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작가지망생 L씨와 40대 작가지망생 K씨
좋았다, 훌륭했다는 표현은 다른 독자와의 교감을 이끌어낸다. '책'이라는 유형의 상품 또는 '글'이라는 무형의 창작물에 할 수 있는 반응은 다양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취향으로 호불호를 표현하는 '리뷰'는 소비자의 권리이면서 지나치면 갑질이 될 수 있다. 솔직리뷰라 해도 광고나 협찬서라면 최소한의 쿠션을 장착할 필요가 있다. 대신 그만큼 신뢰도를 잃을 수도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에 '책' 리뷰만 100여 편을 쓰면서 나만의 가이드라인도 생겼다. 도서의 구성으로 취향을 표현하되 개별 도서에 '불호' 표현을 안 하기로 했다. 불호인 책까지 리뷰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으므로.
책 또는 글의 예술적이거나 실용적인 가치를 포함시켜야 하는 '서평'은 작성자의 '자격'을 신뢰해야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리뷰보다는 덜 개인적이되 그럼에도 개인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서평을 쓰려면 브랜딩을 해야 한다. 단순기록이라 해도 공개계정으로 게시하고 해시태그 등 검색어를 사용한다면 그 서평을 저자가 직접 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서평가는 리뷰어도 아니고 저자도 아니지만 리뷰어인 동시에 저자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저자와 다른 독자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은 서평을 곁들인 독서에세이를 쓴다. 리뷰어가 많아지고 그 안에서 차별화, 브랜딩을 시도하거나 틀에 박힌 독후감보다 자신의 생각을 쓰고 싶은 썰욕구가 있는 사람들, 혹은 독서기록 자체에 별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되 기록 자체에는 성실한 작가들이 주로 이 방법을 쓰는 것 같다.
이전 챕터에서 언급했듯이, 내 서평은 1) 핵심 인용문(또는 해설, 추천사)- 2)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된 과정- 3) 내용과 관련하여 읽는 동안, 읽고 난 후의 생각- 4) 추가 인용문 -5) 나의 100자평 혹은 더 하고 싶은 말로 구성된다. 영원하지 않겠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일시적으로 정착된 양식이다. 특히 3)에 해당하는 부분에 미니 픽션을 작성한 적도 있다.
내가 읽은 책(주로 픽션)을 칭찬하거나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돌림노래처럼 나만의 픽션을 창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기존에 쓰던 글에서 확장된 자기계발서와 자아성찰 에세이가 만났고, 치밀하지 않게 내면의 옹이들을 건드려보다가 그 통합된 흐름이 픽션이라는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이야기에 다시 한번 합류한다. 화자는 논픽션과 다른 페르소나로 분리되고, 평행우주를 회상하는 또 다른 페르소나로 분리되고, 마침내 3인칭으로 독립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열심히 썼어야 했던 생계형 서평가 시절이 있었다. (이전 챕터 참고) 독후감 대회 상금을 차곡차곡 모으던 그 아이는 영어, 수학 성적 때문에 크게 좌절했던 대학교 과정을 서평으로 정면돌파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02년 이전에 소설을 써본 기억은 한참 전(1998년쯤)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뒷이야기를 이어 썼던 학교 숙제 외에는 전무했다. 초등학교 때는 필사, 독후감, 시, 논술을 썼고 쓰면 100% 확률로 상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과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건 책을 읽으면 되니까.
어린 시절부터 사극을 꼬박꼬박 챙겨봤지만 영화보다는 책을 좋아해서 같은 영화를 수십 번씩 다시 보는 친구들이나 동생의 심리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만화책을 포함한 쾌락독서로 독서테라피를 해야만 하는 시기가 왔고 그마저도 안 통하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많이 봤다. 서울여성영화제 심야상영을 2년마다 봤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썼다. 이 모든 아카이빙의 시초였던 싸이월드 영화폴더에 스틸컷 100자평을 썼다. (인스타 서평과 아주 흡사하다.)
