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예감한 20세기의 명작 읽기
생활 언어로 자주 사용하는 영어단어 Stranger 또는 프랑스어 L'Etranger는 뫼르소라는 캐릭터를 상징하는 <이방인>이라는 밈(meme)으로 2020년대의 '비대면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 속 개인들을 새롭게 상징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과 인증샷 여행과 온라인 자아를 발견하던 얼마 전의 2010년대는 우리가 기꺼이 <이방인>이 되어보는 경험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마침 (아마도 오바마 정권 이후로) 스탠다드와 노멀피플로 부각되기 시작한 '정상성"과 배타적인 집단주의에서 두드러지는 '타자성'에 관한 담론이 심화, 확대되었고, 세계 시민의 연대를 지향하는 여행자들과 인스타그래머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흐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1년에 이 책을 새로 번역하신 역자 김화영 선생님께서 (현대 불한사전에 없는) 일본식 한자어지만 이 작품을 상징하기 때문에 수정하기 않기로 했던 <이방인>이라는 제목은 12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고유명사에 머물지 않고 보통명사가 되었다.
여행하는 <이방인>으로의 자아를 경험하고 타인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특히 책을 통해 이 단어를 무수히 읽고 쓰게 되었지만 그 누구도 대놓고 알베르 카뮈를 암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깊숙하게, 심지어 한국어에까지 자리 잡은 <이방인>은 읽어봐야 했다. 이 시절의 책이 그러하듯 '굳이 이렇게까지 쓴' 이유를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한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상을 받았다. -21p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나무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것을 감지하는 화자는 이에 의한 이물감을 첫 5페이지에서만 3번 연속으로 언급한다. 밤샘을 해야 하니 관리인이 저녁을 권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고 (그렇다고 말했더니 저녁 대신) 밀크커피를 '관리인이' 가져왔다. 밤샘하는 영안실의 '눈부신 빛'이 2번, 다음날 영구행렬의 '태양이 가득한'도 2번 연속으로 등장하며 모자의 작별보다는 그가 '상주'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회적 의식(연극)으로 진행되고 있는 장례식에 대해 그의 몸이 느끼는 즉각적인 피로함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57p
승진에 대한 야망도 없고, 마리와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 이 젊은이는 식당에서 이상한 여자를 만나고 개를 잃어버린 이웃집 영감의 하소연을 듣는다. 타인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그와 연결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가 먼저 연결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다시 그날처럼 '태양이 가득한' 하루가 반복된다.
하루하루는 지내기에는 물론 길지만, 하도 길게 늘어져서 결국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고 말았다. -100p
내가 남아도는 존재라는, 좀 불청객 같다는 기묘한 느낌 또한 납득이 되었다. -104p
본격적인 사회적 연극이 거행되는 법정에서 그는 사건의 중심이면서도 철저하게 소외된다. 극적인 이야기 속의 진짜 연극인 법정의 장면. 이러한 '극 속의 극' 효과로 법정이 등장했던, 그리고 피고/주인공은 예상되는 법정의 오류를 풍자하는 코스프레를 했던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가 연상된다. 법치국가(?)인 미국의 소설은 <앵무새 죽이기> 이후로 법정이 너무 자주 등장하여 드라마틱한 효과보다 클리셰가 되었다.
잘 정돈된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하듯이 그에도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167, 로제 키요(클레르몽페랑 시장)의
논문_<이방인>을 다시 읽는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 출세 등"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삶과 "무관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1937년 인물에게서 장차 "이방인"이 보여 줄 인생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186p, 김화영_작품 해설
"내일 없는" 현재의 가득함, 이것을 카뮈는 "희망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204p, 김화영_작품 해설
카뮈는 뫼르소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하는 장치를 일부러 심어두었다. 개별 독자가 직접 느껴보는 재미를 방해하고 싶지 않기에 뫼르소의 첫인상에 관한 메모는 생략한다. 책소개책을 다양하게 읽고 권했지만, 자세한 작품 분석은 '본문'을 감상한 후에 읽는 것을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