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여긴 또 가야 돼
새로운 문학의 목적지 목록은 끝이 없다.
세계가 수많은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고 팬데믹의 여파가 오랫동안 남게 될 지금, 우리는 모두에게 중요한 일들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정원을 가꾸고 방 안에서 세계 일주를 하는 것처럼 le tour du monde dans noschambres.
-데이비드 댐로쉬, <80권의 세계 일주>
'시카고 타짜 아가씨'를 별명으로 삼고 싶을만큼 좋아하는 영화, <시카고>와 <타짜>와 <아가씨>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중성적인(?) 작품이기도 한 <타짜>에서 남주 고니가 타짜의 길을 떠나는 그 출발지가 바로 남원이다. 그 희소성만큼 날카롭게 필터링이 되는 마법의 장소.
제 2의 고향이라 여기는, 실제로 서울 수도권 다음으로 가장 오래 거주(?)한 도시는 뉴욕이다. 하지만 평생 체류시간을 모아도 일주일이 채 안 되는 남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나의 본적지다. 내 고향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고향이고, 조상들이 묻힌 곳. (부모님은 소꿉친구가 아니라 상경 후 소개팅을 하셨다.)
그러니 나는 한참 정마담이 패를 돌릴 때 민폐를 감수하고 기어들어간 2006년 추석의 극장에서 '나를 왜 챙겼냐'는 고광렬(유해진)의 질문에 '형 고향이 남원이래매!!'라고 외치는 고니(조승우)의 외침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격하게 웃플(?) 수 밖에.
물론 그 전에 남원은 한국의 베로나였다. 한국의 줄리엣이 살았던 그 곳. 춘향의 고향이고 춘향이 몽룡을 만난 광한루가 있는 그 곳. 지리적 자아(?)가 없었던 80년대 중반을 제외하고 처음 남원을 방문했던 90년대 중반 이후로 갈때마다 광한루 또는 그 근처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봐야 세 번?
말고는 갈 곳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고니 누나가 있는(?) 식당을 찾아갈 수도 없고. (설마 거기가 굳이 남원이겠어?) 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지난 가을에는 작은 할아버지의 빈소와 가을 축제가 벌어지는 요천을 오가며 몽환적인 야경을 눈에 담았다.
이번에는 광한루 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린시절 사진더미에서 남원 동생들과 찍은 광한루 사진 무더기를 발견했고 7년 전 봄에 엄마 휴대폰으로 잔뜩 찍어둔 광한루 사진 파일도 곳곳에 있다. 연고가 없으면 광한루 하나만 보고 굳이(?) 방문하지 않았겠지만 다행히 연고가 있어서 방문 횟수로는 뉴욕을 압도하는 도시가 바로 남원이다.
한글날 전날 밤 부고를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추석 끝물에 고요한 작가의 단편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를 읽고 진안행을 결심했다. 책의 마지막 소설인 '오래된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마이산 탑사였는데 작품 속 생생한 묘사로 살아난 그 곳의 이미지가 불현듯 기억 속에서 시선강탈을 했다.
우리 가족은 90년대 중후반에 마이산 탑사도 갔었다. 이 사진(증거) 역시 어린시절 사진더미에서 나왔다. 그 무렵 우리는 자차를 득템해서 방학마다 전국일주를 했기 때문에 그 시리즈 투어의 끝물에 나는 제발 절 좀 그만 보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지겨웠던 절이 소설속에 등장하니까 새롭게 보였다. 어머, 여긴 다시 가야 해.
그러니까 '어렸을 때 갔었던' 기억 혹은 증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다시 가고 싶어 했는데, 5일 만에 재방문이 이루어졌다. 남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요한 작가의 고향인 진안에 들러 마이산 산책을 하고 '모래재너머' 쉐프가 운영하는 한옥 독채 스테이 '쉐프의 정원'에서 깊은 휴식을 취했다. (네, 광고 맞아요.) 자차 없이 진안에 갈 수 있는지 검색해보니 전주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는데......
