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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21. 2024

단골 카페를 만들겠다는 야망

집보다 카페 1

재택근무라고 하기엔 의무도 수입도 없지만 재택근무 느낌의 재택덕질을 해왔고 결과적으로 기록과 지식의 누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운동부족이었다. 본격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출퇴근이나 시장조사 덕분에 운동량을 유지했던 2010년대와 달리, 하루의 23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던 2020년 이후 방탈출자체가 운동이다. 팬데믹 일상회복의 과도기에는 국내여행의 기회를 노렸고, 마스크를 벗은 후에야 동네산책을 재개했다. 산책이라는 습관을 되찾는 데는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야만 했다.


오랜 칩거에서 비롯된 방랑욕구의 폭발이었을까. 작년 8월 중순 갑자기 뛰쳐나가 전에 없던 열정으로 동네산책을 시작했다. 이 열정에는 팬데믹 시절은 물론, 발행하는 글의 분량이 폭증하면서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타이핑하는 로뎅처럼 앉아있느라 쌓이고 쌓인 위치에너지가 포함된다. 위치에너지인데, 운동하고 싶어서 환장한 위치에너지.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났다.  




인스타가 견제하는 그 플랫폼에서 2021년 여름을 보냈다. 입시를 치러야 하는 다른 플랫폼에서 본격적으로 타이핑하는 로뎅의 생활을 하느라 2022년 추석 이후 운동량이 더 줄었다. 대신 2023년 말복에 산책욕구가 터져서 진짜 산책덕후가 됐다. 최근에 재발견한 2022년 생일일기(인스타 고정게시물)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그 플랫폼과 다른 플랫폼 사이(이 시기에 냅킨에세이가 두루마리로 변신함)에도 산책을 외주화(?)했었다.


산책덕후 영국언니들(<오만과 편견>의 등장인물 엘리자베스 베넷과 '런던거리 헤매기'를 쓴 버지니아 울프)에게 산책을 맡기고 대리만족하면서 책을 읽고 인스타를 했다. 필명을 산책덕후 한국언니로 짓고 보니 산책을 뺏긴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방탈출은 여전히, 지금도 어렵지만 드러눕고 싶은 마음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의 밸런스는 돌아왔다. 작년 말복 전까지는 (특히 식사 후에) 드러눕는 것이 디폴트였다면 지금은 뛰쳐나가는 것이 디폴트이되, 지금의 지금은 여름방학이다.


늦여름부터 폭풍산책을 시작해 가을, 겨울을 지나 봄과 초여름에 와서 아메리칸스타일로 방학을 해보니 뛰쳐나가려는 관성이 생겨서 좋지만 막상 나가서 계속 돌아다닐 수 없다. 일단 나가자마자 버스를 탄다. 산책 루틴을 개발했던 그 일 년 동안 산책의 적절한 쉼표가 되어줄 카페를 발굴했는데 그 루틴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짧은 순간을 지나 7월부터는 조금이라도 벗어난 곳에서 시작하는 중이다. 이때 새로운 루틴이 필요함을 느낀다. 버스를 탔으니 밥만 먹고 돌아오긴 아깝고, 독서와 타이핑이 가능한 공간을 발견해야 한다. 지난 일 년 동안 단골이 되어왔던 카페들처럼 익숙해질 곳을.  




집에서 3분 거리에도 카페가 있다. 무려 네 곳의 카페가 있고 작업실 또는 테라스 또는 포장으로 커피만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고나 사전 작업(독서, 자료조사 등)이 급한데 집에 있기 너무 싫을 때는 집 앞 카페에 간다. 이 루틴에는 산책이 없다. 언제든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것도 단점이다. 집에서 좀 떨어져 있어야, 그 공간에 집중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산책을 하기 전에는 단거리 코스로 500미터 거리의 카페도 갔었다. 이 거리가 이상적인지는 모르겠다. 그곳이 엄청 예쁘고 편하거나 영업시간이 길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동안 작업공간을 체계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 카페 영업시간에 따른 산책루틴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갈 곳(스타벅스 또는 24시간 카페), 늦은 저녁에 갈 곳(24시간 또는 자정 이후에 마감하는 카페), 낮에 갈 곳.


너무 작지 않은 복층카페나 주택개조카페는 피크타임을 피하면 괜찮다. 어떤 곳은 시간제한이 있거나 노트북을 금하기도 한다. 장시간의 작업은 프랜차이즈 대형 카페가 편한데(스타벅스의 장점 중 최고) 대형 카페일수록 인구밀도가 높아서 화장실과 와이파이가 원활하지 않다. 대형 카페의 특정 지점을 자주 방문하지만 단골이라고 칭하지 못하는 이유다.


눈치를 보지 않고 타이핑하는 로뎅이 될 수 있는 곳이되 적어도 화장실만큼은 가깝고 깨끗해야 단골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다. 그런 곳을 계속 찾고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그 카페를 대체할 곳은 아직 없다. 단골 후보인 카페는 좀 있는데 화장실을 가보지 않았다면 언제 재방문을 할지 모른다. 새로운 곳을 찾을 여유가 있다면 더 가깝고 더 새로운 곳을 방문해 볼 것이고 익숙한 곳에서 확실한 결과를 얻고 싶다면 이미 단골 확정인 곳을 방문하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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