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취향 브랜딩
인스타그램 여행계정(본계)에 영어공부 기록을 추가한 이후, 서평단 신청을 통해 국내서로도 콘텐츠 제작을 하게 된 시점(2021년)부터 리뷰어로써 책을 읽고 리뷰어들의 다양한 반응에 귀를 기울인다. 나와 내 책벗들이 작성한, 리뷰에 대한 리뷰도 재미있다. 친해서 또는 예의상 하는 칭찬이라도 한 명의 리뷰로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와 연쇄반응이 독서공동체를 구성하고 이 세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넓이와 깊이를 가진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현시점에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맞물려있고, 이 책들은 특정한 주제를 가졌으며 이 책들을 특히 좋아하는 독자층이 있지만 그 범주를 칼같이 나누는 용어는 없다. 물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존하는 걸작과 앞으로 나타날 혜성 같은 작품에게 그런 기성품 같은 명칭을 주고 싶지 않다. 읽을 책과 쓸 책 모두를 포함하여.
무엇보다도 다양한 독자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 책이든 내가 리뷰한 책이든 많이 팔리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저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를 목표로 독자의 입맛에 맞는 책을 읽거나 쓸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했을 것 같은 작가를 찾아 거듭 읽고 알리는 동시에 그들조차 하지 않은 이야기를 끝없이 찾아낼 것이다. 독자들이 공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할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또는 문학이라는 형식), 너무 지적이라 장벽이 느껴지는 작가의 이미지를 넘어서 그들이 퇴마록이나 해리 포터에 코를 처박아 본 적이 있다면, 나처럼 셜록 홈즈를 주기적으로 읽어야 피부염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이 책을 집어들 수 있게 하고 싶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 시대적 또는 범시대적 억압 요소의 반영, 인간관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담긴 책을 읽고 쓰려고 한다. 그와 같은 책을 엄선해서 앞서 읽거나 뒤늦게 읽고, 재주행 또는 역주행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리뷰어 또는 서평가, 그보다는 그냥 애서가, 책수집가라고 말하지만 (이미 본업으로 성공한 유명인사가 아닌) 일개 책덕후로써 야망이 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지 않는 사람들, 책을 종종 읽지만 독서기록이나 주제별 독서와는 무관한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이고자 하는 사람들, 지적인 페르소나를 가꾸고 싶은 사람들이 약간 주저하게 되는 고지식한(?) 책덕후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다.
한마디로, 책덕후의 끝판왕이 되고 싶다.
몇몇 책의 리뷰와 이 글이 포함된 연재에세이 <독서테라피>에서도 드문드문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내 서재는 내 두뇌가 아닌 외장하드, 또는 말 그대로 참고서 목록 정도라고 봐야 한다. '나'는 내 독서의 총합도 아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작가와 비슷한 그 무엇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책들이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기에 책 고르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진다. 마음으로 끌리는 책과 머리로 계획한 책의 밸런스 찾기.
쾌락독서도 장려한다. 쾌락독서를 통해 취향을 발견해야 장기적인 독서생활이 즐겁다. 의무독서는 권하지 않는다. 억지로 읽고 삶과 연결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낫다. 책과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기 전에 영화나 미드를 섭렵하는 것도 괜찮다. 유명한 시리즈는 거의 다 원작 도서가 있다.
재미있는 책을 가볍지 않게 써내는 스릴러, 판타지 작가들을 존경한다. 연구하고 싶은 작품들을 쌓아놓고 있다. 제한 없이 모든 분야의 좋은 책을 두루두루 읽고 싶다. 영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나서 비소설 읽기에 매료되기도 했다. 하지만 번역서와 오랜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친해진 시점(2022년) 이후로 주력하게 된 분야는 어쩔 수 없이 소설이었다. 그중에서도 20세기, 새로운 국가, 새로운 작가 위주로.
고전 가이드, 책소개책을 통해 여러 번 등장하는 주요 고전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몰아서 읽고 노벨문학상과 부커상 수상자 중 여성작가들을 따로 정리했다. 책스타그램 3년 차인 작년에는 특히 이들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을 예정이었지만 6월에 다녀온 도서전 이후로 한동안 한국작가들에게 빠져 있었다.
