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우정 1
쌍리단길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도 유진이었다. 어김없이 내면이 발끈함을 느꼈지만 최대한 티나지 않게 궁시렁거렸다. 그건 또 뭐야-이런 식으로.
예나 지금이나 내가 몰랐던 지명이나 책 제목, 특히 작가명을 유진에게 들으면 '나도 모르는 그(것)'의 유명세를 어림짐작하며 유진이 먼저 알아냈다는 사실에 내심 분개하는데 문제는 해당 대화를 다음 만남때까지 곱씹다가 다음 만남에서 새롭고 비슷한 대화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 그래봐야 2년 전에 유진이 말해준 작가의 경우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거나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진이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전보다 더 눈에 띄었고 왠지 반발심만 생겼다. 번화가를 지나갈 때 '돼지갈비'가 유독 잘 보이는 것처럼(이 또한 또다른 트리거이자 트라우마다.) 그 작가의 이름이 자꾸 보였다. 그 작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괜히 질투했다.
유진이 언급한 맥락과 내가 받아들인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단지 그 작가를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자격미달이 된 것 같았고 내게 미치는 유진의 영향력과 그 영향력에 휘둘리는 내가 미워서 정신을 못 차렸다.
이와 같은 심리는 단순한 질투도 아니고 (적어도 지금은) 유진과 나 사이의 우정을 위태롭게 하지도 않는다. '친구보다 자매같은'이라고 수식하는 우정이고 (우정보다 확연히 가까운데, 정신적으로는 사랑보다 멀지도 않다?!) 현실자매가 그러하듯 사사건건 비교하는 일종의 습관이다. 현실자매가 없고 현실형제(남매라는 말은 내가 매가 아니라서 불편하다.)만 있는 나는 새롭고 황당한 감정을 겪었다. 유진을 만나고 유진과 강한 (정신적) 결합을 시작한 이후로. 그렇다고 우리가 <가십걸>의 블레어와 세레나처럼 머리채를 잡거나 비밀을 폭로한 적은 없다.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적은 있어도.
그 작가의 이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나를 심하게 흔들어 놓은 그 단어, '메타인지'도 유진이 알려줬다. 개념이 어렵진 않았지만 나와 깊이 연관된 사람을 통해서는 처음 들은 단어였고, 당시 커리어가 그 단어와 매우 밀접했기 때문에 내 직업적, 사회적 프라이드는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렸다. 나만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그 무렵 우리 대부분은 열등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서른 즈음의 나와 내 동료들과 내 동년배들과 내 엑스들은.
쌍리단길은 고작 한 달 만에 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라 일상적이지만 매우 일상적이지는 않은 산책루틴을 따라가다 아직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이천에서 쌍문동으로 건너갔다. 큰길에는 대형카페밖에 없으니 네이버지도에서 주변 카페를 조회한 다음 카페가 몰려있는 지역을 확대했다. 그곳이 쌍리단길이었다. 그냥 요만큼만 들어가면 나오는 곳이었고 그 끝에는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진의 가족은 여행중이라고 했다. 공원이 끝나는 곳에서 유진의 마을이 시작되고 유진이 없는 유진의 마을에 방문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통화가 끝난 후 성의없이 공원을 둘러보다 나왔다.
서울 거주 기간의 대부분을 북서부에서 보냈고, 그 밖의 장기 거주 지역은 경기도 북서부 또는 경기도 남서부와 서울 남서부였다. 아직 서부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이었고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려면 약간의 핑계가 필요했다. 이전 거주지였던 동대문구청 인근에는 (의도치 않게) 아버지의 옛집과 외할머니와 함께 외식했던 추억이 있었다. 현재 거주지 인근에는 유진의 집이 있고 이 핑계는 훗날 애착서점이 될 그 서점과 함께 나를 안심시켰다.
유진이 나의 생사확인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해도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 어디인가. 이사온 뒤 꼬박 365일이 지나서야 유진의 집에 (그것도 나눌 소식이 꽉 차서 더이상 갖고 있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다시 놀러갔다해도, 마음 먹으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해도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지인이 가족보다 친한 친구라는 것이 어디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