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의 여정과 자랑의 기술
싸이월드 헤비유저였던 나는 [Anymovie]라는 폴더에 스틸컷과 한줄평으로 총 119편의 영화 후기를 남긴 적이 있다. 가늘고 긴 블로깅(Blogging)의 시작이었다. 간절기와 같았던 작가지망생(1) 시절에는 분량이 긴, 몇 편의 드라마 리뷰와 드라마 촬영현장 후기가 포함된 블로그(1)와 일관성 없는 일상이 담긴 페이스북 계정을 병행했다.
당시 쓰다가 엎은 장편소설(1)과 동명의 페이스북 페이지(1)를 운영하면서 카드뉴스를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손에 익은 편집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렇게 흐리멍텅했지만 수면 아래에서 온갖 발차기를 연습한 시기에 인스타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으나, 적절한 주제도 적절한 일상도 없었다. 여유 있는 시간은 긴 이동을 하는 버스에서 쪽잠을 잘 때뿐이었고, 집에 도착해서 다시 출근을 하기까지 약 6시간 동안 휴식과 (셀프) 재생산을 해야 했다. 주말에는 휴식시간이 더 늘기도, 줄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이 셀프인테리어를 거쳐 여행패션 크리에이터로 진화하기까지 반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에 테스트용 영상 두 개 이후로 새 게시물을 올리기까지 2년이 걸렸다. 주제 선정에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셈이다. 이후로 주제는 느리게 꾸준히, 융합과 진화를 거듭했다.
퇴사하고 첫 번째 미국여행을 다녀온 2016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201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리부트를 시작했다. 아직 페이스북에 독립적인(?)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 인증(?)은 오히려 페이스북에 하고 인스타그램은 디자이너 계정으로 유지했다. 여행은 계속되었으나 콘텐츠 공백기가 생겨서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터 계정을 일반 계정으로 전환하고 가끔 여행이나 산책 사진만 올렸다.
두 번째 미국여행을 다녀온 2019년 당시 팔로워들과 느슨하다 못해 소원했고 내 계정이 반사상태였기에 실시간으로 올린 여행사진도 알고리즘과 만나지 못했다. 위치태그 하나로 천 명 이상 추가 유입되는 지금(또는 유입 전성기였던 2년 전)과는 다르다. 이어서 영어 리부트 4년 차인 2020년에 계획한 여행과 콘텐츠가 팬데믹으로 무산됐다. 영어 인풋에 주력하기로 했다. 목표를 영어 블로그로 잡고 스터디플래너로 시간관리를 했는데, 어느 시점 이후로 공부보다 그냥 읽기, 쾌락 독서 그 자체를,
영어로 할 수 있게 됐다.
영어 눈트임 기념일이 2020년 4월 5일이다. 같은 해 12월, 영어블로그와 책스타그램을 충동적인 동시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늦게 올리는 여행사진과 원서 읽기 인증으로 회복세를 맞이한 인스타그램에 이어, 영어블로그에 책과 미드 대본 발췌문과 해설을 포스팅했다. 출판사 이벤트를 통해 국내서 리뷰를 시작했다. 리뷰어로 거듭난 2021년에는 블로그에 익숙해지고자 매일 포스팅을 해야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 블로그 챌린지에 처음으로 도전해서 완주했다. 장기적인 아카이빙을 위해 GRE예문을 필사한 페이지 기준으로 한 장으로 하루의 포스팅을 작성했다.
블로그를 오랜만에 해서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서평은 점점 길어지고, 예문 해설을 매일 하기 위해 국내서, 여행 등 다른 주제 포스팅을 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그 시즌에 공연연습도 재개했고 책도 읽어야 하는데 블로그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빨아들였다. 이건 블로그 잘못이 아니라 너무 오래 블로깅을 쉬는 바람에 힘조절을 못하고 버닝한 내 잘못이다. 서평 못쓰는 병에 걸렸다.