여행 크리에이터였던 페르소나는 정신적으로 영원한 해외여행을 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팬데믹 덕분에 미국사람인 척(?)하게 됐다. 한국작가들에게 진심으로 반해서 본격적인 국내서 수집에 돌입했던 작년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적으로 귀국했다. 나만 모르는 99명의 작가 중에서 한 달에 한 명 정도는 새로 사귈 각오를 하고 있다.
그렇게 2024년은 주로 작년에 만난 최애작가들의 작품을 마저 읽고, 미국병 걸리기 전에 좋아했던 한국작가들을 되찾느라 바쁜 와중에 약한 슬럼프가 왔다. 지난달에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내가 최근에 읽은 책과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어느 정도 나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주기적으로 등장시키는 작가와 입 터지게 해주는 창작 부스터는 내가 어떤 결의 이야기에 굶주렸는지 보여준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재미까지 있는 스릴러는 단순 지식전달형 콘텐츠에 진득하게 매달리지 못하는 나의 약점을 보완한다. 비문학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재미없어서' 읽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은 영어로 다져진(?) 마인드 팰리스 덕분이다. 미국병에 걸린 상태로 팬데믹을 맞지 않았다면 바이링구얼이라는 정상을 코 앞에 두고도 돌아섰을지 모른다.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 항상 부러웠다. <밀레니엄>의 살란데르나 <크리미널 마인드>의 스펜서 리드는 말 그대로 '문학적' 인물이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현실적' 암기왕들 사이에서 보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제삼자들이 나 역시 암기왕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불편한 데다, 나도 모르게 내가 나 자신을 비하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학구파는 아니다. 그럼에도 모교 동창이라는 느슨하지만 확고한, 일종의 엘리트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다양한 이유로 열등감에 빠지는 건 흔한 현상이다. (그중 어떤 이들은 나의 무대체질을 부러워할 것이다!) 암기력이 좋은 친구들은 어떤 텍스트를 읽어도 내용을 기억하는 반면, 나는 문맥이 거슬리면 집중력이 가차 없이 무너진다. 단련되지 않은 저자를 믿지 못하고, 개성 없는 문체에 몸서리를 친다.
음악에 대한 허영심이 쪼그라들다 못해 마이너스로 파고드는 중인 현시점에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불협화음에 몸서리를 친다. 연장 탓을 한다. 영어에 자신이 없을 때는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지 못했고, 지금도 번역이 의심스러운 텍스트에는 완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읽는 족족 흡수하고 자기 생각인 것처럼 말하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지금이야 매끄럽지 않은 텍스트 중의 상당수를 거를만한 안목이 생겼고, 번역의 불완전함은 원서나 예상되는 번역 전의 문장의 뉘앙스를 상상해서 그럭저럭 넘어가는데 영어패치가 생기기 전에는 내가 난독증이라고 생각했다. 글의 흐름이 어색하면 읽기의 흐름이 깨져서 전체적인 내용 파악이 힘들었다. 문장마다 걸리적거리는 책이 너무 많아서 다독이 불가능한 사람인 줄 알았다.
다독하는 사람을 질투하고 때로는 증오했다. 읽은 것을 기억해서 어쨌든 지식의 보조 창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지식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자신의 머릿속을 스스로 검색하는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암기력 자체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는데, 그들 또한 이 나이쯤 되면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새로 암기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땐 그랬다. (그게 언제야, 도대체.)
내가 암기를 못한다는 기준이 보통 사람들(?) 기준은 아니다. 나 포함 내 친구 5명 중 2명 이상이 암기왕, 나머지 2명도 나만큼은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꼈던 것이다. 한국어 텍스트를 암기할 때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하지만 그림(분자식)이나 상형문자(한자)는 오히려 내가 텍스트 암기왕보다 빠를 수도 있다. (비주얼 러너라는 용어가 그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언제야, 도대체.)
