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와의 동행

카이스트 캠퍼스 투어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한국산책 1부를 열고 닫았던 우이천 덕분에 공원 보는 눈이 높아졌다. 이왕 가까이 왔으니까 카이스트 영지를 밟아만 보려는 시도였는데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처음부터 치밀하지도 않았고 막판에 '내일 비가 오면'이라는 전제로 '오늘 가야 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오리연못에는....정말로 오리가 살았다. 그것도 아주 자유롭게, 무리지어서, 울타리 따위는 없는 연못 주변을 자유롭게 거닐며. 이쯤되면 사람이 오리를 피하지 오리가 사람을 피하지는 않겠다며. 닭보다 큰 야생동물(?) 떼를 일단 보츠와나 이후로는 처음 봐서 아주 짜릿했다며.


우리동네 우이천과 그 일대의 매력 아닌 매력이 있다. 청둥오리와 백로가 머무는 천변에 걸린 '너구리 조심' 현수막, 마을 뒤에 숨어있는 북한산 둘레길 입구에 걸린 '들개 조심' 현수막은 북한산 서쪽을 마당삼아 성장한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제로 본 건 조금 큰 새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이런 동물들이 제약없이 거주한다는 사실은 흥미진진했다. 특히나 인간이 야생동물만큼의 분별력조차 갖추지 못한 지금 같은 시기에는 진짜 날것들의 서식지와 마을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차라리 안도감을 느낀다. 판타지 소설 속 그녀들처럼 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리, 저 무례한 인간을 밟고 지나가 줘!




어린 시절 북한산에서 발견한 웅장한 바위에게 '독수리 바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쩌면 나를 가진 엄마의 태몽에 나온 큰 바위가 그 바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첫째가 아들이군요, 라고 해석했겠지.) 바위 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는 등산을 껌으로 알았다. 아기 때는 다람쥐, 좀 커서는 하교시간을 교묘하게 늘려서 뒷동산 일진놀이(?)를 했고 산 속에 있는 학교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발목이 비교적 멀쩡했던 25세 전후에는 힐을 신고 등산을 했다. (자주 하지는 않음주의) 힐을 좋아해본, 힐을 신어야만 했던, 이제는 힐을 신지 못하는 여자들은 알겠지만 힐을 신을 수 있는 총 시간의 한도가 있다. 최소 3년, 최대 30년 쯤은 힐을 신고 춤을 출 예정(?)이기 때문에 춤을 추지 않을 때는 가급적 힐을 신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인생 힐 한도는 초과한지 오래다. 첫 해에 주 40시간까지(본업 있음주의) 춤을 췄기 때문에 한두해(이렇게 오래 쉬려던 것은 아님주의) 건너뛰어도 춤을 까먹지(?) 않았고 그래서 발목의 에너지를 최대한 충전하고 코로나로 만신창이가 된 폐활량을 산책으로 재활하는 중이지만 지난 주에 (졸려서) 폭파된 주말의 댄스타임은 추석때 보충할 예정이다. (과연 그럴까?) 나만의 의식이기도 하다. 명절에 친지를 만나는(?) 개념으로 춤을 추러 가기도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오리보다는 연못을 보러간 오리연못 투어에 힘입어 시카고 이후로 처음(?) 9.9km를 걸었다. 오리를 닮은 발 달린 욕조에서 휴식을 취한 덕분에 낯선 침대에서 최근 루틴대로 6시 반까지 잤다. 내장된 여행 알람이 5시에 나를 깨웠지만 전날 10 킬로미터를 걸었기 때문에 몸은 깨어나지 못했고 견딜만한 정도의 피로감은 진짜 온천과 모닝커피로 털어냈다.


짐과 비로 얼룩진 대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우이천으로 향했다. 이번 날씨요정을 놓치면 또 언제 이런 투지를 가지고 풍경 사냥을 하겠냐며. 청둥오리를 봤던 곳보다는 백로가 출몰하는 쪽이 더 분위기가 좋아서 조금은 여유롭게 가을의 일몰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