같은 영화를 7번 이상 봤는데, 목적이 확실했다. 이 영화의 컷과 씬을 분석해서 시나리오의 형식과 요소를 탑재한 뒤 나만의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그 시나리오는 완성하지 못했으나 그 분석은 큰 공부가 됐다. 영화 관련 수업은 공연이나 문학 수업보다 학점도 잘 나왔다. 비주얼 러너의 포텐이 터진 것일지도 몰랐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여러 동아리의 공연이 올라가는 축제 메인 무대의 사회를 봤다. 연극 동아리 제작진으로 초빙되어 의상, 무대미술, 분장을 했다. 원작 영화가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관찰하고 매 회차가 같은 듯 다르게 재현되는 연극의 매력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
예술 관련 교양 수업을 거의 다 수료해 버려서 마지막 학기에는 소설, 희곡 수업을 들었다. 그때 로알드 달의 소설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감상했는데 리뷰 파일을 서버에 저장하지 않고 USB에 대충 넣어두었다 잃어버렸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입사지원서도 여럿 날려먹었던, 혹은 광탈했던 그 학기에 첫 단편 소설을 썼다.
단골 카페에서 검정 노트에 검정 볼펜으로 7시간을 들여서 썼는데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최근 여기저기 들쑤시다 원본 노트도 발견했고 원본 파일도 발견했다. 이불킥을 하지 않기 위해 노트는 펼치지 않았다. 파일은 어차피 뷰어가 없어서 열 수 없다. 글자수가 궁금하지만 글자수를 보기 위해 한글 뷰어를 구입하기는 귀찮고, 그렇다고 그 소설을 퇴고하고 싶지는 않다.
취업에 실패하고 취업재수 대신 뮤지컬 배우 트레이닝을 하다 살사에 빠져서 연기, 보컬 수업은 방치했다. 약 5년 동안 대부분의 에너지를 춤추는데 썼고, 졸업 2년 차부터는 직장 또는 다른 교육과정을 병행했다. (회사원이자 활동가로 일하면서 사업을 했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경력직으로 고속 승진 하다가 조기은퇴했다.) 졸업 4년 차인 2010년, 중고생 과외와 살사 수업으로 일정을 채웠고 그 해 연말에 잠깐 국민 평균소득을 넘은 적도 있었다. 29세가 된 새해에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과외를 하다가 학생들을 통해 소설을 다시 읽게 됐고 교재와 신간 소설을 구경하러 수시로 서점을 방문했다.
치밀한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읽던 와중에 어쨌든 인생책을 만났다. 읽고 쓰는 행위를 포기할 수 없음을 감지했다. 스물다섯부터 스물아홉까지 관찰했던 '30대'라는 주제로 장편소설을 기획했는데 정작 글을 써야 하는 그 해에 가장 바쁘고 개인사로 힘들었다. 장편은 완성하지 못했고, 연예기획사 스타일리스트 입사지원서를 '또' 날려먹었다. (입사지원서는 마감일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연말에 기존 활동을 다 정리하고 수능 다음 날처럼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서 30대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성적표의 반전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먹고살 길을 찾아 헤맬 준비를 해야 했다.
잊고 있었다. 소설을 써 봤다는 경험은 어딘가에 계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생계형 글쓰기는 썰욕구를 누르고 기분전환을 추구했다. 무슨 정신으로 썼는지 아득하다. 결과적으로 결과가 없는 영재교육 교재개발자 트레이닝은 십 년 전의 내가 다시 예체능에 집착하게끔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소속의 욕구가 있어서 취업을 했으나 약속된 급여를 받지 못했고 그 조건에서 최대 능력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기회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버틴 결과로 추가적인 기회를 가져서 단행본 교재가 출판됐지만 인세는 없다.