저렇게 암기를 잘하는 친구들과 성적이 비슷하다니 얼마나 머리가 좋은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성적을 받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의 정도를 터무니없이 낮게 잡았을지도 모른다. 암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노력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얼마나 머리가 좋은 거야. (자꾸 이럴래?)
다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랜덤 책 10000권을 읽은 사람보다 엄선된 책 100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사람이라서, 가끔 숫자에 치인다. 권수에 약해진다. 그럴수록 타협하지 않기로 한다. 그럴수록 더 두꺼운 책을 남기고 얇은 책은 숨긴다. 얇은 책을 여러 권 리뷰할 수 있지만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기로 한다.
나는 10000권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엄선한 1000권을 8년 동안 읽을 것이다. 매년 아무 책 1000권을 읽느니 엄선한 120권만 읽을 것이다. 벌써 숨이 차오른다.
독서가들에게 선택받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되 읽다가 쓰게 된 사람, 어쩌면 날 때부터 서평가인 사람으로 살면서 서평을 전시하고 그로부터 약간의 정체성을 확보한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 선택받을 필요는 있다. 취미와 덕업일치 사이의 계곡(터널?)에서 책벗 이상의 누군가(브랜드)로 기억되어야 한다.
책을 잘 고르고, 잘 골라서 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브랜딩을) 해야 한다.
작가라는 호칭과 그렇게 호명되는 작가에 대한 우대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다. 나 자신이 보다 존경하는 사람은 작가로 불리거나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기보다(이름은 이름일 뿐) 묵묵히 자신의 읽기를 수행하는 진실한 독서가이므로, 나 또한 쓰는 자아보다 읽는 자아에 집중하기로 한다. 잘 읽으면 잘 쓸 수밖에 없다. 염치를 조금 벗으면 잘 쓰는 걸로 얼마든지 잘난 척할 수 있다. 잘난 것 이상으로 잘난 척했던 과거가 있다. 부질없다. (부끄럽다.)
쓰는 자아를 갓 발견하여,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작가들이 과거의 부끄러움을 자극하지만 신경 끄고 싶다. 그 자극에 초연하고 싶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읽는 자아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출간 작가 역시, 아무것도 안하(고 징징 거리)는 것보다 자기 책 홍보라도 하는 사람이 낫지만, 그보다는 성장하는 모습, 특히 동료 작가와 선후배 작가, 해외 작가를 두루두루 찾아서 먼저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존경스럽다. 꼭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읽는 책보다 얼굴 사진이나 사소해도 너무 사소한 일상 기록을 전시하고 '작가'라는 부름에 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책'이 아닌, 모두의 책을 성실하게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로 독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어야 할지 자문해 본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소셜미디어를 활용 여부는 개인의 선택, 개인의 취향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일명 '떡상'을 책탑으로 했고 그 후로 반응도가 좋은 게시물은 책표지나 책탑 사진이었다. 반면 노출이 잘 되는 게시물은 거의 항상 전신이 포함된 풍경사진이었다. 장기적으로 노출이 잘 되는 게시물의 비중을 높여서 타깃의 범위를 넓히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여행 크리에이터 출신의 여행작가라면 전신이나 얼굴이 포함된 풍경사진과 여행의 순간들로 채워도 좋다. 내 경우 썰욕구가 터진 시점에 여행에세이를 쓰긴 했어도(2022년 5월) 이미 책덕후 본캐가 깨어나서(2022년 3월) 거의 모든 책을 읽고 리뷰하고 싶었고, 거의 모든 글을 쓰고 싶었다.
브런치 작가지원을 할 때 기획한 미국 3부작은 미드 리뷰와 미국 주요 미술관에 걸린 화가들에 대한 미술에세이로 이어졌고 이 기획을 진행하는 동안 인스타그램 공략서, 자아성찰 에세이 등 자기계발과 에세이 사이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좀 산만해졌다. 한동안 맥시멀리스트였다. 모든 콘텐츠에 적절한 관심을 주는 게 쉽지 않았다. 브런치북 공모전을 앞두고 대부분의 에세이를 조기종영했다.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다. 당분간(특히 2024년에는) 소설과 서평만 쓰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미술에세이까지 휴면에 들어갔다. 이제 남은 건 연재에세이 <독서테라피> 뿐이다.
