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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y 03. 2024

자꾸 생각나는 걸 어떡해

단편소설 <겨울의 책방산책>

주말에 공연하는 형들을 보러 오는 팬들은 석류를 귀여워하면서도 귀찮아했다. 그들은 막내 이모보다 조금  젊었지만 누나보다는 훨씬 연상이었다. 사실 귀찮은 쪽은 석류였다. 밑반찬 리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중산층 어머님들은 석류가  시간 마다 물병을 새로 가져다 줘도 냅킨이나 티스푼을 계속 요청하면서 재주문은 하지 않는다. 만수르 세트( 없지만) 고객도 아니면서, 바라는  많다.


표고와 지우가 나타났을  어김없이  언니들의 레이저가 따라붙었다. 표고와 지우도 마흔을 앞두고 있었지만 언니들의 눈에는 너무 어려보여서 탐색은  시들해졌다. 형들은 젊은 여성 관객에게  보이고 싶어했으나 표고와 지우는 석류만 달달 볶았다. 예의상 공연 중에만 무대를 보는  했을 뿐이다. 표고가  번째로 방문했을때 보컬 형님이 명함을 건넸지만 돌아온 것은 다음 전시 브로셔였다. 약력은 있되, 연락처는 없는. 그후 표고팀과 공연팀의 개인적 접촉은 전무했다. 심지어  사교적 순간에도 지우는 석류의 뒤통수를 보면서 혼자 웃고 있었다.




누나들의 등장  모두가 석류를 다시 보게 된다. 우선 다른 단골 고객들이 석류를 필요 이상으로 부려먹지 못하게 된다. 석류가 바쁘기도 했고,  사이 트레이닝을 마친 신입 알바생이 재빠르게 달려오기도 했고, 어쩌다 석류가 자잘한 심부름을 처리해주면 감시카메라처럼 지우의  눈이 문제의 고객을 주시한다. 눈동자는 석류가 아닌, 석류를 '굴리는'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시선이 마주치면 얼음 같은 얼굴의 입꼬리만 살짝 올린다. 그들은 레이저를 맞고 점점 석류나 다른 직원을 부르지 않게 된다.


관심과 주목의 주요 대상이었던 출연진 형들은 인테리어나 그저 믿음직한 동생으로 생각했던 석류를 향한 (여인들의) 신경전을 목격하고 조용히 그에게 주목했다. 표고에게 접근했다가 대차게 까인 보컬 형님은 한동안 석류를 주시했둘이 친남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표고에게 남자로 인정받고 싶은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쩐지 석류에게 괜찮은 형이 되어야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그가 석류를 가족이라도 된다는 듯 챙기니까 다른 공연자들도 대하는  달라졌다.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니, 그제야 석류의 매력에 위축되는 이들도 있었다.  달에   무대에 오르는 첼리스트 누나는 석류를 키오스크처럼 생각했는데 공연자들의 태도에 금방 전염됐다. 그녀는 석류가 자신을 챙겨주는 것이 대단한 영광인 것처럼 반응했고 대기실에는 기묘한 공기가 흘러넘쳤다.


알바생들 석류를 믿음직한 캡틴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새로  아이들은 이제 아기 오리처럼 그의 애정을 갈구했다. 석류의 핵심적인 업무 능력을 복붙하는 아이도 있었고, 매번 석류에게 확인하고 칭찬해줄 때까지 계속 질문하는 아이도 있었다. 변화는 점진적이었다. 석류는 묘하게 한가해진  같으면서도 정신적으로 바빠진 것을 느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표고가 거의 사라지고 지우만 남게 되었을 무렵, 석류 자신에게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오히려 관심과 사랑이었다.


고객으로써, 또는 직원 사이의 상하관계에서 친절과 복종을 요구하는 것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을 엄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요구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있지만, 후자의 경우 요구 당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있다. 주말에만 어쩌다 들르는 사장은 점점 석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설정한 판이기에 밀착케어하지 않아도 변화 감지할  있었다. 그는 석류를 신뢰하지만 바로  이유로 석류가  곳에 천년만년 머물지 않을 것을 안다. 석류의 폭풍성장은 적색경보다.




문제의 장본인인 지우는 석류의 난처함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내적 고뇌로 터질  같은 자신의 심장과 대치하느라 바빴. 지우가 화실에 틀어박혀도 달라진 흐름은 석류를 부각시켰다. 석류는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원하지 않던 관심을 받게 되니 몸은 편해도 마음이 피곤해졌다. 정신적으로 부대낄 때면 막연히 지우가 생각났다. 그녀가 그의 포텐을 깨워줬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실시간 존재가 모든 시련을 감수할만한 것으로 만들어줬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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