알바 경력은 누적되었지만 다른 경력은 굳이 불리고 싶지도 않았다. 소규모 창업을 하고 '또' 조기은퇴를 했다. 30대의 목표였던 1) 미국여행은 계획보다 2년 일찍 다녀왔고, 리마인드를 포함한 전국일주를 한 번 더 다녀왔으며, 2) 영어로 읽고 쓰기를 간헐적으로 트레이닝한 결과 팬데믹 선언 3개월 차에 눈트임을 하고 이후 약 3년에 걸쳐 30권의 영어책을 읽었다. 영어책에서 여행책, 영어권 소설과 판타지 등으로 확장된 독서목록은 책덕후인 본캐를 끊임없이 소환하여 팬데믹과 시너지(?)를 일으켰다.
팬데믹 3년 차에 인스타그램 1차 떡상, 여행에세이 입터짐 후 브런치 공모전까지 달려오면서 댄서로 복귀했고 다음 해인 2023년에는 만 40세 생일을 기념하여 틈만 나면 셀프선물로 책을 사재기했다. 읽고 싶은 책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책을 구입할 예산, 책 수납공간, 읽을 시간과 에너지 등의 한계가 있어서 원하는 책을 쓸어 담은 후에도 수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십 대 후반에 충동구매한 책을 이사할 때마다 아낌없이 처분했고 어떤 책이 결국 버려지는지 미리보기했다.
서평을 너무 길게 쓰다가 서평 못쓰는 병에 걸렸다가 진짜 코로나에 감염된 후 그 병이 나아서 체계적인 서평가로 재탄생한 재작년, 여행에세이 입터짐을 완성한 책은 권호영 작가의 <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이었고, 자아성찰 에세이 입터짐을 완성한 책은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였다.
작년에는 현생친구 포함 인스타 친구들과 약속한 인스타 공략집 <셀럽의 조건>과 웹소설을 쓰면서 엘레나 페란테와 비비언 고닉, 이서수 등을 알게 되어 날것의 회고록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브런치에만 랜덤 게시하던 에세이를 4회까지 쓰고(지우기 아깝지만 굳이 홍보를 하지도 않는 사생아 같은 글이다. 대신 이 글을 썼기 때문에 친해진 작가님도 있다.) 소설로 전향했다. 브런치에만 휘리릭 써버린 두 번째 단편소설은 작년 9월 말에 탈고했다. (미완성 장편과 웹소설, 미니픽션 제외)
단편소설 입터짐을 완성한 책은 박연준의 <여름과 루비>였다. 실험작인 두 편을 제외한 세 번째 소설부터 5개월 동안 총 다섯 편을 완성했다. 실험작 포함 단편만 일곱 편, 곧 여덟 편(한 권)이 된다.
소설 못 쓰는 병은 아니다. 12월에 시작한 갓생은 많이 쓰기 위해서라도 많이 읽고, 농축된 서평을 쓰는 활동이 중심이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완독평을 쓴 날짜를 10년 다이어리에 기록해 보니 이번 겨울의 완독주기가 가장 치밀했다. 2022년 봄에 영어독서가 피크였지만 바로 그 이유로 전체 권수나 페이지수는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다. 2024년 1월과 2월에는 매주 1000페이지 이상을 읽었고 (영어는 설렁설렁 읽는 중) 두꺼운 책일수록 반드시 완독평을 쓰려고 했다. 틈틈이 얇은 책을 '몰래' 읽으려고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갓생을 위한다기보다는 무기력증을 해소하고 체력을 보충하려고 운동을 포함한 루틴을 재정비했는데 그럼에도 독서와 독후활동에 대한 의지를 지켜내느라 설날 이후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독서목표조차 가능한 독서량의 120% 이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설날 무렵에 읽으려던 책은 이미 3월로 넘어왔는데 당분간은 심호흡을 하고 사방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연재 완결을 앞두고 번아웃 예방 차원에서 자유시간을 누렸다. 셀프마감에 여유를 두고 쉬는 날에는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거나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밤의 얼굴들>과 <파묘>의 통합리뷰가 대기 중이며, 피츠제럴드 책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드라마 시즌 3 중반부를 보고 있다. 내가 세운 독서계획이 너무 타이트하거나 갑자기 납득이 안 될 때는 책장 정리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 연초에 한번 뒤집어엎었다가 완독 리뷰를 게시할 때마다 조금씩 정리하거나 그냥 책을 쌓은 순서만 바꾼다. 지금은 약간 마음을 비우고 있다.