오늘이 지나면 <독서테라피>는 두 편이 남게 된다. 나름의 돌파구였지만 챌린지이기도 했고, 정해진 날짜에 발행하느라 꽤 스트레스받기도 했다. 연말연시의 갓생모드가 설날 이후로 급속하게 깨지고 있는데 2주 후 연재를 마치고 나면 진짜 번아웃이 올까 봐 걱정된다. 당분간은 좀 느슨해져보려고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인정욕구가 강하다. 이 현상은 예체능계에서 많이 본 것 같다. 어디에서든 항상 이방인이어야 하는 영원한 방랑자라면 어느 분야에서든 인정욕구를 해소하기 어렵다. 조금 단순하게 사진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한정해 보면, 셀카를 올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을 때 인정욕구가 급속충전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인물사진작가 또는 모델, 배우의 계정이 아닐 경우 얼굴사진, 특히 얼빡사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인스타 공략집 <셀럽의 조건>은 기획 단계에서 프리랜서 창작자 전반을 타깃으로 했지만 집필하는 동안 글쓰기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타깃 역시 글작가 위주로 좁혀졌다. 창작자 일반으로 확장해도 마찬가지겠지만 글작가 또는 서평가, 독서계정의 경우 얼굴이 아예 없는 건 괜찮은데 얼굴이 일정비율 이상이면 역효과가 난다. 책표지와 함께 실린 책 속의 문장이나 책이 소환한 이야기 또는 책 관련 소품이 아닌, 본인 얼굴 자랑하는 계정으로 보여서 좋을 것이 없다는 의미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얼공25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얼굴공개는 전체 피드의 25% 이하로 제한하라는 의미다.
책 사진과 독서 관련 콘텐츠, 서평을 비롯해 자신의 생각이 드러난 (단순 인용 이상의) 글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얼굴 공개를 하면 호감이 생기지만 사진이나 쇼츠 위주로 제작하면서 얼굴이 지나치게 자주 보이면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내 인스타 계정은 최근에 책표지와 얼굴의 반응한 계정의 수가 비슷해졌다. (노출 수는 배경에 따라 다르지만 얼굴이 좀 더 높다. 따라서 반응도는 책표지가 더 높은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하면 그동안 서평을 점점 자주 올리고 얼굴은 상당히 자제했기 때문에 밸런스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얼굴과 전신을 더 자주 올려서 더 많이 노출되고 그에 따라 팔로우가 더 많아지는, 가지 않은 길이 있다고 치자. 그랬을 경우 내가 어필하고 싶은 타깃이나, 상호교류가 유쾌한 팔로워가 아닌 그저 내 외모를 예쁘게 봐주는 팔로워로 가득 차서 옥석을 가리기 힘든 팬(?)들을 상대로 계속 감정노동을 하면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외모 사진을 올려야 계정의 규모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전체적으로 반응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줄지 않은 파워계정들도 있고, 나의 계정은 같은 기간에 오히려 늘었다. 자랑 맞음.) 얼굴 사진으로 도배된 어느 '작가'님의 계정에 반응한 계정들을 관찰해 보니 대부분 본인의 콘텐츠가 외모 위주인 이성의 계정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 중 그 누구도 그 작가님의 책을 진지하게 읽거나 리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스타와 실제 책 유통이 긴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팔로워가 책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팔로워가 많기 때문에 책은 책대로 팔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규모가 작더라도 찐팬 200명이 댓글 응원하고, 책 리뷰를 알아서 해주는 그런 작가들의 포텐이 훨씬 크다. 그런 작가님들도 있다. 그들은 나의 긍정적 연구대상, 참고자료로 기능한다. 물론 그 밖에도 좋은 사례, 나쁜 사례가 많다.