블로그 챌린지를 119일 연속으로 하고 번아웃이 왔다. 책을 읽거나 단어장 스터디는 하되 블로그를 못했다. 예문 해설이 아닌, 그냥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넋두리하는 심정으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은 짧은 여행기와 원서 발췌문 등을 유지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블로그에 단일주제로 4개월 동안 1일 1포스팅을 했던 느낌으로 인스타에 업로드 가능한 분량만 매일 쓰기로 했다. 기존 2만 자 이상을 쓰던 서평은 캡션 최대분량인 2천 자에 맞춰서 쓰고 여행기는 사진을 기준 삼아 수십 자에서 수백 자까지 자유롭게 썼다. 그러다 냅킨에세이였던 여행썰이 [다음편에 계속]으로 이어지는 두루마리 휴지가 되어버린 날이 왔다.
여행기 입트임(?) 기념일이 2022년 5월 13일이다. 첫 번째 코로나 감염과 격리 때문에 국내서(번역서) 독서량도 대폭 늘었다. 텍스트의 인풋, 아웃풋 이전에 수많은 이미지와 해시태그를 저장해 둔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터 계정은 2022년 초에 1차 떡상을 했고 그 후로 특정 주제의 사진을 업로드할 때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혜택을 받았다. 그때는 그 의미를 잘 몰라서 '잘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더 많은 주제에 욕심내기도 했다. 유입 전성기를 더 알차게 활용하지 못해서 1년 뒤에는 거품이 거의 다 가라앉았다. 이 시기에 팔로워가 2천 명 정도 늘었다.
여행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여행(2)의 마지막 구간을 8챕터(X2천 자)로 작성하고 8월에는 한정판(?) 짐바브웨 여행기를 또 8챕터 작성했다. 미국 여행기를 처음부터 완주하기 위한 습작이었다. 미국에 돌아가 시카고 파트를 쓰던 2022년 추석 끝물,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브런치북 공모전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남은 분량은 최소 이틀에 한 번은 작성해야 했다. 공모전이 약간 연기되어 안정적으로 30챕터(6만 자) 분량의 브런치북(1)이 완성됐다.
작가 프로필 [작품] 카테고리 가장 밑에 있다.
여행기를 쓰는 동안 서평 완성도는 높지 않았다. 매일 포스팅하기 위해 주 3회 정도는 책 사진을 올리면서 2천 자 내외의 발췌문과 책썰을 첨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도 약간 버닝한 것 같다.
브런치북으로 미국 3부작을 연작하기 위해 미국드라마 리뷰와 미국미술관 화가별 리뷰를 쓰고 인스타그램 서평은 애착서점을 발견한 2023년을 맞아 밀도를 올렸다. 브런치북(1)과 브런치북(2)의 교체기부터 인스타그램에도 완독평만 올렸고 더 길어지거나 더 짧아진 버전이 브런치에도 누적됐다. 이 서평들은 세 권의 브런치북 형태로 엮일 수 있었다.
아직 매거진에만 있는 리뷰가 18편, 두 달 동안 인스타그램에만 올리고 며칠 전에 브런치 서랍으로 옮겨둔 리뷰가 19편이다. 이전에 발행한 리뷰모음도 권당 20편 정도의 분량이므로 완독하고 일정한 형식으로 작성한 시그니처 리뷰만 총 100편 정도 된다. 여기에서 초창기 블로그 서평 등은 제외됐다.
인스타그램 기준으로 완독 리뷰를 주 2회 이상(목표는 격일) 하기 위해, 그보다는 작년에 브런치를 포함한 여러 플랫폼에서 대표 크리에이터로 선정이 됐는데 특히 브런치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선정과 맞물려 느슨해진 서평의 빈도를 다시 조이기로 했다.
