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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04. 2023

이 칵테일이 그 칵테일일 줄이야

조예은 단편집 <칵테일, 러브, 좀비>

한정판이 돼버린 초록 대문 <칵테일, 러브, 좀비>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득템했다. 리커버가 나오기 전부터 자꾸만 눈에 띄는 것도 모자라, 칵테일과 좀비라는 무뜬금 키워드로 시선강탈을 하는 것도 모자라 자꾸만 바이럴이 되고 있던 책. 이미 후속작도 여럿 나왔고 조예은이라는 이름을 이곳저곳에서 듣게 됐지만 아직 그의 작품세계를 모르는 마당에 더 예쁜 책을 놔두고 이 책에 자꾸 끌렸다.


그리고 마법에 걸린 순간이 왔다. 도서전의 안전가옥 부스가 또 시선강탈을 했다. 분홍신을 신은 듯, 분홍과 빨강이 가득한 안전가옥 부스에서 초록색 <칵테일, 러브, 좀비>를 집어들었다. 책이 작은 건 알고 있었지만 네 편의 짧은 소설이라니 감질나겠군. 바로 읽지는 않았다. 같은 날 구입한 다른 책이 오래 걸렸다. 도서전과 상관없이 도서전 전후로 구입한 책들로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이 됐는데 그 중 대부분은 셀프 생일선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펀딩을 하고 펀딩을 기다리다 감질나서 다른 책을 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산 책이 많고 그밖에도 생일선물 또는 그냥 선물로 받은 책도 많다. 그런데, 오래 걸린 책이 끝난 직후에 여운을 달래려고 이 책을 펼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그 다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네 권을 연달아 읽어버려서 이 책은 이미 투명해졌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앞서 읽었던 책 <밤의 소리를 듣다>의 마지막 부분에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지만 평소 단편을 즐겨읽지 않음에도 조예은의 단편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덕분에 읽다 만 강화길의 단편집까지 일사천리였다.




간단한 작가 소개와 더 간단한 목차를 거쳐 작품집을 여는 <초대>를 읽고 그 찜찜한 불편함과 찜찜한 통쾌함에 읽고 있는 와중에도 관심이 급상승해 '단편집에 실린 제 첫 번째 단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쓸 때'로 여는 '작가의 말'로 건너뛰었다. 리추얼까지는 아니고, 주로 단편집을 읽을 때 해설이나 추천사를 먼저 읽지는 않더라도 첫 작품, 혹은 앞의 몇 작품이 흥미로우면 나도 모르게 부록을 들추게 된다. 덕분에 책을 읽는 과정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두 번째로 읽었고, 그래서 작가의 메타인지나 그 밖의 디테일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했다.


오, 이제 믿고 읽어도 되겠어.


그리고 약간의 고민을 하다 표제작을 마지막으로 미루고 <습지의 사랑>을 읽었다. 로맨스를 쓰고 있는 내 감성을 보충하기 위해 <사랑의 책>을 따로 구입했으면서도, 막 입문한 조예은이 <초대>와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에 이어지지 않는 <습지의 사랑>을 썼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그러나 물과 숲의 쓸쓸함은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나사의 회전>에 등장할 원혼들과 겹쳐지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단순함은 무려 <원령공주>와 그 기원이 될 법한 수많은 전설에 수없이 등장했던 이야기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애틋하다.    


마침내 최종목적지인 <칵테일, 러브, 좀비>에 도착했다. 좀비가 가장 시선강탈을 하지만 목숨을 걸고 좀비를 데리고 사는 가족들은 꼰대 가장을, 그럼에도, '사랑'했다. 그러니까,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도, 그게 '사랑스러웠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정말 원수가 아닌 그럭저럭 참고 사는 가족이라면, 단칼에 제거할 수 없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이 작품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런데...


칵테일은 뭐야? 아...그게 칵테일이었어? 라고 마지막에 한번 더 웃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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