진안의 상쾌한 아침을 배경으로 쉐프의 브런치를 먹고 이동한 곳이 전주였다. 전주는 7년 전에도 갔고 얼마 전에도 갔다. 작년에만 두 번 갔다. 전주 전체가 테마파크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서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기보다는 끌리는대로 간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평일을 공략한 두 번째 전주 여행은 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원정 송년회였고 출발하기 전에 연재 마감을 못해서 자연스럽게 워케이션이 되었다. 전주나 그보다 가깝지만 충분히 멀어서 고속열차를 탈 수 있는 지역은 이동시간이 수도권 위성도시와 비슷하다. 파주에 한번 다녀오려면 왕복 5시간 이상 예상해야 하는데(그래서 강북으로 이사한 후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그 시간이면 전주 왕복도 가능하다.
그리고 해매다 어떻게든 구실이 생기는 경춘선이 유난히 작년에는 걸려들지 않았다. 포스트 팬데믹 첫 해였지만 상반기에는 서울에서 열린 굵직한 전시를 관람하면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물어나르느라 바빴고, 말복에 갑자기 산책욕구가 폭발해서 제대로 역마살을 보여준 하반기에는 거의 매달 KTX를 타고 심지어 자차 투어도 했는데 대체로 목적지가 춘천보다 멀었다. 주말마다 경춘선 환승역을 방문하면서 충동적인 춘천여행을 계획(?)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경춘천 부스터인 '사슴벌레식 문답'을 읽고도 결국 출발을 못했다. 때가 아니려니.
모든 길이 뉴욕으로 통하던 그때, 뉴욕에서 춤추고 뉴욕에서 패션쇼를 열고 뉴욕에서 북토크를 하는 장면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이 상상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는데, 내가 배아프게 부러워하는 미드 속 주인공들의 (각색된) 라이프 스타일은 주로 2010년대 중반, 오바마의 임기 말이다. 그리고 나는 트럼프의 당선을 한 달 앞두고 드디어 뉴욕에 입성한다.
실제로 오바마 시대의 미드에 탐닉한 건 그 후의 이야기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뉴욕에 갔고 정권이 바뀌었고 (심지어 한국에 돌아오니 박근혜가 쫓겨났다!) 영어 자신감이 생겨서 뒤늦게 미국드라마에 입문했고 (가십걸도 2017년에 처음봤다!) 오바마 미드를 사랑하게 됐고 그 등장인물을 부러워하느라 영어를 더 열심히 했고 그러는 동안 미국에 한번 더 갔고, 영어를 하느라 억눌렀던 책덕후인 본캐를 영어를 정복(?)함으로써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드라마로 뉴욕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기보다, 이미 다녀온 뉴욕을 추억하고 재방문 의지를 다지려고 드라마를 봤다는 이야기다.
뉴욕 가이드북(?)의 역할을 하게 된, 소설 원작 드라마 <가십걸>의 주요 촬영지였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당연히(?) 두번 다 방문했다. <가십걸>을 보기 전이라 미처 몰라서 놓친 베데스다 테라스와 분수, 보우 브릿지가 있는 호수는 2019년에만 방문했고, <가십걸>을 보기 전에도 구글맵으로 찾아간 거대한 재클린 저수지는 2016년에만 방문했다. 이외에도 센트럴파크에만 이와 같은 크고 작은 랜드마크가 존재한다.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욕대학교는 2016년에 자주(?) 갔고, 특히 핫플인 (프로필사진 배경인) 워싱턴 스퀘어 파크와 (인생샷 촬영지였던) 브루클린 브릿지는 자주는 아니지만 매번(!) 갔다.
몇몇 장소는 배경이 뉴욕이면 당연히 등장하는 곳이라 문학과 건축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하이라인, 월 스트리트, 뉴욕 공공 도서관, 그리고 우리의 리버티 언니, 자유의 여신상. 이 중에서도 지도상에서 센트럴파크 남쪽으로 센트럴파크만한 사각형을 그렸을 때 그 안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뉴욕 공공 도서관, 플랫아이언 빌딩, 유니언 스퀘어 파크, 타임스퀘어 등은 일부러 피하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주요 길목에서 시선강탈을 한다.
지금은 나의 세계가 더 넓어져서 상대적으로 뉴욕은 더 좁게 느껴지지만 처음 뉴욕 땅을 밟았던 그때만 해도 도쿄 다음으로 가장 먼 길을 떠나온 것이라 모든 순간이 볼드했다. 맨해튼 지상으로 처음 올라온 순간 나를 반겨준 회색하늘과 회색도시에서, 재클린 저수지에 도착한 순간 구름이 걷히고 나타난 파란하늘과 파란호수까지. 그 기억은 뉴욕을 선택한 작가들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빛났고, 내가 뉴욕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설계할 때 더욱 빛났다.
