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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Oct 19. 2023

우리 중 누구라도 좀비가 될 수 있다

한제이 연작소설 <좀비보험>

출판사 도서제공



 안에서는 좀비가 되어 가고, 밖에서는 전염병이 돌고 있는 세상에서 이렇게 비정상적인 이상한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139p, 우리 마을로 오세요




디스토피아와 현실의 접점에 <킹덤> 신천지가 있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확장됐고, 연행예술이나 대면 강의와 같은 감염에 취약한 직종은  즉시 마녀사냥에 대비해야 했다. 팬데믹이 가져온 여러 층위의 심리 상태와 인간 관계의 재구성에 대한 고찰이 담긴 <좀비보험>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지만 판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좀비는 전통적인(?) 아메리칸 <워킹데드> 좀비나 <킹덤> <부산행> 등장하는 코리안 좀비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통과한 우리는 앞으로 어떤 합병증에 도전해야할지 모르는, 이전과는 또다른 불확실성과 공존하고 있다.




수록작  가장 수작이었던 '내게 와줘' 정의하는 (실제로는 은어인) 좀비는 접속 중독에 걸린 일명 휴대폰 덕후다. 덕후지만 관심사가 다양한 반면, 팬데믹 이후로 온라인과 휴대폰 단말기  자체에 집착하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공간에 있는 순간이 얼마나 초조한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주 오랜 옛날 컴퓨터라는 존재가  알려진 직후에 상상했던 미래인 오늘날의 모습과는 조금 비슷할지도 모른다.


어느  과학 상상화 그리기에 출품한 그림에는 몇대째 인생의 대부분을 PC앞에서 보내느라 머리와 손은 커지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퇴화한 인물이 등장한다. 당시에 '스마트폰' 예상하지는 못했어도, 가끔 좀비처럼(!) 키보드와 씨름하는 나를 유체이탈해서 관찰하다보면 그때  그림이 떠오른다.




제니는 가볍게 주먹을 쥔 철규의 두 손이 양쪽 허벅지에 가지런히 붙은 모습을 바라보았다. 메일로는 이런 태도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았으나 그 어떤 공손한 표현으로도 지금 한철규가 풍기는 분위기나 느낌은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33p, 내게 와줘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그 감정이 점차 진짜가 되어 갔다. 그가 만나 계약한 사람들이 거짓이었을지도 모를 감정을 진짜로 바꾸어 되돌려준 것이었다. (중략) 철규는 강렬한 감사의 마음에 휩싸였고 거기서부터 다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47p, 내게 와줘


제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인지는   없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데서 이제꼇 아내의 죽음에 대해  누구에게 받았던 것보다도   위로를 받았다. -68p, 내게 와줘


그냥 여긴 내가 속해 있을 데가 아니라는 기분. 속해 있지 않다는 기분. -89p, 내게 와줘


열세 살이면 알 거 다 알아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어른보다 더 합리적이죠. -100p, 내게 와줘


이제 우리  누구라도 좀비가   있다는 말이죠.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좀비들을 보는  흔한 일이 되었어요. -148p, 좀비 마라톤


그랬지. 그들은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180p, 좀비 마라톤


짐승들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약하지만 혐오를 느끼지는 않아. 하지만 인간은 강한 자에게 혐오를 느끼고 약한 자에게는 더욱  혐오를 느껴. 잔인함은 인간의 감정  가장 자연과 다른 감정이야.

-184p, 좀비 마라톤


 


자체 중독 검사지를 만들어봤다. 수면 중독(코로나 대상포진 합병증인 불면증과 양날의 검), 접속 중독(주로 인스타그램), 게임 중독(가족 만들기 계열의 시뮬레이션: 노트북 노화로 못하고 있음), 미국드라마 중독(권태기), 인류의 가장 오래된(정확하지 않음) 증세의 하나일 알콜 중독(다행히 니코틴은 조절 가능). 여기에 더러움 중독(?)과 칩거 중독까지.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전염병 혹은 그에 따른 방역 시스템 등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 가뜩이나 포용당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마녀사냥 혹은 그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동족을 잃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시나리오의 일부를 미리 보여주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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