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읽을 필요도 없는 책등테라피
책이 있는 공간,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 유치원은 외삼촌의 서재였고, (나는 유치원 정규과정을 졸업하지 않았고, 그 흔한 학사모 졸업사진을 스물다섯에 처음, 사진관 말고 캠퍼스에서, 동생의 아마추어 스냅샷으로 찍어봤다.) 그중 일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서재 겸 내 방으로 분가했다. 동생에게도 책등테라피가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인지하신 부모님이 방을 바꾸라 명하시게 되는 고등학교 때까지 서재를 독점했다. 다들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서재에 상주하는 것을 구경(?)했고 그 부작용(?)으로 중학교 1학년 말부터 다른 가족들의 서재 입장은 내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렇게 서재관리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읽으면 안되는 책은 없었지만 내가 읽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책들은 부모님이 모르게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그 책들을 안 읽었거나 읽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높은 확률로!) 내가 읽었다고 뭐라고 하실 분들도 아닌데다, 결정적으로 이 책들은 복간되어도 다시 읽고 추천할만큼 괜찮은 책들이다. 굳이 하나씩 언급하진 않겠다. 우리가 최종적 이사를 했던 시기에 마침 갓 사춘기로 진입했던 나는 내가 무슨 책을 보는지 적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고, 나의 독립적인 공간을 사수했다.
대학교 저학년때는 책을 쌓아두지 않았지만 책선물을 사거나 받기 위해 책방을 수시로 들락거렸고 그렇게 내 책이 된 책들은 한동안 나의 말 없는 가족이 되었다. (일부는 팔고, 일부는 본가, 즉 과거의 독립적 공간에 있다.) 특히 대학생활의 하이라이트를 집 없이 보냈기 때문에 (통학하는 척 하고 학교에서 잤던 날이 많다.) 당시 막 이사온 분교 출신 자치도서관을 사무실처럼 사용했다. 방학 때는 그곳에서 먹고 공부하고 놀았다. 책등 삼림욕을 하면서.
내 책, 나만의 책이 급속히 쌓이기 시작한 건 히가시노 게이고를 알게 된 이후일 것이다. 그 전에 샀던 책은 대부분 잃었고 극히 일부만 본가에 있다. 이후 쌓여 있던 스릴러도 대부분 팔았고 얼룩이나 저자 사인이 있는 극히 일부만 본가에 있다. 다른 모든 물건과 마찬가지로 책에 대한 애착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특정 시기에는.
영어와 친해지려고 미국에 다녀와서 진짜 영어랑 친해지고나니 평생 숙원이었던 원서읽기를 하려고 책을 쟁였다. 영어공부의 목적 중 하나가 책값 아끼는 것이었는데, 책 한 권당 드는 비용이 적을수록 책이 쌓이는 속도는 빨라질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기존의 책을 거의 다 치우고 새로 책수집을 시작한지 3년 만에, 평생 평균적으로 소장했던 책의 분량을 가뿐히 넘어섰다. 어떻게든 누적되는 본가의 먼지쌓인 책들(새끼치나?)은 언제나 논외다. 그 책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면서 많고, 일부는 너무도 잘 숨겨두어서 찾으려면 집을 터뜨려야 한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있지만, 한동안 저비용 혼데이트 장소로 도서관을 애용한 적이 있다. 그때 발급받은 고양시 도서관 카드가 어딘가에 있다. 고양시 도서관 중에서 네이버지도의 별점이 높은 순으로 방문했다. 너무 많은 곳을 가봐서 특별히 기억나는 곳은 없지만(원당이었나?) 도서관 창문으로 햇살이 비스듬하게 들어왔던 어느 오후와 생각보다 원서가 많아서 속으로 탄성을 질렀던 날이 떠오른다. 그 기억은 내 눈이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포착할때마다 자동으로 소환된다. 그래서 오히려 20년 전에 도서관을 점령(?)했던 기억이 묻혀있었다.
낡은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장할 수 없는 책은 슬프다. 한번은 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구입하려다 절판책이라 엄청 속상했던 적도 있다. (개인소장용으로 복제했다.) 무엇보다 책을 읽을 때 오만가지 딴짓을 해야 하고, 병행 독서를 해야 하고, 여러 권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과 대조도 해야 하고, 책과 함께 밥도 먹고 목욕도 하기 때문에 나는 내 책을 가져야 한다. 밑줄을 치는 건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인데, 이미 목욕 등으로 상한 책이나 '어머 이건 영구소장 해야 돼!' 라고 생각하여 이미 막 굴린 책에만 마음 놓고 밑줄을 친다. 그 전까지 최대한 인덱스로 버티고, 인덱스가 많이 붙지 않은 책은 인덱스 회수 후 팔기도 한다.