여행이 독서에 감칠맛을 더한다는 사람도 있고, 뺀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여행지는 상상 속에서 더 근사하니까. 물론 뉴욕도 그랬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는 너무 많은 작품 속에서 (더구나 한국 사람이 프랑스 작가와 이탈리아 작가를 왕성하게 읽는 편도 아닌데!) 끝없이 반복되는 클리셰에 가깝다.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과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이어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과 <어른들의 거짓된 삶>까지 읽고보니 유럽, 그 중에서도 베니스와 나폴리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또 어떤가. 이미 이번 달에만 권여선과 엘레나 페란테를 비롯해 최애 작가를 거의 다 건드렸는데도(1월이니까!) 보부아르 앞에 서니 또 한없이 겸손해진다. 앞서 사랑에 빠진 작가들에 '와, 이 언니 미쳤어요!'라는 반응을 했다면 보부아르님은 '아, 진짜.' 이외의 반응이 염치없다. 그녀와의 만남은 저자-독자 관계를 초월한 그 무엇이라며. 이전의 작가들, 이번달에 감히 손대지 못한 마거릿 애트우드와 같은 거장들을 비롯해 나이가 어린 선배작가들도 당연히 진지한 스승으로 생각하지만 가끔은 정말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무엇보다도 문학의 힘을 뿌리까지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직 읽고 있지만) 저세상의 경지라고 봐야 한다. 프리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모든 인간은 죽는다>의 남주인 레몽 포스카를 따라서 지구를 두 바퀴째 돌고 있는데 이로써 '문학은 역사와 철학을 품을 수 있다'는 명제가 완연하게 증명됐다.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질문에 답해보자. 서울 사람이 서울 배경의 소설을 읽는가? 물론 소설을 읽는다는 전제로 해야 하지만, 소설을 읽는 사람의 상당수는 장르 소설 혹은 해외 고전만 읽는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일시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는 30대가 특히 그랬다.
한국 소설을 읽고 쓰던 20대를 지워버릴 기세로 (주로 외국) 스릴러를 탐독하다, 영어책만 읽었던 미국병-팬데믹 시즌을 거쳐 유럽과 남반구 출신 번역서로 확장을 했더니 마음이 급하다. 국가별로 한 권씩만 골라도 수십 권이다. 조급증을 가속시킨 건 무엇보다도 돌아온 한국 소설이다. 늦게 발견한 작가도 많은데 원래 읽던 작가들도 이어읽기로 했고 10년 이상 건너 뛴 만큼 쌓여있는 숙제가 많다. 아는 작가의 10년 치 작품, 10년 동안 데뷔한 작가, 아는 작가의 20년 된 모르는 작품, 실시간으로 데뷔하는 작가들까지. 여기에 가급적 다양한 외국 작가들.
한국 소설의 경우 서울의 특정 지역이거나, 특정 지방 도시, 불특정 지방 도시가 배경인 경우가 많다. 뉴욕도 그렇지만 서울의 특정 지역은 다른 지역과 호환되지 않는 무드가 있었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지금은 핫플과 레트로 핫플(익선동, 힙지로)과 세계화된 올드 타운과 구도심 등으로 유형화가 됐고 강남과 홍대의 특징은 이들 핫플이 벤치마킹한 이후로 희석되었다. 생애 최초의 핫플이었던 30년 전의 명동이 지금은 외국인 전용 구역이 되었고 꿈의 도시였던 20년 전의 홍대는 이제 프랜차이저와 웨이팅 맛집과 공실로 가득하다.
맛집과 핫플을 선점해야하는 여행 크리에이터의 삶이 점점 버거워지는 이유 중 하나다. 점점 맛집이 비슷비슷해지고 오마카세와 가성비로 양극화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핫플은 모두가 방문해서 모두가 같은 구도로 촬영하고 거리의 이름에는 러시아 인명처럼 돌림자가 붙는다. 그나마 문학적(가이드북이 아닌 여행에세이적) 장소가 될만한 가능성이 있는 곳은 구도심이다. 아직 유명하지 않지만 유명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게 꼭 좋은 건 아닌데) 문학적 포텐이 있는 장소들은 내 소설의 스포일러이므로,
때가 되면 등장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