실험적으로(?) 운영하던 인스타그램도 책사진과 여행사진에 집중하고 소통을 강화한 덕분에 정신 차리고 2차 전성기(전체적 불황에도 불구하고!)를 맞고 있다. 이 시기에 (거의 1년 동안 정체되어 있던) 팔로워가 2천 명 이상 늘었다. 브런치북 공모전 전후로 장편 에세이를 조기마감하고 서평과 소설만 쓰려고 했는데, 공모전이 끝나자마자 모든 크리에이터가 유료응원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작가의 연재가 가능해져서 마감 3일 뒤부터 다시 에세이를 쓰고 있다. 처음에 작성한 목차대로 20주만 연재하고 남은 3주에 남은 썰욕구를 다 털어내려고 한다. 서평은 두 달 동안 밀린 것까지 포함해서 꾸준히 올라올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시작 당시 인테리어 소품이긴 했지만 가끔 책 사진을 올렸고, 그때도 미리 사 둔 원서를 활용했다. 심지어 책스타그램은커녕 팬데믹도 예정에 없던 2020년 초에는 파리 가이드북 표지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어느덧 영어공부가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관련된 인증샷을 한 가지 테마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그 테마가 지금의 책스타그램, 그리고 브런치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로 이어졌다.
인스타그램을 오래 했기 때문에 책사진 전문이 아니었을 때도 인스타그래머블한 영어책 인증샷을 촬영할 수 있었다. 엄청 고퀄의 사진은 지금도 불가능하지만(구형 아이폰을 10년째 쓰고 있다.) 팬데믹 초창기에 단톡방에서 근황토크를 하다 인스타그램용 영어책 사진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때 어떤 친구가 '자랑용 사진이네?'라는 반응을 했다. 자랑용 사진이긴 하지만, 실제로 자랑만 하고 못 읽은 책도 많지만 사진과 사진에 등장하는 책을 읽은 나의 마음을 동기화하는데 4년이라는 시간을 쓰고 보니 그때 그 반응도 약간의 자극이 된 것 같다.
그땐 '읽었는데 안 읽었다고 할 수 없잖아?'라고 했다. 이 말의 핵심은 '자랑이 뭐 어때서?'라는 것인데 처음에 자랑이라고 말했던 친구에게 전달이 됐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독서가 친구들, 문우들과 하이개그를 하는 것이 익숙해서 가끔 이불킥을 할지라도 상당히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 돌아보면 참 억울한 시절, 책덕후들 혹은 모범생에 가까웠던 친구들이나 나처럼 개그욕심이 너무 많아서 하이개그만 추구하는 사람들은 2000년대 초까지는 '썰렁하다'는 말을, 2010년대 이후로는 '아재개그'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못 알아듣는 너네가 모자란 걸 왜 모르니? 라고 언젠가 복수할 거다.
이 자유의 맛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책스타그램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많은 책 친구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야? 나만 그래?) 인스타그램 위주의 독서계획은 책표지가 결정적 한수를 제공하는데, 처음부터 책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던 맥락에서 확장되어 지금은 책표지의 색깔이 너무도 중요해져 버렸다.
책을 고르고, 구입하고, 리뷰할 순서를 정하고, 사진을 찍는데 들이는 에너지가 독서 자체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독서 자체가 뇌를 풀가동하는 활동이긴 하나, 책을 펼치면 그다음은 비교적 수월하다. 디너파티의 코스 요리를 위해 재료를 다듬고, 요리와 데코레이션과 흐름에 따라 서빙을 하고 후처리를 하는 것처럼 매끄러운 독서계획과 실행, 표지 사진과 리뷰의 조화 등을 유지하는 것은 가정식백반을 오마카세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작업이다.
인스타그램의 맛을 봤다면, 그 쉴 새 없는 상호비교와 자기바보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내 계정'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데 몰입하게 된다. 이 현상은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무조건 나쁘지도 않다.
알고리즘은 '잘하는 것을 계속, 더 잘하라'라고 한다. 팔로워가 너무 많으면 일단 정신이 없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팔로워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콘텐츠 제작과 업로드는 물론 소통과 뉴비찾기도 계속해야 한다.
