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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Jul 17. 2024

신체를 초과하는 영혼 산책

산책덕후의 책수집 기록 2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현대판 샤먼 무아경과 영적 여행을 통해 이계(異界)에서 뭔가를 건져내게 될지도 모르죠. 그 뭔가가 설명서는 아닐 겁니다. 설명서 같은 건 없어요. 그보다는 부적에 가까울 겁니다.



문학과 환경(마거릿 애트우드), <타오르는 질문들>




아, 책무당벌레는 내가 아니라 유진이구나-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유진이 마지막으로 빌려준 책은 김멜라의 단편이 수록된 미니북이었다. 김혜순 시인이 수상한 직후에 바로 유진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으나 오래 간직했으므로 표지가 마음의 도서관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김혜순 시인에게 기시감을 느꼈을지도? 서촌 책방투어에서 2008년에 출판된 그때 그 시집을 발견했을 때 깨달았다. 유진이 5개월 전에 빌려준 책의 저자와 유진이 12년 전에 사준 책의 저자가 비슷한 시기에 수상을 했다는 사실이 전율을 일으켰다.


책에 관한 예감은 유진의 영향권에서 발달한걸까?




심지어 서른 살의 유진이 책과 함께 건네준 엽서는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X>였지않나. <마담X>가 있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두 번 다녀왔는데, 처음 갔을 때는 사전조사를 하지 않아서 아메리칸 윙을 통째로 놓쳤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마담X>와 셀카도 찍고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을 (사진으로) 싹싹 긁어모았다. 시카고와 워싱턴에서도.


유진이 준 엽서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해왔으나 현재 침대와 주방을 가르는 파티션 역할을 하고 있는 낮은 책꽂이의 옆구리 어딘가로 떨어져서 찾지 못하고 있다. 유진이 포착한, 뮤즈로써의 마담X는 타협하지 않는 나의 조금은 냉정한 단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내가) 추정한다. 집안에서 잃어버린 엽서를 굳이 찾지 않아도 이미 그 엽서를 통으로 인용한 문서(브런치북에 박제한 미국여행기)가 있기 때문에 원문을 확인했다.


유진에 의하면 <마담X>는 '아름답고 도도하지만 어쩐지 고독한' 나를 생각하다 발견한 그림이라고 한다. 도도와 고독을 연결하다니 똑똑한데? 하지만 십이 년이 지난 지금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안 도도해도 고독하지 않나? 자랑도 거의 안 하고(그냥 내가 내풀에 꺾이는 것일 뿐) 홀로 창창한 유진의 예지력은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저세상의 초능력이다.




존 싱어 사전트는 미술책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 대표화가인 동시에 유럽에도 거점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 인물이다. 일개 딜레탕트로써 덕질의 한계가 있었으나 유진이 점지해준 반려그림인지라 나름의 최선으로 그를 탐구했다. 구글렌즈로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없는 수채화까지. 미국여행기에서 마담X와 조세핀 호퍼의 유사성도 (어디까지나 내가) 언급했다. (뉴욕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 존 싱어 사전트, 호퍼 부부, 블레어 월도프) 한편 미술여행기에는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사전트의 다른 그림, <농셸루아>를 탐구하다 프랑스어에 빠진 썰이 등장하는데....


바로 작년 이맘때 도서전에서 아니 에르노의 프랑스판 원서 <세월>을 구입했지만 1 페이지만 그림 보듯 감상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시(?) 중이다. 최근에 구입한 영어책들은 처음부터 비닐포장이 된 상태로 출발하는데, 대부분 비닐포장을 열지 않은 상태로 전시되지도 못하고 창고, 아니 발밑에 남아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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