인스타를 마르고 닳도록 연구했고 그러는 동안 블로그와 브런치 등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을 두루 섭렵했는데, 공통적으로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액션플랜은 두 가지다. 포스팅(발행)과 소통(좋아요, 댓글, 팔로우)이다. 특히 포스팅 자체를 한동안은 매일 또는 주 4회 이상 해야 한다. 일단 뭐 볼 게 있어야 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일단 포스팅을 쌓아두고 모객을 하던 광고를 하던 잘난 척을 해야 한다.
실제로 장기간 꾸준히 포스팅을 하는 계정은 많지 않다. 그것도 3일 이내의 주기로 고퀄의 포스팅을 하는 계정은 손에 꼽는다. 이걸 할 수 있으면 팔로워가 어마무시할 필요도 없다. 이걸 할 수 있는 사람 중에 팔로워를 모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더라. 반대로 너무 자주 게시해서 망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계정들은 하루에 서너 번씩, 두 시간에 한 번씩, 또는 연속으로 여러 번 포스팅을 하는데 그럼에도 반응이 좋은 경우는 아주 드물고, 그마저도 반응한 계정들이 타깃은 아니었다. 즉, 작가 계정이 쉴 새 없이 포스팅을 하는데 반응한 사람들은 찐팬도 아니고 독서가들도 아니었던 것. (랜덤 계정, 혹은 구매?)
소통은 화룡점정이다. 사진과 글에 나의 개성을 충분히 녹여냈다면 이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녹아들어야 하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좋아요를 치밀하게 많이 주고 많이 받는 것도 장기적으로 빛을 발하는 전략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댓글이 떡상하는 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인친들과 오랫동안 소통을 누적하기도 했지만, 새로 친해진 인친들 덕분에 좀 더 자신감이 붙어서 좋아요만 했던 인친들과 차츰 댓글 소통을 늘려갔고 이제는 댓글을 선호하는 상당수의 인친들과 서로 댓글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관심 있는 책이나 사진이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아무데나 아무말을 할 수는 없으니.) 나도 망설이다 돌아선 적이 있고, 이때다 싶어서 재빨리 댓글을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인친들도 내 게시물이 보다 친근할 때는 좀 더 용기 내어 댓글을 한 것 같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인스타 초창기에는 매출과 연결되지 않아도 그저 팔로워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단순했다.) 지금은 이왕이면 소통을 하는 팔로워가 많아지길 바라고, 양질의 소통으로 인해 계정이 '살아 움직이길' 바란다.
이 역동성은 매출(어차피 지금은 팔 제품이나 '책'이 없다.)을 떠나 나를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된다.
사적인 독서의 성실한 기록을 응원한다. 추미스 등 장르가 취향이거나 랜덤 베셀, 랜덤 에세이 베셀 등 다소 밋밋한 취향이더라도 기록 자체는 무기록보다 장려한다. 하지만 장르와 주제, 특히 다양한 시공간적 배경과 작가의 출신 국가가 크로스오버되는 독서목록에서 비로소 진정한 개성이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이 사람이 탐구하는 세계가 어떤 모양인지 그려진다면 독서목록만으로도 브랜딩이 된다.
부커상, 윈덤캠벨문학상 중심의 동시대 거장들의 서평모음과 원서를 포함한 해외 고전 서평모음을 거쳐 세 번째 서평모음 브런치북을 엮으면서 비로소 내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웃사이더.
세 번째 서평모음 <정체성을 탐구하는 심화독서>에 수록된 서평들이 탐구하는 주요 정체성은 아웃사이더, 혹은 아웃사이더 작가,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체성에 자신을 끼워맞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굽은 길을 걷는.
-방랑자.
세 번째 서평 브런치북 이후로 매거진에 수록되었거나 수록될 예정인 서평들의 주요 탐구주제 역시 비슷하면서 조금 확장된 버전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에 리뷰한 책에는 종종 쉴 새 없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나 아예 정착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 캐릭터를 일부러 고른 적도 있지만 우연히 읽고 인생책이 되었던 작품들의 주인공이 거의 다 아웃사이더에 방랑자, 이방인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고전 서평모음 브런치북에 수록되어 있다.)
