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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강변, 참 걷기 좋은 곳이야

리버워크, 네이비피어, 밀레니엄 파크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눈이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눈을 뜨고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카고의 열흘 중에서, 반 이상이 때 이른 겨울이 될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눈부신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낮의 도시를 걸을 수 있는 3일 중에서 미술관의 하루를 빼면 단 이틀이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5개월쯤 후에는 팬데믹과 락다운의 시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락다운이 풀린 후의 첫가을을 집안에서 보내기 아깝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랜선여행이 더 좋아져 버렸는 걸.



다리 위에서 보는 시카고 리버의 크루즈(서로 손 흔들어주기)


지금 소환하고 있는 3년 전의 시카고 역시 나에게는 '대상포진 보복여행'이었다. 투병, 요양과 일상 회복을 하는 동안 분노의 여행 에너지를 적립했다. 그 여행에서 남은 에너지를 다 토해내고 돌아왔더니 다시 나약해지고 있다. 운동은 입으로만 하고 없는 체력을 쥐어짜서 공연까지 했으니, 코로나에게는 복수할 힘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정신력이라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펜으로 복수해야지.


산책덕후의 시카고 하이라이트는 셋째 날이었다. 유명한 '옥수수 빌딩'을 지나 드디어 강변에 도착했고, 아찔한 계단을 내려갔다. 시카고 리버는 한강보다는 훨씬 작고 청계천보다는 훨씬 크기에 강변 카페와 식당은 물론 화장실, 산책로, 선착장 등이 즐비했지만 많이 붐비진 않았다. 일요일이었지만 다운타운으로 모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나 보다.


겨우 3일째였고 마지막으로 함께 외출한 아프리카 아기사자 인형 짐바(Zimba from Zimbabwe)와 함께 리버워크에 있는 선베드에 누워서 쉬다 보니 하늘이 개었다. 리버노스로 올라가서 또 산책을 하다가, 그리운 세포라에서 쇼핑을 하고 다시 리버워크에 있는 애플스토어에서 리버뷰를 감상했다.



시티뷰와 리버뷰를 큰 폭에 담을 수 있는 네이비피어


아직 날이 좋을 때 네이비피어도 가보려고 버스를 탔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버스 경험이 미미했고 혼자였으면 버스가 타기 싫어서 걸어갔거나 우버를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우버 경험도 거의 없는 셈이라, 막막한 마이애미에 가기 전에는 시도해보지 못했다. 지하철이 없는 마이애미에서는 버스를 타야 했고, 버스가 마땅치 않거나 버스를 잘못 타면 우버를 타야 했다. 덕분에 소도시 여행을 시도할 수 있는 버스와 대안교통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네이비피어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흐렸다. 시카고 중심부에서 살짝 비켜나, 건물 한두 개가 아닌 전체적인 도시 풍경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지만 쓸만한 사진은 거의 없었다. 매점에서 핫도그를 먹고 근처의 비치로 이동했는데 이 비치가 보듬은 바다는 사실 미시간 호수이다. 바다가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비주얼은 영락없는 바다였다. 물놀이까지는 계획하지도 않았고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더위도 물러갔기에, 발만 담가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밀레니엄 파크의 '일몰'을 맞으려 갔다. 이미 산책 한도를 초과했지만 내일 귀국하는 친구의 마지막 저녁이라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콩, 클라우드 게이트를 한번 더 보고 시티뷰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밀레니엄 파크에는 포토존이 많아서 정확한 위치를 모름


햇빛은 전부 비구름으로 바뀌어있었다. 비디오 아트 형식의 크라운 분수에서 또 한 번 발만 담그는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틀 동안 많은 추억과 기록을 선물해 준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 이동을 위해 짐을 찾으러 갔다.


이제 시내 이사를 한 번만 더 하면 된다. 다다음날 새벽에 마이애미로 이동하면서 또 한 번 난리법석을 떨겠지만, 조식을 제공하는 3번 숙소는 다른 의미로 포근했다. 여긴 정말 기숙사 같은 벙커 베드로 이루어진, 정말 호스텔 같은 아기자기함이 있었다. 어떤 호스텔은 약간 군대나 병원 같고, 어떤 호스텔은 조금 럭셔리하지만 수납공간이나 욕실*이 없는데 이곳은 편안했다. 하지만 풀타임 산책을 하고 도보로 이사까지 한 상태라 도착하자마자 인스타를 하면서 달리의 시계처럼 흘러내렸다.


어느 시점에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방의 룸메이트 중에서 마이애미 대학교를 다녔다는 미국인(?) 친구를 만났다. 현지인 동성친구와 대화를 이어나가기에는 아직 영어가 (또는 현지화가) 부족할 때라서 그녀의 질문에 최대한 길고 경쾌하게 대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덕분에 마이애미 비치의 원탑 맛집도 소개를 받았다.



*욕실이 없는 4인실 이상의 도미토리는 정말 저렴한 숙소이거나, 그 밖의 시설에 비하면 가성비가 더 좋은 혼성룸이다. 시카고는 욕실 없는 방이나 혼성룸이 매우 귀했고, 그만큼 숙소가 차지하는 고정비용이 큰 도시이다. 한편 뉴욕이나 보스턴은 숙소가 워낙 많고 더 저렴하고 오래된 숙소가 있다 보니 예산의 범위가 위아래로 훨씬 넓어진다.

클라우드 게이트를 거울로 활용한 거울셀피


안타깝게도 마이애미 비치의 3박 4일은 물놀이와 편의점 털기의 연속이었다. 페루 식당도 가보고, 마로수길(마이애미 비치의 메인 스트리트)까지 걸어갔다가 지쳐서 다시 걸어온 날도 있었지만 폭풍우 치는 날도 있었다. 문제의 버드야드는 결국 못 갔다.


시카고, 특히 마이애미는 두고두고 가서 살 곳이라 어중간한 경험보다는 목적에 충실한 여행을 하려고 했다. 더구나 맛집에는 특히 미련이 없는 편이다. 시카고에서도 그 유명한 신촌 시카고 피자, 아니 지오다노인가? 그 피자를 먹지 않았다. 시카고 지역에서 파는 넓은 범위의 피자는 이 산책의 다음 날, 스웨덴 마을의 남미 스타일 카페에서 먹었다. 그 후로 그렇게 그렇게 남미 식당이 들러붙었다고 한다. 뜻밖의 과한 이국성(?)을 상쇄하기 위해 이틀에 한번 꼴로 일식을 먹어야 했다.


뉴욕을 제외하면, 한식이 더욱 희귀하기 때문에 일식이 완충제 역할을 했고 다행히 나는 일식을 거의 한식만큼 자주 즐겨먹는다. 한국에서도 가끔은 일주일 내내 나폴리 스타일 피자를 먹기도 한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나폴리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정작 뉴욕에서는 가벼운 혼밥을 위해 뉴욕 스타일 조각피자를 선택하는 날이 많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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