지난달부터 분노의 타이핑(?)을 하려고 작정하고 비공개 장편을 준비했는데 4천 자밖에 못썼다. 그러다 책만 겨우겨우 읽고 루틴은 무너지고 체력이 떨어져서 정신적으로 방황했다. 자책도 많이 했다. 자책 단골멘트는 10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돈을 벌던지, 글을 쓰던지.
글이 나오지 않는 예술가적(?) 고뇌는 아니다. 책도 읽고 리뷰도 쓰고 스레드도 하고, 심지어 안 하던 브런치 버전 리뷰 업로드까지 하고 있다. 다만 공개 즉시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인스타-스레드-브런치와 다르게 적어도 완성하기 전에는 비공개로 작성하려고 작정한 글의 경우 피드백이나 좋아요와 같은 보상이 없기 때문에 어중간한 멘탈로는 자리 잡고 앉는 것도 힘들다.
완독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읽던 책들 괜찮고, 리뷰도 잘 쓰고 싶은데 그 주기를 늘어지지 않게 유지하려면 꽤 열심히 읽고 농축하고 쉬는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딴짓도 해야 한다. 통으로 시간이 날 때도 있지만 원하는 날짜에 완독을 못하면 그날과 그다음 날까지 리뷰에 먹힌다. 탈고하고 방치한 살림공간 리셋하고 알바까지 하고 나면 이미 다음 리뷰 마감일이 지나있다. 이런 식이다.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데 동기부여는 쉽지 않다. 불면증이 눌러앉았다.
어제는 귀찮아서 새벽까지 식사를 제대로 안 했는데 그나마 아침을 해 먹고 숙면을 취했다. 문자와 전화, 재난문자가 계속 깨워대서 다시 잠들지 못하고 몽상 속에서 픽션을 쓰다가 털고 일어나서 갑자기 4천 자를 썼다. 작정하고 한 달 동안 쓴 분량과 자다 깨서 충동적으로 쓴 분량이 비슷했다.
이 분량은 새로 시작하려고 해도 갈아엎어야 하고 기존의 장편에 끼워 넣으려고 해도 한참 대기해야 하지만 어쨌든 슬럼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났다. 연재 완결 후 번아웃은 인스타 접속 오류라는 뜻밖의 상황이 해결할지도 모른다. 조금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한참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인스타 활동 제한 경고에 이어 로그인 오류가 발생해서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어차피 급한 업무는 이 글을 쓰는 것이니 차라리 잘 된 것이다.
이제 퇴고하고 업로드하고 집에 가서 자면 된다. 자기 전에 아침을 먹겠지만 그다음에는 자거나 빈둥거릴 수 있다. 연재 마지막 날까지 동동거리지 않아도 된다. 이만하면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비공개 상태지만 새해 목표도 거의 달성했다. (목표 자체가 '완전히' 달성해야 의미가 있지만 그럼에도 '거의' 달성했다.) 겨우 두 달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그러하다. 대체 두 달 동안 무슨 짓을 한 거야.
남은 10개월 동안 무엇을 할지, 킵고잉을 할지 무브온을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글쓰기에 집중할 기력을 쥐어짜지 못하는 스스로를 구박하지 않으려면 하루 정도 생각 없이 쉬고, 잠이 안 오면 잠이 올 때까지 (인스타가 아닌!) 산책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잔 뒤 요가를 하고 식욕을 되찾아야 한다.
차라리 글을 쓰고 말지.
그러다 이렇게 됐다. 쓰고 있을 때 무적의 과몰입을 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면 탈진한다. 폰을 들고 멍때리거나 뒹굴거리는 좀비가 된다. 그래서 차라리 글을 좀 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쓰기 싫은 척(?)하다가 막상 키보드 연결하면 진공상태에 빠져버리는 악마의 연재고리.
이제 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