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단번에 파악되지 않아서 거의 모든 문장을 두 번씩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재미없다면 하세월이 걸릴 수도 있지만 재미있다면 완독을 향한 의지가 강해진다. 어쩌면 그동안 포기한 책들은 롤랑 바르트가 쓰지 않았거나, 류재화가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는 텍스트에 관해 들어봤음직한 풍문(?)이 거의 다 들어있다. 그 풍문에는 롤랑 바르트가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그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롤랑 자신은 자신으로부터 비껴서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자서전인듯 자서전 아닌 이 책만 봐도 알 수 있다. 나 롤랑 좋아하네.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데 기여한 제1요소는 단연 번역이다. 각주가 좀 많다. 그런데 각주가 없었다면 뭔소리야X10000번 하고 검색하다 지쳐서 반환점을 돌지 못했을지 모른다. 완독이 예정보다도 더 오래 걸린 다른 이유는 한번에 40페이지 이상 읽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한 이유는 그래야 재미와 새로움을 지켜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주 덕분에 뒷조사없이 스승의 스승의 스승같은(?) 롤랑과 단숨에 친구가 된 것 같다. 역자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소설, 영화, 미학 수업을 듣기 전 ‘텍스트 언어학’ 수업을 듣다 말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른 책도 아닌 바로 이 책에 ‘알고리즘’이라는 단어의 기원(역시 각주에 있다.)이 들어있을 정도로 롤랑이 다루는 텍스트는 일면 수학적이고 기호학에 근접하다. 또한 text가 textile과 어원을 공유하는 점도 살짝 스치고 지나간 듯하다. 도형이 그러하듯 언어는 예술이 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요소에 의존한다. (내 이름과 전공의 공통분모이기도 한, 요소의 素가 이 책에서 접미사의 형태로 반복되기도 한다.) 점, 선, 면. 텍스타일은 씨실과 날실이 만나는 일종의 평면좌표이며 GPS시대의 현대인은 자신의 현재위치를 위도와 경도로 표현할 수 있다. (있나?)
종종 좌절시켜야 하는 것은, 통념의 진부함이 아니라 자기 생각의 진부함이다. 우선 나오는 담론은 진부하다. 원래의 이런 진부함에 대항해 싸우면서 서서히 글이 써진다. 만일 탕헤르 바에서의 그의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면? 우선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찾게 되는데, ’내적 언어‘가 들어갈 자리가 보이면, 아! 그거야 하고 시작하게 된다. 그에게 끈적끈적하게 붙어 있는 진부함을 벗어낼 시도를 하게 된다. 비록 입자 같은 것 일지라도 이 진부함 속에 몇몇 욕망과 관련된 개념이 있는지 살핀다. 있다면, 바로 그게 문장이 된다. -251p, “알다시피”
나는 상상한다, 나는 환각한다, 나는 채색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책을 윤낸다. 이것이 지식의 책이고 글쓰기의 책이며, 체계에 대한 조롱으로서 완벽해지는 체계이다. 지성과 기쁨의 총합, 복수하는 책이면서 다정한 책, 신랄한 책이면서 즐거운 책. (여기, 상상계가 뿜어내는 형용사들의 쇄도). 간단히 말해, 소설의 주인공 같은 모든 자질을 갖고 있다. 그는 오는 자(모험)이며, 이 책은 나를 세례자 요한으로 만든다. 나는 수태고지한다. -315p, 나중에
문학평론, 특히 작품해설(단편소설을 읽다보면 같이 중독되는 텍스트의 형태)을 보다 찰지게 읽어내고 싶다면 롤랑이랑 친해지는 게 좋다. 저자와 역자가 사랑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 책에서 마르셀의 향기를 느낄 수도 있다. 자기객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고 싶다면 롤랑 바르트를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