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신들의 섬을 걷는 문화인류학자>
“그게 진짜 이름이라고?“
이번엔 제대로 놀랐다.
”여기선 다 그래. 첫째는 와얀, 둘째는 마데, 셋째는 뇨만, 넷째는 크툿, 다시 와얀, 마데, 뇨만, 크툿……“
그렇게 빙빙 돈다고 했다.
-전경린, <굿바이R>
발리라는 지명은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로 알게됐다. 그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첫만남이 발리에서 이루어졌을 뿐인 그 시절의 전형적인(프론티어적인?) 후킹드라마였다. 진짜 발리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시작됐다. 바로 100페이지에 가까운 여행에세이처럼 읽혔던 전경린의 중편소설 덕분이다. 이니셜로 묘사했으나 그곳은 그곳일 수 밖에 없었다.
줄리아 로버츠, 그리고 문화인류학자의 그곳.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인증하는 곳이었으나 사진으로는 그리 끌리지 않았던 곳. 그네가 있는 곳.
<시티 오브 걸스>로 뒤늦게 알게 된 엘리자베스 길버트 원작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원래도 예술관광도시였던 발리를 더 유명하게 했다. 이 작품은 <굿바이R>에서도 암시되지만 <신들의 섬을 걷는 문화인류학자>에서는 명시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주인공 리즈는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발리로 향한다. 스크린에 펼쳐진 발리의 첫 풍경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청록색 바다와 논, 야자수, 밀림이 어우러진 장면이다. 이후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생동감이 넘치는 농촌에서 리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전거를 탄다. 그녀의 주위는 이제 막 모내기가 끝난 초록 모가 어깨를 마주한 채 심겨 있다.
-206p,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다시 떠오르는 것
저자 정정훈은 관광인류학과 문화정책 분야의 연구자가 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해 동안 현지 조사를 했다. 신들의 섬이라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발리, 그 안에서도 우붓의 뉴꾸닝 마을을 찾아갔다.문화인류학과 대학원생을 문화인류학자로 거듭나게 한 그곳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현지에 적응해가는 모습부터, 발리에서 육아하기, 그리고 발리인이 되어 발리여행하기, 무엇보다도 문화인류학자로 거듭나기 위한 현장조사와 인터뷰(의 과정)이 실렸다. 소설이 아니지만 소설적 긴장감(?)으로 다큐멘터리보다 흥미진진하고, 여행기보다는 학문적으로 진하다. 여행콘텐츠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중편소설 ‘굿바이R’과의 차별점이라면, 발리로의 초대에 그치지 않고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것, 문화인류학적 질문으로 독자의 시야를 넓힌다는 것.
뉴꾸닝 마을은 지리적으로 우붓 왕궁에서 남쪽으로 약 5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우붓 중심가 남쪽에 위치한 원숭이 사원의 후문이 마을의 북쪽 구역에 맞닿아 있다. 뉴꾸닝이라는 마을 지명은 발리어로 노란 코코넛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근 다른 마을과 비교해 뉴꾸닝 마을에 코코넛 나무가 두드러지게 많지는 않다. -67p, 가족과 함께 발리로 돌아오다
네삐는 명상과 자기 성찰을 위해 마련된 날로 완전한 침묵의 날‘로 불린다. 이날은 발리인뿐만 아니라 발리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네 가지 금기 사항을 부여한다. 불과 램프를 켜지 않는다. 신체 활동과 일을 하지 않는다. 집 밖에 나가거나 여행하는 것도 안 된다.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행위도 금지된다. 높은 영적 생산력, 즉 욕망을 억제하고, 마음을 수행하고, 자기 정화를 위해 영적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245p, 네삐 데이, 어둠 속에 잠기는 날
사족이라면 사족이겠지만 비문학이 지루한 나도 키워드(걷는, 인류학, 발리)와 표지디자인에 혹해서 집어들었다가 하루만에 다 읽었다(재미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