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산책 2
대학로에 있는 버스정류소를 새로운 포털로 삼아 그곳으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산책계획을 세웠다. 주된 이유는 집과 서점 사이를 버스 한 대가 바로 연결해 주기 때문이었다. 비가 오거나 덥고 습한 날이 이어져도 쾌적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날도 있었다. 바로 서점에 들어가서 버스 창문을 통해 햇빛에 달궈진 머리를 식히고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하러 이동할 때는 약간 돌아가는 길도 허용할 만큼 마음이 포근했다. 한편 그 여유와 여유 사이에 갑자기 등산이 끼어들기도 했다. 이미 블로그에 박제한 그 등산.
성균관대학교를 통과해서 북촌에 가보겠다는 잊고 있던 계획이 생각났던 것이다. 정작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던 날에는 북촌보다 서평이 우선이었다. 캠퍼스 앞이나 캠퍼스 안에 있는 카페를 철저하게 알아보지 않았더니 어느새 후문까지 와버렸고 산책한도가 급격하게 소진됐다. 약간 지치기도 했지만 빨리 다음 목적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심에 산을 조금 더 올라가 와룡공원과 서울도성을 통과했다. 말이 등산이지 학교 안에서 오르막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거의 내리막길이었다. 가장 더웠던 날 한창 더운 시간에 마침 숲 속 내리막길을 지나고 있었기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성북동에서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모든 것을 충전하고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무료전시도 관람했다. 심지어 피날레는 역시 우연히 발견한 데다 브런치가 있는(브런치가 있어서 발견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상적인 서평 카페였다. 그렇게 열기를 품고도 아주 고요했던 금요일을 보냈다. 이런, 책방을 가지 않았군. 책방은 그다음 날 잠깐 들렀는데 갑자기 단체로 입장한 남자 중학생들의 시끄러움에 질려서 책등만 까다롭게 째려보다가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한국 소설은 일단 재고 소진이 우선이고 프랑스 소설은 꿈에 나올 정도가 아니라면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구입해야겠다고 무의식의 서랍에 메모했다.
이틀 뒤인 월요일에는 전철역이 포털이었기에 그야말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당분간 멀리 나갈 계획이 없기 때문에 이럴 때 강을 건너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보름 전에 도서전을 두 번이나 관람했으나 도어 투 도어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도서전 두 번째 관람을 위해 건대와 청담을 거쳤기에 오히려 다른 책방산책보다도 더 시티투어의 성격을 가진다. 그래봐야 책방과 스벅에 들렀을 뿐이지만.
책방에서 책방으로 전철을 타고 이동했던 그 월요일의 관전포인트는 전철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한강뷰 정도였다. 로수길의 원조인 가로수길의 가로수는 작년에 삭발한 머리가 반쯤 자라 있었고 그새 공실은 홍대보다 많아졌다. 기대하던 원서 책장은 통째로 빠져나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어린이책 옆에 마지못해 한 칸? 관심 분야도 달라졌기에 원서나 영미소설은 후순위였다. 한국 소설이나 프랑스 소설도 가끔 영어판을 들이지만 한국어만으로도 바쁜 날들이라 이쪽 서가에 집중했다. 출간일이 10년이나 지난 흥미로운 앤솔로지를 발견했고, 존재를 몰랐던 2000년대 번역서를 한 무더기 발견했다.
야외 산책이 두려운 요즘 같은 날에 서점과 서점 사이를 전철로 이동하면서 한강뷰까지 볼 수 있는 루틴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할 일이 많을 때는 이동 시간과 타 지역의 빠른 영업종료가 마음을 초초하게 한다. 그럼에도 그걸 감수하고도 일상에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는 시기가 있다.
가벼운 산책에 필요한 최소한의 마인드셋이 불가능한 날에도 쾌적한 저녁을 위해 샤워를 했다. 집 근처에만 머무른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하세월이 지난 것만 같다. 결국 집에서 하면 훨씬 빨리 끝났을 일을 가지고 나와서 하루종일 서성이다 보면 돌아다니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집에서 독서마라톤을 하려고 타이머와 책탑을 꺼내두면 정작 얼마 읽지도 않는다. 한 번에 몇 달 치 기록을 둘러보지 않으면 하루하루는 정말 미약하다 못해 쇠약하다. 대체 오늘 한 일이 뭐냐는 질문과 뭘 꼭 해야 하냐는 반문이 끝나지 않는 테니스를 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