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사하기 전, 정릉천 바로 앞에 살았다. 전철역까지 3분, 정릉천까지 30초. 심지어 집과 정릉천 사이에 카페도 생겼다. 그러나 그 카페는 한 번도 가지 않았고, 그 경로를 통해 정릉천으로 내려간 적은 딱 한 번 뿐이다. 오히려 반대쪽 성북천 방향으로 가다가 (성북천이 아닌) 일반 도로를 통해 청계천으로 내려간 뒤, 그곳에서부터 산책을 했던 적은 몇 번 있다.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청계천을 걸어서 종로까지 갔다.
이사한 집은 물보다 산이 가깝다. 전철역까지 7분, 등산로 입구까지 3분. 아직 등산은 시늉만 내고 있다. 작년 늦여름에는 벌레가 많아서, 올 늦봄에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입구만 기웃기웃하다가 살랑살랑 내려왔다. 물론 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는 일부러 경사가 낮은 우이령길을 이용하느라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그 전에 우이천을 발견했다. 우이천과 우이천에서 바라보는 북한산뷰, 그리고 우이천에 살고 있는 오리들을 거의 동시에 발견했다.
어스름에 발견한 나만의 오리 연못(연못도 아니고, 나만의 정원은 더욱 아니지만 일요일 저녁 또는 평일 낮에는 유난히 고즈넉한 지점이 있다.)에 반해놓고도 자주 찾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둘리(와 그 친구들의) 동상을 발견했고, 어느 날에는 음악 분수(물이 나올 땐 음악도 나온다!) 어느 날에는 이 근처 맛집을 찾아내겠다며 혼술을 했고, 그러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서 발길을 끊었다. 그럼에도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2023년(벌써 전생같다.)에는 12월에 가장 많이 걸었다.
올해는 운동과 밥벌이와 아직은 터널을 달리고 있는 덕업일치 코스를 나름 조화롭게 상호보완 시키겠다며, 글을 쓰기 위해 아침 운동을 예약하고 울면서 산책하고 방전될때까지 글을 쓰고 정신을 되찾기 위해 산책을 하거나 방전될때까지 돈을 벌고 정신을 되찾을 겸 집에 돌아오기 위해 산책을 한다.
이거 한 문장인거 실화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