대형책방보다 엄선된, 낡았지만 아주 멀쩡한 책이 가득한 대형 중고서점이 최근의 애착책방이다. 예전에는 책을 팔러 갔다. 그러다 책 한권 값으로 중고 원서를 대량 구매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팬데믹 1년차에 들어온 재난지원금을 서재 부활에 투자하게 됐다. 한동안 알라딘 대학로점을 다니다 가끔 다른 지점에 가보면 상대적으로 책의 구성이나 배치가 아쉬웠다. 그 중에서 디스플레이가 취저였던 곳이 건대점이었고, 이사 후에는 수유점에 완전히 정박했다. 정말 질릴때까지 이 책방을 털다가 책방산책력이 업그레이드 된 이후로 신사점과 강남점에서도 행복한 책사냥을 했다. 신사점에는 원서가 정말 많았고 강남점은 그냥 책이 많다.
서울시에서 제작한 <책방산책>이라는 서점투어 가이드북도 이벤트 당첨으로 받았지만 독립서점, 동네서점을 방문하는 루틴은 시행착오 중이다. 일단 산책하기 좋은 거리에 알라딘과 교보라는 막강한 책방들이 나란히 위치한데다, 북토크가 아닌(!) 책방투어를 위한 책방투어 장소로 점찍어둔 어떤 책방은 가려고 하면 꼭 휴무일이었다. 예전에 가까웠던 을지로나 홍대는 일부러 가게 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는 책보다 사람이 우선이라 그냥 돌아올 때도 많다. 올겨울엔 그나마 최애책방이자 최애장소인 광화문 교보문고를 자주 가게 됐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입한 적이 작년에도 있긴 하지만 그건 계획구매였다. 최근에는 그냥 산책하러 갔다. 내일도 인덱스 사러 가야 하는데 책을 구입하진 않을 것 같다. 밑줄 인덱스를 사러 우리동네 교보문고에 가려고 어제는 수면부족을 견디며 아침운동을 했는데 문제의 인덱스를 더이상 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수가. 온라인 배송은 연휴가 끝나고 순차적으로 출고한다고 하는데 연휴에 집중독서를 해야하니 속이 탄다. 광화문에는 있겠지?
각종 대형서점, 특히 본점의 평대에 책이 누워있으려면 사전섭외는 필수다. 요즘 어떤 책들이 누워있는지 보려고(그보다 특정 책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종로 대형서점 투어를 했던 12월 중순에 광화문 교보문고의 깜찍한 배치를 보고 깜짝 놀랐던 사건이 있다. 무려 한강과 권여선을 평대 아래에 있는 서가를 서랍으로 활용한 미니 평대에 배치한 것이다.
어쩌면 무릎에 걸려서 그 근처로 가면 볼 수 밖에 없는 위치일지 모르겠으나 그 근처로 가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다. 하지만 사전섭외된 책을 제끼고 어딘가에 올려둘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하나마나한(?) 배치를 했을리가. 평대를 약간 재미로(?) 구경하긴 하지만 (어제는 에세이를 제자리에 놓으려고 소설 평대를 뚫어지게 관찰하시던 독자분께 '여긴 소설이예요'라고 알려드렸다.) 최애책방, 애착책방을 비롯한 책방의 최애장소는 서가, 다른 말로 책꽂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일반적인 도서관이나 개인 서재도 책꽂이가 디폴트니까. 책을 쌓아두고 읽는 사람은 자기만의 책꽂이나 적어도 책탑이 있으니까 책등테라피를 할 수 있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서 우연히 내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나를 부르는 책, 나와 눈이 맞는 책, 눈높이에서 유혹하는 책. 수많은 책등을 동시에 바라보는 그 순간, 특정 순서(작가명, 출판사명) 또는 랜덤 순서로 꽂혀있는 서가와 눈싸움을 하다보면 머릿속에 나만의 지식백과, 무형의 무한한 데이터 같은 것이 생긴다. 이 짓을 30년 동안 했는데, 아직도 서가를 보면 심박수가 증가한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나 동물, 혹은 그림이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이제 팬데믹과 영어의 기묘한 조합으로 다시 한번 서재관리자가 되어 책덕후 본캐를 깨워낸 이상 더는 허술하게 아무책이나 들일 수 없다며 독서계획은 물론 그에 따라 책 구매계획과 리뷰계획까지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삶을 구축했다. 먹고 생필품을 사는 최소한의 삶이라면 더 적게 벌고 더 많이 놀아도(?) 되겠지만 이제는 책을 사기 위해서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자책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기보다는 돈 되는 시간을 늘려야하는 것이다. 도서구입비용이 수입을 늘리는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면 (책을 읽는 양만큼 원고료가 올라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족치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다 철수한 분야가 꽤 있는 편이다. 나랑 맞지 않는 것은 그 다음 문제.