여행스타그래머에서 출발한 여행에세이 리뷰어, 도서 크리에이터의 취향이 방랑자라니, 페르소나와도 일치한다. 소설의 배경 혹은 맥거핀으로 여행사진이 등장해도 브랜딩의 밀도가 올라간다. 책으로 도배하는 계정을 리스펙트 하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모두 '책만 읽는 사람'은 아닌 데다, '책표지만 올리는 사람들'에 친구목록을 한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그래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No way!)
독서가, 애서가로서 책피드가 반갑긴 하지만 사진만 봐도 주인이 짐작되는 시그니처(너무 원초적인 표시나 표식은 솔직히 유치하다.)가 있거나 리뷰에 탁월한 개성이 묻어나거나, 책 사진을 약간 벗어나되 본인의 캐릭터와 상통하는 산책 같은 루틴을 더 환영한다. (개취지만 '인증'은 정말정말 지루하다!) 유행과 내 오랜 숙원과 지인들의 요청으로 인스타 브랜딩에 대한 카드뉴스도 만들어봤다.
여행 사진 중에서 끝없이 쌓여있는 미술관 리뷰도 오랫동안 해왔지만 일시적, 장기적으로 휴면하고 있다. 콘텐츠 방랑기에 독서 계정들과 멀어졌던 관계를 응집하고 싶었다. 이미 독서 그 자체만으로도 다루어야 할 주제가 방대해서 다른 분야까지 탐구할 에너지가 부족했다.
올해는 '소설 읽기와 소설 쓰기'가 지상과제다.
소셜미디어 공략법, 브랜딩, 독서법, 썰욕구들을 통합하는 콘텐츠가 지금 쓰고 있는 <독서테라피>인데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연재 당일 오전까지는 쓰기싫어증 상태에 빠져있다가 막상 쓰기 시작하면 무아지경이 된다. 짧고 뜨거웠던 번아웃이 이제는 짧지도 않다. 블로그 번아웃과 쓰기싫어증의 악몽이 떠오르려고 한다. 이번에는 끝이 정해져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이미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정신이 혼미하다.) 최근 며칠 동안 현실도피를 하느라 오랜만에(?) 글을 써서 안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엄청난 책들만 읽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막상 어마무시한 책으로 도배된 계정을 보고 있으면 그 확고한 취향에 약간 질리기도 하고(진정 학구파일세!) 한편으로는 정말 이 사람은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겠구나, 또는 과시욕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다시 태어나면 더 빨리 외모자신감을 채우고 더 오래 춤을 춰야지. 그 욕구를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면. 이번 생은, 아직 정착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어쨌든 본캐가 책덕후라는 확신(?)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책 리뷰 외에도 포괄적인 문화생활이나 여행, 데일리 루틴(주로 스토리)과 일상 TMI(주로 댓글?)등이 나의 페르소나를 형성하는데, 적절한 얼굴공개는 이런 나에게 친근감을 크게 한 스푼 추가한다. 내적 친밀감이 높은 인친들 대부분이 책 피드와 일상 스토리, 과하지 않은 얼굴 공개를 (안 하기도 하지만) 하고 있다. 서로 비슷해지는 경향도 없지 않다.
독서목록 자체가 브랜딩이 되긴 하지만 얼굴 없는 독서가라면 여행사진이나 적어도 서재(혹은 카페) 인테리어 정도는 가미되어야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람냄새가 나는 사진.
그보다는 독서목록에 더해, 수집한 책의 주인이 어디까지나 계정주임을 부르짖는(?) 내 모습이 적당히 노출된 계정이 장기적으로는 미니 도서관보다는 그냥 '나라는 인간'으로 남아서 향후에 책이 빠지고 다른 것이 들어와 채우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계정 하나로 영속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여러 분야를 본의 아니게 투어하고 일시적으로 책에 정착했다. 나는 분야를 바꾸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라데이션해서 티 나지 않게 교체하고, 팔로워도 (바뀌겠지만) 어느 정도는 유지할 자신이 있다. 이미 해봤으니까.
오래오래 내 콘텐츠로 사랑받고 싶다면, 책보다 내가 주연이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