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의 4월 이야기
봄을 즐기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청춘인가?
여전히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주위는 열기가 가득한데, 순환이 되지 않는다. 어느날은 적당한 봄 착장을 하고 따뜻해진 공기를 즐겼으나 때이른 맨발과 여름 신발에 발목이 시려서 양말을 사러 달려갔다. 어느날은 한여름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떨지 않고 일몰을 즐겼지만 때이른 카페의 냉방으로 결국 오들오들 떨면서 귀가했다. 이런 날, 내 준비가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건강에 치명타를 입은 이와 같은 날들이 쌓인다. 그날은 중고서점을 터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지만 갈 곳 없는 원한은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분명 양말부터 코트까지 챙겨입고 나가면 어느 시점에 이 모든 것들이 짐이 될 것이고 내가 이맘때의 외출준비라 여기던 것들만 갖추고 나가면 저녁 공기에 놀라서 집으로 전력질주를 하겠지.
봄이라고, 혹은 이제 여름으로 가고 있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달라졌다. 지구의 컨디션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체감온도가 매우 달라졌다. 엄청나게 파워워킹을 하지 않아도 한낮에는 얇은 코트를 벗을 수 있었던 계절이 3월이 아닌, 5월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골치아픈 시간은 4월에 모여있다. 그래서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침, 저녁에 이동을 해야한다면 겉옷은 초봄이나 늦가을을 예상하되 너무 무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초에 이런 무장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매년 5월을 애타게 기다린다. 팬데믹 이후로 굳이, 부러 나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여름을 기다릴 이유도 사라졌지만.
여름이라고, 예전처럼 방심할 수가 없다. 이른 냉방은 결국 어느 시점의 감기가 되었다. 한여름에는 습기 때문에 냉방을 해야하고, 냉방이 되는 곳을 찾겠지만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준하는 외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옷차림이 가볍다면 더위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데, 유독 습한 삼복더위는 습도에 지치고 그에 따른 다소 과한 냉방은 여름옷으로 버틸 수 없다. 우리가 예전보다 과하게 냉방을 하는 것인지, 혹은 내가 예전보다 추위에 민감해진 것인지. 겨울에도 추위 자체가 위협적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겨울이기에 방한복으로 대처하면 충분했다.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겨울 자체는 추운 계절이니 원래 싫어했고, 새삼스럽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 아직 봄이구나. 5월의 첫째주가 저물고 있음에도 여름을 반기지 못했던 것이 11년 전이었던가? 그 후로 봄이 아닌, 여름이 와도 외투를 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3월 중순 쯤 패딩과 두꺼운 스웨터를 넣고 여름 옷을 개시하겠지. 나머지 겨울/봄 옷들을 정리할까? 라는 생각이 들면 이미 7월이고. 그때쯤 곧 9월이 올거란 생각에 정말 너무 봄 옷이 아닌 이상 내버려두겠지. 평생 여름 쿨톤으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 봄에는 상큼한 쿨톤 봄옷을 구입하지만 가을에는 기본 아이템만 구입해서 따로 꺼내야 할 가을 옷이랄게 없거든.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에 푹 잠길때쯤 한바탕 폭염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을 기다린다. 다만 내게는 쇼핑하는 재미조차 누릴 수 없는 가을이라, 가을에 여행하는 루틴이 생기기 전에는 가을을 기다리진 않았다. 가을에 여행을 하게 되면, 따뜻한 도시에서 여름옷을 사다가 추운 도시에서 겨울옷을 산다. 이 패키지를 들고 귀국을 하면 어떤 날씨에도 적응할 수 있거든.
새 글을 많이 쓰지는 못했고 겨우내 도토리처럼 모아둔 냅킨에세이를 여러곳에 박제하느라 바쁜 한 달을 보냈다. 얼떨결에 만개한 집앞 벚꽃도 득템, 정말 귀찮았지만 이 순간을 놓치면 1년이 후루룩일게 뻔해서 사진과 영상도 남겼다. 벚꽃이 사라지기 전날에는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공원을 접수했다. 며칠 후에는 감기에 걸렸고 방구석 두더지모드로 온라인에 상주하다가 한번씩 분노의 산책을 했다. 그래봐야 도보 10분 거리의 카페에서 두어시간 외근을 하고 오는 것 뿐이지만 그 정도만 나갔다와도 새로운 한 주를 버틸 수 있었다.
아니, 버텨야 했다. 불면증은 청구서처럼 돌아오고, 잠이 안오는 시간에 심신이 나른하지 않아서 다행일 뿐이었다. 거의 3년 내내 나른한 주간을 울며 삼키는 세월을 보낸 것 같은데, 이 달에는 그 주간에 일중독이 와서 잠은 못자도 쌩쌩했다. 잠을 못자는 그 시간에 그냥 일을 했다. 과로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빈둥거리면서 했다. 과로할 리가 없지 않나. 이미 감기에 한 번 걸리고 회복기였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