책을 팔고 가벼웠던 찰나의 여유가 그립진 않다. 책을 펼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사들인 옷과 화장품은 또 어떤가. 지출은 지출대로 많고 공허는 공허대로 크지 않았나. 소비의 즐거움을 책에게 몰아준 이후로 어떤 물건을 봐도 시큰둥한 내가 신기하다. 그동안 옷과 화장품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꼭 필요한 것만 사도 피부트러블이나 사이즈 변동이 없고 따라서 선물 등으로 대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행운을 갖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은 지성을 우선시할 여유가 없다. 그 어떤 사람에 과거의 나도 포함된다.
빠르게 서재를 복구해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책소개책을 많이 봤다. 권위있는 매체의 추천도서 목록은 참고만 했다. 내가 분석한 추천도서는 오히려 유명하지 않지만 야심만만한(?) 개인이나 단체의 목록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권위가 있는 단위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일 것이다. 민음세문에서 굳이 '번역'까지 해서 '출판'한 책이라면 여러 단계의 필터링을 거쳤을테니. 그런데 목록이 길다.
작년부터 문학동네도 주목하는 중이다. 굳이 출판사를 의식하지 않고도 끌려서, 저자를 보고 구매한 책들이 문학동네였다. 특히 마지막까지 갈등했던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은 문학동네가 승리했다. 민음세문의 표지인 드가의 '압생트 여인'이 최애그림 중 하나인데, 문학동네의 역자가 황현산 선생님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림을 산 게 아니고 책을 산 것이니 쓰고 옮긴이가 우선이었다.
좋아하는 저자와 역자만을 추려도 1000권이 담긴 소망상자에서 고르고 골라 구입할때는 표지도 중요하다. 장바구니에 담을 때 출판사나 제목, 분야 같은 것은 비교가 끝난 상태지만 표지의 경우 지금 읽고 있는 책들과도 조화를 이루는 게 좋다. 표지디자인이 책 내용을 반영하기도 하겠지만 표지들의 조화를 추구하다보니 책과 책 사이가 더욱 단단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니까, 단지 시각적 욕구, 어찌보면 인스타그램적 욕구(그러나 나는 브런치에서도 이 욕구를 추구한다.)에 의해 책표지로 이루어진 갤러리를 깔맞춤하다보면 키워드나 핵심주제가 의도치 않게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고른 책이니 나의 키워드, 나의 핵심주제에서 파생된 책들끼리는 상관성이 있다. 한편 표지디자인을 중시하다보니 내용과 상관없이 자꾸 밀려나는 책도 있다. 대형출판사가 아니어도 책을 예쁘게 만들면 좋겠지만 모든 책이 적합한 디자이너와 매칭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특히 세계문학전집을 보유한 대형출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여차하면 펭귄 영문판을 사버리겠지만 민음사나 문학동네, 열린책들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책이 있는가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아예 번역서가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책탑 사진을 찍었을 때 강조되는 책등의 디자인도 점점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새로 구입한 책은 일부러 책상 위에 쌓아두거나 손 닿는 곳에 놓고 애착 형성을 한다. 그때도 주로 책등이 보인다. 책등에는 핵심키워드 중에서도 핵심의 핵심만 모여있다.
제목, 저자, 출판사.
책상 위에 놓음으로써 매일 각인되는 이름들? 중요하다. 매주 방문하는 책방의 서가에서 눈에 띄는 이름들? 당연히 중요하다. 더 많은 책방으로 진출하는 이름들? 중요하다. 그리고 이 많은 책방을 산책하는 사람의 머릿속엔 얼마나 많은 이름이 있을까.
책을 뽑아서 읽는 귀찮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충분한 데이터가 쌓일만 하다. 물론 읽기도 많이 읽었고, 엄선된 서재를 거쳐 책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지만 그럼에도 책방산책을 통해 수집하는 데이터를 무시할 수 없다. 인스타를 통해 노출되는 표지사진의 디자인과 노출횟수를 결정하는 리뷰어들이 중요한 만큼 책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가도 중요하다.
내 서재를 구성하는 책등이 나에게 매일매일 쌓이는 밈이기 때문에 (책 제목과 저자 뿐만 아니라 그 단어들이 소환하는 연관 개념까지 생각하면 특히) 눈앞에서 매일 노출되는 책을 엄선할 필요가 있다. 설날 연휴에 책꽃이 개편을 한번 더 해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