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놀고 싶은 초여름, 정착하긴 이르잖아?
봄은 잡을 새도 없이 가버렸다.
겨울에 가까웠던 3월에는 허겁지겁 노을 사냥을 나가도 연장전을 못하고 귀가했다. 급더워진 3월 말부터 일교차에 헤롱거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왜 굳이 버티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었다. 원래 집순이인 척도 해봤고, 여행 가고 싶어서 안달난 것도 아닌데 그게 싫다. 가고 싶은데 아직 준비가 부족해서 보류중이어야 한다. 그런데 가고 싶지가 않다, 왜?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무섭다. 밖에서 잠들까봐 무섭다. 아니, 밖에서 잠들지도 못하면서 방전되면 집에 오는 길이 너무 힘드니까 무섭다.
팬데믹이 망친 계획은 너무 우려먹어서 이제는 놓아주려고 하지만 목적지가 바뀌지는 않았다. 나의 스페인, 은 14년 전 계획에서 업데이트를 거의 못했으니 맘상해서 3순위로 내리고 그 자리에 이탈리아를 올려두었을 뿐. 이탈리아는 또 하나의 대백과사전이라 손대기 겁났지만 어찌어찌 친해지는 중이다. 물론 1순위는 매일 뇌새김하는 저놈의 파리겠지?
이쯤되면 파리는 꼭 가고 싶거나, 사랑하는 장소가 아니라 해결 못한 숙제에 가깝다. 그런데 빈정 상한다고 파리 지도를 떼어버려도 머릿 속엔 굽 높은 장화가 떠다닌다. 설마 이탈리아까지 갔는데 파리를 안 보고 올 생각은 못하겠지? 쿨하게 이탈리아만 잠깐, 다녀오고 싶지만 그렇게 멀고 골 때리는 곳은 여러번 가지 않을 것을 안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는 유럽보다 아프리카가 좋다. 이건 반전인데? 그만큼 소문보다는 내 경험이 더 좋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너무 자주 다녀서 아무 느낌이 없는 서울이 사실은 가장 사랑하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와, 서울 너무 좋아! 이런 말을 평생 여기서 살아온 사람이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까 오히려 나의 뉴욕 사랑은 남의 떡 커보임 현상이기도 하고, 내꺼 있는 사람의 외도이기도 하다. 아! 물론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분이나 소유권에 극히 반대한다.
너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대가 내 사람을 지킨답시고 내 사람의 인간관계를 통제하는 행위는 대부분 변태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구속, 구타, 가스라이팅, 조종, 뭐 그런 것들. 사랑은 죄가 없지만 사랑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나쁘다. 그래서 엄밀하게는 모든 결혼이 나쁘다. 양육권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을 활용할 것이다. 대체 이걸 다른 이도 아닌 내가 왜 연구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증명을 하겠다는 욕구다. 너도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굳이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애써 마킹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굳이 정착하지 않겠다.
당연히 애인이 있을거라는 말, 한 사람의 애인이나 배우자로 사는 건 좀 억울하니까 모두의 여신이 되어달라는—술 드시고 하는—말도 필요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건 일종의 병이고 습관이고 DNA에 새겨진 성향이다. 애인을 만들려는 의도도 아니고, 애인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도 아니다. 완벽하니까 더 까다롭게 사람을 고르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니까 아무나 만나도 되는 것도 아니다. 내게 문제가 발생하는 시점은 사랑에 조건이 붙는 순간이다.
나도 사회 구성원이니까 시간과 이름을 독점하는 관계는 어느 정도 독점적으로 인식하는데, 내꺼라고 막 떠드는 거 싫어하니까 남들이 내 독점을 알아서 배려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배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별로 멋지지 않은—주로—남성의, 별로 멋지지 않은 애인은 나와 자기 애인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싫어한다. 이건 클리셰 축에도 못 끼는 이야기였다. 쓰고 보니 쓰레기네. 봐서 지워야지.
사랑하는 도시, 라는 주제로 떠들기 쉬운 곳은 뉴욕이다. 다른 곳도 많지만 뉴욕은 다들 가봤거나 영상으로 봤거나 말을 많이 들어봐서 반발심이 없다. 다른 도시들은 조금만 자세히 얘기해도 모르는 사람들은 지루해진다. 세상 모든 곳을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가 보지 않았거나 가기 힘든 곳이라 프리미엄이 붙기도 하고, 희귀하거나 흔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불거릴 수 있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는데 지명이 한국어인데 갑자기 너무 생소한 경우도 있다. 그런 곳은 대체로 부산이다. 서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산 사람들도 종종 '여기가 부산'임을 생략한다. 처음보는 지명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나 역시 서울 지리를 이방인의 눈높이에서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는 생활의 중심이 된, 온라인 친구들 중 상당수가 서울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