예쁜 사진을 올리면 팔로우가 늘어났던 것은 옛말이다. 내 계정의 규모를 유지(가산)하기 위해서 뉴비를 관찰하다 보면 인사이트와 블링크가 생기는데, 그중 하나는 '사진이 너무 예쁘고 정갈할수록 소통력이 떨어지므로 패스하자.'는 결론이다. 결벽증에 가까운 사진실력을 가지고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계정주는 다른 계정을 팔로우하고 구경하거나 왕래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자기 계정을 완벽하게 구성하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하는 성격일 확률이 크다. 아무도 좋아요나 댓글을 하지 않아도 구차하게 먼저 나서지 않는다. 브런치에서 너무 열심히 자기 글만 쓰는 작가들과 비슷하다. (물론 요즘엔 나도 브런치에서 소통을 하지는 못하지만 연재 에세이를 제외한 콘텐츠는 다른 플랫폼이 베이스캠프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여력이 안된다.)
자기 것을 올리기 위해서 아카이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은 본인만큼 사진이 정갈하게 예쁘거나 본인 입맛에 맞는(?) 글을 쓰거나 충분히 유명하지도 않은 나를 팔로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가끔은 그냥 내가 좋아서 선팔하고 맞팔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과 피드 구성의 완벽함에서 결벽증이 느껴진다면, 일단 나는 (대체로 집요하지만) 그 사람보다는 털털하기 때문에 질리고 기가 죽어서 후퇴하고 본다. 요샌 차라리 보기 불편할 정도로 사진을 '막 찍은' 사람이 더 좋다. 이 사람들 눈에는 내 사진이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선팔을 하거나 내 흔적을 남겨서 내 계정을 방문하는지 기다려본다.
영어책을 진짜로 (술술) 읽게 되는 그 뿌듯함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원서를 더 많이 포스팅할 땐 인친들과 왕래가 적었지만, 원서를 장식용이 아닌 독서용으로 포스팅하는 그 자체로 존경을 받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기특하다. 부러움(질투) 유발이 항상 좋은 건 아니지만 정돈해서 보여주는 것도 능력이다.
부럽다고 말만 하고 실천할 생각은 1도 없는 사람들의 배아픔이 드러나는 돌림노래에는 특정인을 특정할 수 없으므로, '부러우면 그냥 하라! 부럽다고 말하지 말고 니가 하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 스피킹 고수가 부럽다. 그러면 내가 스피킹을 더 해야지 뭐. 부럽다는 댓글에 칼을 숨길 시간에 책을 더 읽던지. 낭독은 필수다!)
갓생시즌인 1-3월에는 영어나 운동 관련한 이야기도 해왔는데, 올해는 갓생이벤트를 계획했다가 통편집했다. 갓생 자체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인증 같지 않은 인증을 하고 있다. 대신 피드는 지금 정착하고 있는 [책 + 여행] 시그니처를 유지하되 사진과 글을 미세하게 강화하려고 한다. 연말부터 감기에 시달리느라 12월에 시작한 갓생이 정작 1월에는 크게 무너진 것도 사실이다. 혹한기에 비해 날이 풀리면서 (특히 어제오늘!) 인친들의 접속시간이 조만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벤트 적기는 지났다.
도토리처럼 모아둔 하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난 6개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50%라는 양적 성장을 하는 동안 '반응'한 계정은 300%라는 질적 성장을 했으며 '댓글'만 따로 떼어보면 1000% 혹은 그 이상의 고속, 고퀄 성장을 했다. (인스타그램을 크리에이터 이상의 레벨에서 운영해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므로 관심이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로 문의하기 바란다.) 시기별로 기복이 있긴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실제로 운영한 8년 혹은 공백기를 제외한 6년 동안 받은 하트보다는 준 하트가 더 많은 것이다. 지금의 하트 풍년(?)은 지난한 지난 시절의 결과이므로,
팬데믹 인스타그램 리부트의 성공담과 실패담은 다음 주에 한번 더 얘기해 보자. 질문이 있다면, 단일한 주제(너무 기초, 너무 심화는 패스할 수 있음주의)로 가급적 다음 주 월요일 자정까지 해주시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