 5
그런데 폐하께서 떠나지 않고 필리스에 머물며 여생을 보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곧 도시는 폐하의 눈앞에서 빛을 잃고 원화창, 선반 위의 상, 둥근 지붕 들은 사라져버립니다.
-117p, 도시와 눈들 4
두건 쓴 형제 회원들이 죽은 자들의 도시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를 들려주면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144p, 도시와 죽은 자들 3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7p
행복 추구는 결국
유토피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211p, 작품 해설(이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