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07. 2024

비 와도 책방

책방산책1

다시 북촌에 갔다. 원래 3월 초에 있었던 약속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2주 연기되면서 약속 당일 미리 나가있던 나는 혼자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여유있게 삼청동길을 거닐었다. 평생 혼자 옷가게와 소품샵 사이를 어슬렁거렸지만 요즘 내 눈길은 끄는 공간은 진짜 한옥 아니면 책방 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삼청동길에는 갤러리가 모여있다. 갤러리처럼 느껴지는 무민샵(아마 없어진 듯)말고 진짜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보기로 했다. 시작은 갤러리 애프터눈이었다. 이삼십대도 충분히 편안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 신생 갤러리에 용기를 얻어 첫날에만 네 곳의 갤러리를 방문했다. 연기된 약속 날짜를 앞두고 엄마랑 급약속을 잡았다. 마침 엄마 생일파티(칠순) 시즌이라 20년에 한 번씩 들르는 수와래에서 런치세트에 와인 한 잔 하고 바로 옆 건물인 갤러리 애프터눈에서 같은 전시를 2차 관람했다.  


같은 주 토요일, 원래 북촌을 떠올렸던 그 약속이 돌아와서 그 전시를 3차 관람했다. 갤러리의 위치나 인테리어도 흡족했지만 결정적으로 전시 주제가 고즈넉한 산책 풍경이었다. 고즈넉한 산책 장소를 찾다가 어수선한 주말의 안국역을 보고 당황한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준 그림이 눈에 아른거려서 3월 내내 북촌으로 향했다.  




봄과 초여름에는 가능한 모든 시간을 쪼개어 요가를 하고 공강시간에 서평이나 소설을 쓰고 마음이 어지러울때는 애착서점에서 책등테라피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쓰지 못한 요가 수련권이 쌓여갔고 쓰려고 했으나 쓰지 못한 글의 공백도 쌓여갔다. 동네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작년 늦여름부터 애용하던 우이천이 그나마 숨 쉴 구멍을 담당했다. 시간이 빠듯하거나 너무 피곤할 때는 우이천 산책마저 고민했다. 요가원에 다녀오는 것만으로 3 킬로미터 가까이 걷는데, 그밖에는 일부러 산책코스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걸을 일이 없었고 우이천은 애매하게 멀었다. 


걷기 위해 어딘가를 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면 가능한 많은 책방에 방문해보겠다는 계획은 아마 태어날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가는 서점에 계속 간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자주보다 꾸준히 30년 넘게 다녔고, 지금은 사라진 동남문고(홍대입구)와 한강문고(마포구청)의 서가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지난 4월 드디어 비교적 가까운 노원문고와 책방 시행과착오를 방문했고, 그 기세를 몰아 5월에는 교보에 들러 서촌의 독립서점 세 곳을 둘러본 뒤 나름 단골인 알라딘 대학로점에서 생일책탑을 완성했다.  


읽고 싶은 책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는데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할때마다 애착서점으로 뛰어갔더니 뒤돌아서면 책이 실제로 쌓여있었다. 그러다 서울국제도서전이 다가왔다. 생일부터 도서전 전후로 선물받은 책들과 도서전에서 구입한 책들이 시너지를 내듯이 자가증식했다. 외출하면 책이 늘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집에만 있어도 책은 늘어난다. 도서전 2차 관람을 하던 날 오전에는 재독하지 않을 책 몇 권을 중고서점에 넘기고 수납공간과 약간의 추가예산을 확보했다.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사인회가 예정된 작가들의 책만 구입했는데도 책은 쉴새없이 늘어났다. 새로 들어온 책은 다 사랑스러운데 이 책들이 책상 위에서 책으로 만든 벽이 되었다. 


온라인 장바구니에는 독서대와 대형 책장도 있다. 도저히 둘 곳이 없어서 읽은 책 중에서 좋아하는 책을 쇼핑백에 담아두기 시작했고 펭귄 영어책와 작은 책은 상자에 담아 층층이 쌓아두었는데 이 자리에 새로 들어오는(혹은 완독한) 책들을 더 쌓아야하기 때문에 이미 쌓여있는 책이 들어갈 새로운 수납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건조대를 사시사철 펼쳐놓은 살짝 낭비된 공간에 책장이 들어와야 한다. 여기서 요가도 해야 한다.  




도서전과 함께 요가 회원권 사용기한이 끝나고 여름방학과 장마가 시작됐다. 습도에 한껏 우울한데 몸을 움직일 기회마저 없으니 비를 뚫고 서점으로 달려갈 수 밖에. 구입목록에 있지만 손상없이 아껴읽고 싶은 책들이 비에 맞을까봐 망설이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다른 책들을 구입했다. 작가 이름만 아는 책들. 



(계속)

이전 05화 산책 친구는 너 뿐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