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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y 02. 2023

하루를 이틀처럼 활용하는 법

3분 출근을 알리는 커피모닝, 그리고

  이때는 졸음이 찾아오지도 않았고, 뭔가를 먹지도 않았고, 너무나 행복해서 밤과 낮이 짧게 느껴졌다. 설령 아무런 결실이 맺히지 않더라도 그런 시간을 즐길 수만 있다면 살아갈 가치가 있었다. 이 신성한 영감은 보통 한 주나 두 주 동안 계속 쏟아져 나왔고,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순간 조는 허기와 졸음, 짜증, 혹은 실의에 시달렸다.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_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25p에서 재인용


불면증과 일중독이 만나서 감기가 되었다. 호르몬이 교대하는 시기에는 핵심 기능을 맡고 있는 두 호르몬이 다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다. 그냥 PMS, 생리 전 증후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인 일명 '배란기'에 또 다른 증상이 발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에는 그냥 그런가부다, 했을테지.


다시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있어보니 알겠다. 불면증의 시기에 산책과 휴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외출한다고 꼭 꿀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멍때리면서 미드를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싫어증'도 격해진다. 주로 씻기 싫어, 로 시작해 먹기 싫어, 식사 준비는 더 싫어, 식사 준비를 위한 청소와 설거지는 더 싫어로 확장되고 결국 참다 참다 라면을 먹고 다시 자거나 그도 못하겠으면 컵밥, 배달이지 뭐. 배달도 한상차림이 아닌 일품요리여야 한다. 상 차리기 싫으니까.




어, 그런데 사실 이 달에는 싫어증만 느끼고 불면증을 못 느꼈다. 약 3주 전부터 과한 '일중독' 모드였기 때문에, 아침에 눈이 떠지면 정신없이 일을 했다. 모닝 커피와 함께 책상으로 출근해 퇴고를 하거나 새 글을 쓰거나, 다음에 쓰게 될 새 글의 글감을 김치속처럼 다듬었다. 이후 원래는 식사 준비를 하는 시간이지만 '싫어증'이 한창일 때는 쉬는 시간인 셈 치고 잠시 누워서....폰으로 퇴고를 하거나, 새 글을 쓰거나....아니, 쉬는 시간 이라며?


이것이 일중독의 일과였다. 그런데 점점 늦게 자고 점점 일찍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보니, 낮잠을 안 자면 버틸 수 없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의 낮-에 자는-잠, 을 자면 그 시간에 했어야 할 산책이 날아가고 저녁이 되는 것은 물론, 날짜변경선이 바뀌기 전에 새 글을 하나 더 쓰거나 적어도 조회수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활동을 좀 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한 일이 너무 '나만 아는 일'이라 급초조해져서 저녁때 아메리카노 더블샷을 뽑기도 했다. 아니, 커피모닝이라며?




치트키도 몇개 있는데, 예를 들면 카페인 없이 수분과 에너지를 보충하는 영양제와 무기력증에 도움을 준다는 영양제가 있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챙겨 먹은 횟수만큼 무리한 스케줄이 괜찮을거라는 믿음이 생겨났고, 그래서 그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이런 장비들을 '믿게' 된다.


하루는 저녁 루틴과 식사를 하고 얼마 못 잘 걸 아니까 밤잠을 청했는데....코가 자꾸 막히는데도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엔 감기와 함께였다. 아, 그러니까 감기라는 친구는 매개체가 없어도 걸릴 수 있는 거군요.


또는 루이자 메리 올콧이 말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탈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피크타임의 '일 중독'은 어느 정도 벗어났는데, 그럼에도 불면증을 무시하고 아침 저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겠다는 목표의식이 너무 또렷해서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도 습관적으로 커피와 함께 책상에 출근해서 퇴고를 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수요일이라고 생각했던 날은 사실 화요일이었고, 일주일을 열흘처럼 보내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아침 루틴을 건너뛰고 계속 잠들어 있었다.


보통의 불면증, 을 달래는 빈지왓칭 후 뻗어버린 다음날의 저녁 루틴은 멍때리면서 스케줄을 복기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리마인드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면증, 을 무시한 일중독 후 반나절을 쉰 것 뿐이기에, 이 휴식 전에 스케줄과 다음에 쓸 에세이로 직결되는 독서 등을 업데이트한 상태였다. 밀린 샤워를 하느라 바로 출근하지 못했지만, 샤워 후 모닝 커피를 들고 결국 출근했다. 감기가 물러가는 중인지 계속 재채기를 하면서.




커피가 몰입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카페인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몸은 카페인에 의존하고 있다. 굳이 나와 카페인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충분한 잠 또는 낮잠, 휴식 후 커피 향을 맡고 몸 안에 커피 향이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퇴고를 하거나 새 글을 쓰면 원기회복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커피와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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