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들을 향한 사랑

박민정 <전교생의 사랑>

아역, 실패라는 키워드를 읽자마자 바로 주문한 책. 덕질도 영업도 많이 해온 박민정 작가의 책이라 언젠가는 읽게 될 운명이었다. <아내들의 학교>를 포함해 이미 사둔 책들을 묵히고 있는 와중의 광클이라니! 전하영의 <시그투나>가 광클의 광속(?)을 더욱 높였고(출간 전 주문) 기다리던 이미상의 <셀붕이의 도> 역시 광클(출간 전 주문)했다. 세 분의 작가는 젊은작가상 수상자 덕질 책탑에도 있지만 내게는 대체불가한 존재이자 ‘메가미(여신)’이다.


탤런트적 탤런트의 부재를 깨닫기 한참 전,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와 충돌하며 다양한 해프닝과 말 못할 에피소드를 겪었다. 디지털 0.5세대로 종이신문과 뉴스 및 케이블 방송에 다양한 역할로 출연해본데다 아이돌 지망생이라 카메라에 대한 욕망과 공포를 고스란히 가진 채로 성인이 됐다. 대학교 재학 중 나름 소속사도 있었거니와(?), 뮤지컬 오디션을 사유로 전공수업을 합법적으로 결석한 적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그건 어떤 직업을 추구해서 생긴 욕망과 공포가 아니다. 이미 ‘모르그 디오라마’에서 슬픈 예감을 읽은 독자는 그녀를 정주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호수와 암실> 북토크에서 저자가 언급한 브룩 쉴즈의 문제작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너무 어린 시절에 본 너무 어린 배우의 너무 충격적인(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였고, 그런 관능을 탐하는 동시에 소비되는 것에 대한 공포는 꼭 ‘벗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날의 호기심은 <전교생의 사랑>에 실린 연작소설을 통해 활활 불타올랐다.


가장 피곤한 날마저도 하루를 살아낼 기력을 얻기 위해 아침마다 한편씩 읽었다. 연작이 지나가고,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공백이 생겼지만 완독예정일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작품에 또 한번 (좋아서) 몸서리를 친다. 중학교 무용부(의 한국무용 전공생이었던 동기와 덩치쿤 후배들)에 이어 논술(보다는 수학/수리논술을 많이 한) 강사 시절로 냅다 던져주는 이야기. 여태 기다려온 (다른 누가 아닌) 박민정 작가에 의한 ‘흑인’과 ‘가난한 백인’이야기.




언젠가부터 너는 그런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들을 이해하기를 포기해버렸다. 어릴 때부터 자연히 알았고 배웠던 통념이나 상규가 문득 전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 당연히 누군가는 냉큼 기회를 잡아 올라타고 대체로는 벼랑 끝에 몰리다못해 뒤따라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밀려 전부 추락해버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너와 네 가정이 몰락한 것인지 한국 사회가 몰락한 것인지 세상 전부가 몰락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268p, 헤일리 하우스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깔린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십대 여성들에게 가한 자연화된 폭력과 착취를 성찰적으로 살피지 않을 때 소설 속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그러한 폭력적인 혐오 문화가 지속되는 일에 무의식적으로 일조하게 된다. 박민정의 아이돌 연작은 한국어로 쓰인 일본의 걸그룹 문화 풍속도를 추적함으로써 가깝게는 1990년대 전후, 넓게는 그 이후 일본 대중문화의 풍경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며, 동시에 그 이후에 목도하게 될 한국의 걸그룹 문화와 그 모순성을 용인하는 한국사회의 혐오적인 문화 풍경을 성찰적으로 예견하게 한다.

-308p, 해설_이야기로 저널리즘 하기(소영현)


​​소영현 평론가가 소환한 비비언 고닉 역시 뇌확장수술 맛집이라 부르는 작가 중 하나임에도, 나는 한국어로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써낸 박민정 작가는 영어권 작가를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해버린다. 디아스포라와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가 거리를 두거나 외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옆의 다양한(어쩌면 친해지기 전에는 혼혈인 것조차 모르고 넘어갈) 존재를 보다 섬세하게 지켜보고 배려하게 하는 힘. 비주류로 포섭되기엔 너무도 자국에서 주류인 우리를 각성시키는 이야기의 힘에 무너지는 동시에 매료된다.