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여행 양쪽에서 엄청난 데이터를 축적한

이희진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

도서제공리뷰



유럽여행 실패한 썰로 책 한권을 쓸 수 있을만큼 타이밍은 자꾸 동쪽을 향했다. 지난 세기부터 살을 붙여온 유럽일주 계획은 소설이 되는 중이다. 실제로는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이 갔던 곳이 카타르의 도하, 그러니까 아시아였다. 그럼에도 그 좌절과 좌절 사이에 도하도 잠깐(15분) 다녀오고, 미국일주를 두 번이나 했다.


그뿐인가. 여행작가들과의 인연이 미숙한 미국 여행사진 앨범에 불과하던 인스타그램을 탄탄한 서재로 탈바꿈시켰다. 세계 300개 도시를 다녀온 이희진 작가의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에는 책으로 다녀온 듯한 도시들과 여행고수들만 들어봄직한 장소들이 골고루 담겨있다. 주로 유럽 지역이라 계속 유럽을 가지 못하는 내게는 더욱 흥미로운 점도 있다.




여행지를 회상하면서 사진과 기억, 계획을 소환하는 과정은 여행만큼 즐겁다.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를 통해 장소가 품은 비밀과 함께, 저자가 발견한 삶의 비책이 배운다. 삶과 여행 양쪽에서 엄청난 데이터를 축적한 덕후의 에센셜이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고, 가본 적 없어도 쉽게 발음하는 도시부터 꽁꽁 숨은 보물같은 곳까지 엄선하고 되새기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그물이 조여오듯 뒤로 갈수록 농밀해지는 통찰과 다짐들이 마음 속 발길을 재촉해 기어이 세계일주를 완성한다. 김홍열 교수의 추천사가 경고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비행기 표를 예약했을지 모른다.




예전에 나는 ‘견딘다’는 말을 참 싫어했다. 힘든 순간을 견뎌내는 것만큼 버거운 일이 없으니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깨달은게 하나 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시련과 아픔이 클수록 그 뒤엔 더 큰 기쁨이 나를 기다렸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고, 때론 그게 고통이다. -82p, 오늘의 시련은 내일의 희망이다


그동안 회사 일 핑계로 시작하지 못했던 인생 목표들을 하나 둘 적어 내려갔다. 마치 20년 넘게 밀실에 갇혀 있던 내 안의 내가 깨어나,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 같았다. 무한정 미뤄둔 자격증 공부, 일생에 한 번은 꼭 쓰고 싶었던 책….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내 앞에 나타났다. 미래를 향한 시계추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감지했다.

-149p,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이렇게 혼자 여행을 떠나와서야 본래의 진짜 내 모습을 만나게 된다. 아니 내가 모르던 성격까지 알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황에 따라 수많은 가면을 수시로 바꿔 쓰며 사는 것 같다. 어느 순간, 그 가면이 내 본모습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가면 이 많아질수록 삶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254p, 인생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산토리니는 자연이 선물한 천상의 화원이 아니다. 주민들이 자연을 존중하고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공동체의 힘으로 이뤄낸 인간의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다. 신의 공간처럼 느껴지는 이 섬이 이제는 사람들의 삶이 담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도시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산토리니는 로망 속의 환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지속 가능한 삶이다.

-278p, 신념을 지켜 사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



정보와 감상의 적절한 비율, 다채로운 풍경 사진을 통해 나의 버킷리스트를 재검토하는 기회가 됐다. 무엇보다도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온전히 마주하는 스스로를 대리만족했다. 영어로는 부족할 것 같은 유럽 본토를 혼자 떠날 용기를 주는 책이라 더욱 소중하게 간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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