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상드, <그녀와 그>
상드는 이 오토픽션에서 테레즈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여성의 평등과 독립을 보여주며, 문학을 통해 도달하려는 가치와 이상을 전달한다.
-345p, 해설(옮긴이 조재룡)
영어로 영국과 미국의 19세기 여성 작가 도장깨기를 하다 다다른 곳이 조지 앨리엇이었다. 한편 10년 전에 사두었던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시작으로 비영어권의 고전을 따로 독파하기로 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읽고 다른 유럽어로 원서를 읽을 때까지 미루어두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스럴러 판타지를 구상 중이라 특히 프랑스인의 정서와 정수를 빠르게 배울 필요가 있었다. 쇼팽 절친으로도 알려진 조르주 상드, 남자 이름으로 수식하고 싶지 않은 시몬 드 보부아르를 구입했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대기하다가 신간이 나와서 신간부터 읽기로 했다.
'사랑의 화신'다운 묘사, 프랑스 예술가 스스로(물론 주로 뮈세)를 풍자할 정도로 뛰어난 메타인지를 만날 수 있었다. 상드는 기억속으로 하강해(345p) 서른 살의 자신이 만났던 이십대의 광적인 천재와 어리지 않아서 더 실망스러운 사십대의 신사가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편지라는 물증이 남아있었다고 하나, 이미 오십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가 24년전 기억을 소환한 결과는 기록 이상의 치밀함과 소설 그 자체의 미덕을 겸비했다.
처음 100페이지에 적응하면 그후로는 스토리와 클리프행어가 잘 이끌어준다. 번역서 특유의 아리송함이 종종 등장하지만, 이제는 짧은 프랑스어 실력으로도 원문이 얼마나 복잡할지 예상이 되기에 읽는 자의 고통의 총합을 넘어설 옮긴이의 고통을 상상하며 물러난다. 어쩐지 프랑스어에게 또 한방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오기가 생긴다.
그는 천사였다. 그게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처럼 타락한, 적어도 벼락 맞아 아픈 천사였다. 사랑해야 할 필요성이 그의 마음을 삼켜버렸으며, 그는 하루에도 백번 자신이 너무나 지나칠 정도로 삶을 이미 낭비해온 것은 아닌지, 그리고 행복해질 힘이 남아 있는지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에게 물어보곤 했다.
-66p
"친애하는 로랑, 테레즈가 테레즈일 수 있도록 애써주세요. 그녀가 쟁취해낸 것은 그녀 자신이니까 말입니다!" -88p
이런 추억, 그것은 그녀만의 고유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어 그 사람을 매장해야 할 때, 우리는 고통 없이 망자의 얼굴에 흰 천을 덮어 공동으로 매장하는 구덩이에 밀어 넣을 결심을 하지 않는다. 이따금 찾아가 묻힌 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무덤을 하나쯤 선택한 다음 거기에 망자를 묻어두길 원한다. -97p
그것은 로랑의 기억을 관통했던,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하얀 도화지에 달라붙게 된 과거의 유령들이었다. -146p
그러나 사랑은 사회적 법규처럼 '누구도 법에 무지할 수는 없다!'는 가혹한 정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법규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사실에 실제로 무지한 자들에게는 유감이라고 말할 수밖에! -163p
"그러니까 다시는 잊지 마, 내 가엾은 아이, 사랑은 발로 밟은 다음 다시 피어나기에는 너무나도 민감한 꽃이라는 걸 알아야지." -187p
그녀는 로랑이 겪고 있던 이 현기증에 속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현기증일 뿐 다른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예민한 신경, 그녀와 같은 한 여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고통으로 멍든 그녀의 심장에 퍼져 있는 섬유망이었다. -269p
파머가 가장 고상하게 움직이고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남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잘못은 모두, 그에게 의지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노력이었던 것들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거라고 믿었다는 데 있었다. -284p
천재라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성장해온 세계에서는 어쨌든 왕이다. 이들은 아주 독재적이며 자신의 권력에 흠뻑 도취된 왕이다. 지배하려는 갈증으로 고문을 하고, 확실하게 지배한다는 기쁨이 분노로 치달을 때까지 흥분하는 자들도 있다. -300p
내세에서 뮈세와 한판 뜨려면 현세에서 프랑스어를 적어도 한국어만큼은 배우고 떠나야겠다는 평생의 과제도 부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